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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카레라이스에 나물무침 같은 회의

chocohuh 2021. 9. 2. 11:00

가끔 텔레비전 야구 중계 같은 걸 보다 보면, 경기 후의 인터뷰에서 투수에게 "오늘의 투구가 100점 만점에서 몇 점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아나운서를 보게 되는데, 대체 그런 질문을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 대개 그런 질문을 하는 아나운서는 투수가 "글쎄요, 90점 정도일까요"라고 하면, "아아, 그렇습니까? 90점입니까?" 하는 식으로 얘기를 끝내 버리고 만다. 얘기는 거기서 끝나고, 90점이라는 자기 평가가 과연 어떤 기반과 체계 위에서 성립된 것인가 하는 분석까지는 가지 않는다. 이래서는 답안지를 받고 어디가 틀렸는가를 반성하지도 않고 "와아, 90점이야, 90" 하고 떠들어대는 초등학생과 하나 다를 바가 없잖은가.

 

도대체 무엇이 100점 만점인가 하는 설정부터가 애매한데도, "글쎄요, 90점 정도일까요"라는 소리를 듣고, "아아, 그렇습니까?"하고 이해를 하는 쪽이 더 이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봐야 스포츠에 불과하니까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는 게 촌스럽다면 뭐 이쯤에서 그만두겠다. 하기야 인터뷰 시간도 짧고, 본인이 90점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됐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프로야구 투수 중에도 자기 평가에 엄격한 사람과 느슨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이기면 100, 지면 0!"이라고 하는 단순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90점입니다", "그렇습니까?"라는 대화 속에서 뭘 얻는 건 상당히 무리일 테고, 아나운서 역시 그것이 무리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알면서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100점 만점이라면 몇 점일까요?"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이미 안일함이나 단순함이 아니다. 그저 무의미한 소모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점수 평가 방식의 질문은 질문자에게는 상당히 편리한 모양인 듯, "100점 만점이라면 당신의 남편은 몇 점일까요?" 하는 종류의 질문이 항간의 잡지-특히 여성지-에 자주 등장한다. 대답하는 쪽도 "글쎄요...난처하군요. 65점쯤일까요"하고 난감해하면서도 우직스럽게 답변한다.

 

그런 기사를 읽으면 나는 항상 어리둥절해지는데, 과연 65점 남편이란 어떤 남편일까? A씨네 남편은 '집안일은 잘 도와주지만, 섹스가 별로여서 65'일지도 모르고, B씨네 남편은 '섹스는 무턱대고 짐승처럼 세게 하지만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아서 65'일지도 모른다. C씨네 남편은 '얼굴은 못생겼지만 마음이 착하니까 65'일지 모르고, D씨네 남편은 '너무 사랑한 나머지 왠지 두려워서 65'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A씨와 B씨와 C씨와 D씨네 남편은 모두 65점이지만 그 방향성도 질도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65점이라는 숫자로 바꿔 버리면, A씨네 남편도, B씨네 남편도, C씨네 남편도, D씨네 남편도 그저 '65'이라는 따옴표 안에 한데 묶이고 만다. 그러니 그런 질문이나 대답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설문 조사 중에는 왠지 찝찝하고 무의미한 것이 많다. 나도 한번 "당신의 행복도는 10점 만점 중 몇 점입니까?"라는 끔찍한 질문을 받고 난감했던 적이 있다. 그런 걸 갑작스레 물으면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것은 마치 "10점이 만점이라면 남극 대륙의 존재는 당신에게 몇 점입니까?" 하는 질문과 똑같다.

 

남극 대륙은 좋든 싫든 존재하는 것이고, 좋아하니까 이렇고 좋아하지 않으니까 저렇다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펭귄이 있으니까 8'이라든가 '추운 건 싫으니까 2'이라는 식으로 평가를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쯤 되면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현재 상황이라는 것도 그렇다. 당연히 여기 있어야 했기에 여기에 있는 거니까, 이런 것은 '당연히 있어야 하므로 여기에 있다'라고 평가할 도리밖에 없다. 펭귄이나 추위라는 건 개별적인 측면의 속성일 뿐, 총체로서의 상황과는 별 관계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모르겠다.'라든가 '뭐라 말할 수 없다'라든가 '대답하고 싶지 않다'라고 답하기로 했다. 물론 여태까지 여기에 쓴 얘기를 꺼내며 '모르겠다.'라는 답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를 세세하게 설명할 수도 있지만, 얘기가 너무 길어질 염려가 있고, 무엇보다 질문자는 그런 설명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6'이라든가 '8.5'같은 단순한 수치다. 그래서 나는 설문조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신문의 여론 조사 결과 따위를 보면, '모르겠다.'라든가 '대답하고 싶지 않다'라고 답한 사람들이 대략 5퍼센트 정도씩 있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의 기분을 잘 이해한다.

가령, 당신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다음 중에서 골라 주십시오.

 

(1) 신뢰할 수 있다.

(2)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

(3) 그다지 신뢰할 수 없다.

(4) 신뢰할 수 없다.

(5) 모르겠다.

 

라는 설문 조사를 받으면 (5)를 고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미국이든 일본이든 니카라과든, 신뢰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신뢰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런 연유로 해서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해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신뢰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설문조사나 여론조사에 대해 죄다 '그런 건 모르겠다.'라든가 '뭐라 말할 수 없다'라고 대답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여론 조사의 원 그래프에 '모르겠다'는 대답이 8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다소 불안한 느낌이 들 테고, 그런 회의적인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아마 회의라는 것은 카레라이스에 나물무침을 곁들인 정도의 비율로 존재해야 건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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