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영구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리학의 일반상식이지만, 반영구운동이랄까, '영구 운동 같은 것'은 꽤 있다. 예를 들면 카키피(과자 이름. 땅콩이 감씨 모양의 과자에 섞여 있음)를 먹는 것이 그렇다.
카키피라면 대개 알 것이다. 톡 쏘는 매운 감씨와 통통하고 맛있는 땅콩을 섞은 뒤에 잘 배분해 가면서 먹어야 한다. 누가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아이디어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배합이다. 그걸 착안한 사람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고 싶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설령 말해도 상대해 주지 않겠지), 탁월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감씨가 만담을 할 때 공격하는 역이라면, 땅콩은 멍청하게 받아주는 역에 해당하겠지만, 땅콩에는 땅콩의 통찰력이 있고 인격이 있어 그저 끄덕거리기만 하는 역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좋다. 감씨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서 날카롭게 되받아칠 때도 있다. 감씨는 그것을 알고서 자신의 역할을 의식적으로 오버해서 연출하고 있다. 참으로 절묘한 콤비라고 할까, 환상적인 호흡이다.
그래서 변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맥주를 마시면서 카키피를 먹으면 끝이 없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봉지가 비어있다. 거기에 맞춰 (목이 마를 테니) 맥주도 술술 넘어간다. 곤란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다이어트가 문제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식품인 카키피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하나는 '타인이 개입하면 감씨와 땅콩이 줄어드는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내는 땅콩을 좋아해서 나와 같이 먹으면 카키피 속의 땅콩만 일방적으로 먹어 버려, 결국 감씨만 남게 된다. 내가 투덜거리면, '당신은 어차피 콩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감씨가 많은 쪽이 더 좋죠?'라고 한다.
확실히 나는 땅콩보다는 감씨 쪽을 더 좋아한다. 그것을 기꺼이 인정한다(나는 대체로 냄새를 맡아보고 단 것보다 매운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카키피를 먹을 때, 나는 자신의 내재된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며 감씨와 땅콩을 가능한 한 공평하게 다루도록 애쓰고 있다. 자신의 속에 반강제적으로 '카키피 배분 시스템'을 확립하여 그 특별한 시스템 속에서 삐뚤어지고 보잘것없는 개인적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단 것과 매운 것이 있어서 양자는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세계관을 새삼 확인한다. 그러나 그런 까다로운 정신 작업을 다른 사람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도 솔직히 말해서 몹시 귀찮다. 그래서 '뭐, 그건 그렇지만......' 하고 궁시렁 거리면서, 주뼛주뼛 남겨진 감씨만 먹고 있다.
음, 일부일처제란 어려운 제도이다. 오늘도 카키피를 먹으면서 나는 새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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