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내 카페 종업원이었던 야마구치 이야기

chocohuh 2021. 7. 1. 10:00

지난번에 야마구치 마사히로가 찾아와서 ", 하루키 씨 제 펜네임 하나 지어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갑자기 '야마구치 마사히로'라는 이름을 대봤자, 독자들 대부분은 그게 누구인지 잘 모를 테니까, 일단 설명을 해둔다면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내가 경영하고 있던 재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인물이다. 당시는 무사시노 미술 대학의 학생이었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아서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도중에 슬그머니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하여간 그런 인물인데 그 후 광고 관계의 프로듀스 회사에 들어가,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책을 만들거나 해서 지금도 가끔 만나 술을 마시곤 한다. 부인은 상당히 미인인데 안자이 씨는 나를 만날 때마다 "야마구치에게는 아까워!"라고!"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날, 야마구치의 집에 놀러 가서 야마구치가 자리를 비웠을 때, 부인에게 "저런 친구하고 결혼해서 후회하고 있죠?" 하고 물으니까,

 

"아니예요, 야마구치 씨와 결혼해서 정말 행복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남의 집 일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인간에게는 참으로 갖가지 취향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야마구치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여사원을 몇 명 붙잡고서 ", 야마구치 멍청하지?" 하고 물어보니까, "아니에요,아니예요, 야마구치 씨는 회사에서 굉장히 진지하고 말이 없어서 그 사람 앞에 서면 긴장을 할 정도라고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머릿속이 텅 비어서 얼굴이 경직되어 있는 것뿐이라고" 하고 내가 말하니까, "무라카미 씨, 야마구치 씨에 대해서 지나치게 편견을 갖고 계신 것 아니에요?" 하는 말까지 들었다.

 

이 정도로까지 말을 듣고 나자 나로서도 '혹시 어쩌면 내가 야마구치라는 인간을 오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불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야마구치 본인도 "하루키 씨는 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니까요" 하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그러던 차에 야마구치에게 이사하는 걸 도와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는데, 역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1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역시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다. 그러나 물론 야마구치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쁜 사람은 미인 아내로부터 깊이 사랑을 받거나, 동료 여사원에게 호감을 사거나 하지 못한다.

 

설명이 상당히 길어지고 말았는데 그 야마구치가 나를 찾아와서 펜네임을 지어 달라고 한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삽화가가 되어볼까 하고 미즈마루 씨에게 그림을 가져갔었거든요. 그랬더니 미즈마루 씨가 그 그림을 보고는 '이봐, 야마구치, 그만두는 편이 좋겠어.' 하더라고요."

 

"알 만하 군."."

"질투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천만의 말씀."

"글쎄, 그래서 말이죠, 헤헤헤, 이번엔 글을 좀 써볼까 하고요. 글을 써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괜찮은 생각이군 그래."

"그래서 말인데요, 야마구치 마사히로라고 하면 어딘지 신좌익 같아서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 이번 기회에 하루키 씨께 펜네임을 부탁할까 하는 겁니다. 좋은 이름을 지어주시면 멋진 술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멋진 술집은 둘째치고 나는 타인의 펜네임을 생각하는 것을 꽤 좋아한다.

 

"자네, 시모다 태생이었지?"

", 그렇습니다. 시모다입니다."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는 어때?"

"참내, 무슨 어선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 것 말고요, 가령 시마다 마사히코라든가, 사와키 고타로 같은 멋진 이름을 지어주세요."

"야마구치 이즈시치는 어떻겠나?"

"머리 나쁜 순경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하루키 씨, 뭔가 저에 대해서 편견 같은 거 갖고 계신 것 아닙니까?"

 

이런 옥신각신 끝에 야마구치는 실망만 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멋진 술집도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나 나는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라는 이름이 꽤 마음에 들어서, 그 이래 계속 야마구치 마사히로를 '시모다마루'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 탓인지 본인도 점점 그 '시모다마루'라는 이름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이름 탓인지 나도 야마구치 마사히로 시대의 야마구치보다는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로 이름을 바꾼 뒤의 야마구치 쪽에 훨씬 더 호감을 갖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펜네임이나 가게의 이름을 지으려고 할 때, 우선 듣기 좋은 이름을 고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거꾸로 그런 때에는 언제나 멋대가리 없는 이름을 고르기 때문에, 내가 제안한 이름은 항상 기각당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아는 사람이 바를 연다고 가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대사막'이라는 걸 제안했더니 그 자리에서 기각당했다..

 

"'대사막' 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 바에 도대체 누가 술을 마시러 들어오겠습니까?"

"하지만 나 같으면 들어가겠네.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구경하고 싶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건 하루키 씨뿐일걸요."

 

그런 연유로 아오야마와 아자부 방면에는 듣기 좋은 이름의 바들이 넘쳐나고 있다. 조금 집요한 것 같지만 만일 '대사막' 이라는 술집이 있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들어갈 텐데.

'무라카미하루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정쩡한 내 고향  (0) 2021.07.01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  (0) 2021.07.01
크로켓과의 밀월  (0) 2021.06.28
도넛  (0) 2021.06.28
가르치는 데 서툴다  (0) 2021.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