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토에서 태어났지만 바로 효고 현 니시노미야 시 슈쿠가와란 곳으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같은 효고 현의 아시야 시로 옮겼다. 그러니까 내가 어디 출신인가는 명확하지 않지만 10대를 아시야에서 보내고, 부모님의 집도 그곳에 있으니까 일단은 아시야 출신이라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좀 더 막연하게 '한신칸 출신'이라고 해야 내 마음도 편하겠지만, 이 '한신칸'이라는 말의 뉘앙스는 간사이 지방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이해하기 힘들다.
하긴 아시야라고 해도 내가 자란 곳은 지금 한창 화젯거리가 되고 있는 공주병 붐이 일어난 아시야가 아니라,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인 아시야니까 아무래도 솔직히 "아시야 출신입니다"하고 말하기가 좀 그렇다. 괜히 쑥스럽다. 우리 집 주위는 납치당할 것 같은 순간에 큰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우르르 까지는 아니더라도 네댓 명 정도는 좋이 튀어나올 듯한, 극히 평범한 주택가다.
예전에 덴엔초후 시 출신의 남자와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도 "그렇다니까. 정말 그래"라며 동감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만 해도 말이지, 덴엔초후에서도 가난한 쪽에 속하는데, 태어나고 자란 곳이 덴엔초후라고만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굉장하다고 놀란다니까. 정말 답답해서 원.“
그런 얘기였는데 진짜 답답할 것 같다. 나만 해도 10대 시절을 아시야에서 보내면서 '공주님' 같은 여자 아이와는 단 한 번도 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아시야에 대해 지금도 가장 잘 기억나는 것이라면, 한밤중에 종종 집을 빠져나가 해안가(지금은 이미 없어지고 말았지만)에 가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정도인데, 그런 건 딱히 아시야가 아니더라도 바다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줄곧 "고향이 어디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고베 쪽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고베요, 좋은 곳이죠."라는 소리를 듣는 일이 많아 이것도 또 찜찜하여, 요즘에는 "효고현 남부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효고 현 남부'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일기 예보처럼 시원시원해서 퍽 마음에 든다. 그러나 출신지를 밝히는 일 하나로 심각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해야 한다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은 친구들이 많이 있는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므로 돌아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지만, 도쿄의 대학을 나와 도쿄의 회사에 다니는 코스를 밟아 결혼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던 한신칸 출신의 친구들이 요즘 들어 탁탁 신변을 정리하고 간사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득 둘러보니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지금도 도쿄에 있어서 연락이 닿는 친구는 딱 한 명밖에 없다.
그들이 귀향하는 이유를 대충 요약하자면, 아이들도 제법 컸고, 도쿄보다도 한신칸 쪽이 훨씬 주거 환경도 좋으니까 이제는 슬슬 속속들이 잘 아는 곳에서 느긋하게 지내고 싶다고 하는 정도가 된다. 대개의 회사는 간사이에 지사(혹은 본사)가 있어서 도쿄를 떠난다 해도 별달리 생활에 곤란을 겪는 일은 없다. 때때로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 한신칸 출신들은 도쿄에 와서도 맹렬하고 활달하게 활동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개중에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이것은 나의 친구들과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모두들 비교적 느긋하게 지내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거나 다른 사람의 등을 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뭐 그러면 좀 어때" 하는 정도에서 대개 일이 수습돼 버린다.
로렌스 캐스던 감독의 영화 중에<다시 만날 때>란 게 있다. 1960년대 아이들이 십몇 년인가 만에 재회를 했지만 애증이 뒤범벅이 된 동창회가 되고 만다는 얘기로, 만약에 똑같은 설정하에서 한신칸 출신들을 주인공으로 기용했다면, 그 영화는 그다지 애증이 엇갈리지 않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오랜만이야. 요즘 뭐 하고 지내?"
"소설 쓰고 있어"
"소설 쓰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
"그저 그렇지 뭐"
"그래, 잘해 봐. 건강하고.“
이런 정도로 별다른 얘기 없이 영화가 끝나 버릴 것 같다. 오모리 가즈키가 <다시 만날 때>를 다시 제작한다면 어쩌면 이런 노선에 근접할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아시야로 돌아간 친구와 오래간만에 도쿄에서 만나 한신칸에 대한 갖가지 새로운 정보를 들었다.
"일전에 우리 어머니가 신문에 가정부 모집 광고를 냈더니 스물대여섯 명이나 신청을 했지 뭐야. 그래서 아시야 시민 회관을 빌려서 면접을 했더랬어"라고 그는 말했다. 가정부 면접을 하는데 시민회관을 빌렸다니 스케일이 크다고 해야 할까, 기개가 웅대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굉장하다.
"그래서 어머니가 혼자서 하기는 힘들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었거든. 여하튼 스물몇 명이니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할 것 아냐.“
그의 얘기에 따르면 그 스물몇 명 중에는 '어째서 이런 사람이'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아름답고 이지적인 사람도 있어서, 한 사람을 고르는 데도 굉장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나도 한 번 아시야 시민 회관에서 가정부 면접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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