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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

chocohuh 2021. 7. 1. 10:01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란 게 나의 좌우명이다. 조만간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에게 족자에 그렇게 써달라고 해서 거실에 걸어 두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글씨 밑에 철제 아령 그림 같은 게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는 재능'이냐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불러들이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불러들일 가능성은 일단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다고 해서 재능이 부쩍부쩍 늘어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노력과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체력이 필요하고, 노력과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재능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인 것이다.

 

하기야 이런 사고방식은 천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천재란 아무리 허약하더라도, 그리고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훌륭한 작품을 창출해 내는 존재다. 의식적인 자기 훈련이란 천재에게는 인연 없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는 천재가 아니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건강이 소중하다. 대단한 재능도 없는 주제에 병을 달고 다니는 거야말로 작가로서는 가장 불행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좌우명을 족자로 만들 것까지도 없이, 나는 상당히 건강한 인간이라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고, 10년 동안 의사를 찾아갔던 적도 없다. 약도 먹지 않고, 몸 어딘가에 신경 쓰이는 증상이 나타난 적도 없다. 어깨 결림, 두통, 숙취로 애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불면증은 20대 초반쯤에 몇 번인가 경험했었던 같은데, 지금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두통이나 숙취, 어깨 결림이 실제로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짐작이 가지 않으니 동정심도 별로 일지 않는다.

 

때때로 집사람이 "오늘은 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어도 "어어, 그래?" 하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다. 그런 건 반어인이 "오늘은 아가미와 비늘이 스쳐서 아파요"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됐다고는 생각하지만,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육체적 아픔, 고통이란 건 정확하게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에게 "넌 동정심이 부족해"라고 비난받는데, 그건 당치도 않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동정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 증거로 치통이나 뱃멀미로 고생하는 사람이나, 의자에 정강이를 세게 부딪친 사람에 대해서 나는 항상 진지하게 동정하고 있다.

 

숙취라는 것도 이해가 잘 안 가는 고통 중의 하나다. 나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매일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술에 만취되는 일도 있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숙취라는 건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아무리 형편없이 취했어도 아침 햇살이 비치면 말짱하게 깨어나는 것이다.

 

잘 이해가 안 가서 친구에게 가끔 "숙취란 게 어떤 건데?" 하고 물어보지만,, 누구 한 사람 정확하게 묘사하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튼 머리가 무겁고, 띵하고, 좌우지간 아무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거야"라는 정도의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소릴 해도 '머리가 무겁다'라는 게 어떤 상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포기하고 만다. 그 이상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 봤자 "그것 참 귀찮구먼, 숙취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 숙취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턱이나 있겠어?"라는 푸념만을 듣기 일쑤다. 사람들은 모두들 숙취 얘기만 나오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일전에 어느 곳에서 맥주를 몇 병인가 마신 뒤에 다른 곳으로 옮겨 와인을 집중적으로 마시고, 상당히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잔 적이 있다. 이튿날 아침 일곱 시경에 눈을 뜨자 엷은 안개가 낀 듯 머리가 멍했다. 그래서 문득 '이것이 가벼운 숙취란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밥을 먹고 나서 12킬로미터쯤 달리고 돌아오니 그런 흐리멍덩한 증상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이 친구야, 그런 건 숙취도 아냐. 숙취일 때는 식욕 같은 건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을뿐더러 애당초 달리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거라고"라고" 했다. 그러니 숙취라는 건 나에게 있어서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변비, 치질, 꽃가루 알레르기, 신경통, 생리통(물론 당연하지만), 현기증, 식욕 부진 같은 종류도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다. 구역질, 설사, 치통, 피로감, 감기, 고소 공포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아픈 데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는 건,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적어도 건강한 사람들끼리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그건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닌 공감대의 질이 높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것은 치질이나 변비 이야기로, 본인은 굉장히 힘겨워하는 듯싶지만 목숨과 직접 상관이 있는 병이 아닌 만큼, 이야기가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비통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비통하긴 하지만 우습고, 우습긴 하지만 비통하다는 느낌은 건강한 몸으로선 경험하기 어려운 감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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