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과 장수 중 어느 쪽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물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고 나는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 사전을 펴놓고 동서고금의 작가들의 얼굴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 장수하는 것도 좀 그렇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어 죽은 작가들은 언제까지나 젊을 때 얼굴이 남아 있는 데 비해, 장수를 한 작가는 죽기 직전의 사진이 당연한 듯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랭보나 푸슈킨의 사진은 항상 젊고 발랄하다. 거기에 비해 톨스토이나 시가 나오야는 벌써 '노인네!'하는 느낌이다. 시가 나오야? '아, 그 교과서에 사진 실린 대머리 할아버지 말이지.' 하게 되어 버린다. 그들로서 보면 ''한 번쯤은 젊을 때 사진도 좀 실어 봐. 이거야 마치 나는 평생 노인네였던 것 같잖아.'하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목소리는 속세에 들리지 않고(들릴 리 없지만), 언제까지나 늙고 머리가 벗겨진 주름투성이의 얼굴 사진이 세상에 유포되고 있다.
뭐, 그런 것이 죽어도 싫다면, 샐린저처럼 어느 시점부터 높은 담 속에 숨어서 세상에 얼굴도 보이지 않고, 새로운 사진은 일체 찍지 않으면 되겠지만(샐린저는 올해로 82세가 되지만, 중년기 이후의 그의 얼굴은 거의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하는 것도 좀...... 그렇다. 솔직히. 게다가 사람들에게 숨어 지내는 동안 전설도 되지 못하고 모두에게 깡그리 잊혀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외국에는 작가의 얼굴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프로 사진작가가 있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문가로서 거의 작가의 얼굴 밖에 찍지 않는다. 작가를 촬영하고, 그 필름을 파일로 저장해 놓고 출판사가 요청하면 빌려 주고 수입을 얻는다. 최근에는 젤리 바우어와 마리온 에트링거 두 사람이 그 대표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들에게서 나도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역시 전문가!' 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예이지만, 솜씨 좋은 치과 의사 같았다.
에트링거 씨가 뉴욕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레이먼드 카버의 흑백 사진은 카버가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이른바 마지막 프로필 사진으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그것은 여간 근사한 맛이 나는 사진이 아니다. 한창 활동 중인 작가의 에너지 같은 것이 생생하게 배어 나온다.
열심히 건강 유지에 힘써서 96세까지 살다가, 결국 후세 사람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 지저분하고 비실거리는 별 볼일 없는 노인네잖아.'라는 말을 듣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찍 죽고 싶지도 않고 말이야. 골치 아프군, 궁시렁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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