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 때 동급생한테서 "너는 언제나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나는 교실 안에서 생각에 잠긴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니까, 그 무렵부터 나의 '방심' 상태는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아니 전보다 한층 더-나는 자주 '방심' 상태에 빠진다. 타인과 함께 있으면 긴장하고 있으니까 그러한 일이 거의 없지만, 혼자 있게 되면 몇 분 간인가 의식이 전혀 없는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된다. 특히 욕실에서 심한데, 무엇인가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헤어브러시에 치약을 얹어서 이빨을 닦고 있기가 일쑤고 칫솔에 샴푸를 짜서 묻힌 적도 있다.
세 번에 한 번은 린스로 머리를 감은 뒤에 샴푸를 사용하고, 셰이빙 크림을 얼굴에 칠하기는 했으나 수염을 깎지 않고 말끔히 씻어 낸 뒤에 그대로 외출한 적도 있다.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착각해서 목욕을 할 생각으로 옷을 전부 벗어버린 일도 있다. 그것도 한참 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가 없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뚫어질 듯이 응시하는 일도 있다. 문득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아니, 왜 내가 이런 것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을까?' 하고 이상스럽게 생각하지만, 보고 있을 때는 전혀 그런 의식이 없다. 이전에 지하철에서 쉐이프 팬츠 따위의 포스터를 뚫어질 듯이 몇 분씩이나 들여다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로 창피했다.
이런 것은 정말이지 난처한 일이다. "하루키 씨는 덤벙거려서 귀여워요!"하고 젊은 아가씨에게 말을 들을 정도라면 괜찮지만-그런 말을 들은 일은 없다-나이를 먹고서도 이런 짓을 한다면 완전히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나는 일단 소설을 써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으니까, 이러한 일종의 비사회적 행위도 예술 활동의 부산물이라고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그나마 하나의 구원이다. 노상 전철을 잘 못 타거나, 전철 표와 디스코테크 우대권을 착각하고 역무원에게 건네주었다가 혼나거나 하는 외과 의사에게, 맹장 수술을 부탁해야겠다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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