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어찌 된 일인지 잘생긴 남자를 밝히는 여자들이 많다. 나이 서른이 지나 남편도 있으면서 뭘 그리 잘생긴 얼굴을 밝히느냐고 나는 생각하지만, 마음이 약해서 그런 소리는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한다.
단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나는 그런 여자들에게 훌리오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 출판사에서 내 글을 담당하고 있는 여자도 훌리오 증후군에 걸린 환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훌리오 전에는 이브 몽땅의 팬이었다. 몽땅이 일본에 왔을 때는 아파서 누워 있는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현금 카드로 은행에서 몰래 2만 엔을 인출해서는, 티켓을 사서 혼자 콘서트에 가 '이제 남편 따윈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냐'라고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마도 훌리오 증후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사람이 최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팬이 됐다.
"있잖아요, 하루키 씨. 훌리오의 연간 수입은 몇백 억에, 자가용 비행기도 갖고 있고, 별장 같은 건 한 다스쯤 갖고 있으며, 전 세계에 애인이 몇십 명이나 되는 데다 훌륭한 인텔리라고요.. 어때요, 부럽죠?" 하고 그녀는 말한다.
너무도 환경이 달라서 그런 말을 들어도 부럽지 않을뿐더러 아무렇지도 않다. 전 세계에 애인이 몇십 명이나 있다면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플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마누라 하나밖에 없는데도 잠꼬대를 하면서 옛날 애인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할 정도인데, 훌리오는 참 잘도 해내고 있구나 싶다. 꼼꼼한 성격인가 보다, 틀림없이.
그녀 역시 만약 훌리오에게 구애를 받는다면 마음이 솔깃해질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훌리오의 몇십 명이나 되는 애인 중의 하나가 되어 매년 5,000만 엔 정도의 수당을 받겠다고, 그렇지만 한 해에 5,000만 엔을 다 쓸 순 없을 테니까 그중 1,000만 엔쯤은 지금의 남편에게 송금해 주겠다고 한다. 이런 여자를 정숙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세상의 일반적인 주부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는 내 상상력 밖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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