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행사인 이사를 해서-도대체 이 18년 간 몇 번이나 이사를 했는지-집 안이 혼란스러워 아무튼 소설을 쓸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야쓰가다케의 호텔에 한 열흘 정도 틀어 박혀 작업을 하기로 했다. 간혹 호텔에 틀어박혀 일을 하면 기분 전환도 되고 별로 싫진 않지만, 도심지의 호텔에서는 대개의 경우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놓는 바람에 몸에 오히려 해로운 수가 많다. 그래서 야쓰다가케까지 일부러 갔던 것이다.
조용하고 공기도 좋고 일 자체가 잘 진행된다. 다만 리조트 호텔에 묵으면서 작업하는 것의 문제점이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만을 생각해버리는 데 있다. 이제 슬슬 아침을 먹어야지 라든가, 점심은 몇 시에 식당에 가면 된다든가, 오늘 저녁 메뉴에는 뭐가 나올까라든가,, 하루 종일 그런 것만 생각하게 된다. 나 자신이 처량해진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대개 뚱뚱해져서 돌아오고.
야쓰다가케까지는 쇼카이 선을 타고 간다. 쇼카이 선 전철에는 여자아이들이 참으로 많다. 거기다 이 주변은 도쿄권과 간사이권이 마주치는 지역이기 때문에 도쿄에서 온 여자 군단과 간사이에서 온 여자 군단이 고부치자와 근처에서 난류와 한류처럼 콱 부닥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소란스러움은 절정에 이른다. 생지옥이다. "아이, 싫어. 바보같이" 라든가, "그런 소리해봤자 누가 들어나 준대?"라든가,?" 라든가, 아무튼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고막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도심지가 선로 위를 달려 지나가는 것 같다. 나이 지긋한 역무원이 다가와서, "아아, 여러분, 좀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손님들도 계시기 때문에" 하고 말해봤자 어느 누구 하나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들을 리가 없다.
모두가 스포츠 백과 테니스 라켓을 갖고 있다. 이렇게 테니스를 치는 사람이 많은데도 세계적인 일본인 테니스 선수가 배출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해보았자 아무 소용없기 때문에 워크맨의 이어폰을 귀에다 꽂고 혼자서 묵묵히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 네 사람이 앉는 좌석에, 나와 일행인 여자 아이들 셋이 앉아 있다. 저쪽도 불편하겠지만, 이쪽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주변에 여자 아이들이 잔뜩 있으면 긴장이 되고 가슴이 두근거려 책 같은 건 도저히 못 읽었는데 최근엔 '젊은 여자들은 재잘거리고 귀찮고 싫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아직 그렇게까지 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되는데도 이러니 큰일이다.
일을 마무리 짓고 열흘 후에 전철로 도쿄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전동차는 갈 때와는 딴판으로 텅텅 비어 있었다. 연휴가 끝났기 때문이다. 네 사람이 앉는 좌석에 나 혼자 앉아서 [고리키 파크]를 읽고 있노라니 얼마 있지 않아 맞은편 좌석에 테니스 걸보다는 한 단계 나이가 위인 듯싶은, 20대 후반쯤 되는 여자가 앉았다. 제법 분위기 있는 여자였다. 이 여자는 아오야마 풍의 패션으로 몸치장을 했고 무릎 위에는 여성 잡지 [앙앙]을 얹고 지루한 듯이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도 혼자서 여행하는 모양이었다.
혼자 여행을 할 때 곤란한 것은, 같은 처지의 여성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동석하거나 하는 것이 가장 곤란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둘밖에 없다. 물론 곤란하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곤란하다. 말을 거는 것이 좋을지, 걸지 않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말을 걺으로써 '모처럼 혼자서 조용히 여행을 즐기고 있는데 귀찮게 구네'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싫다. '속으론 엉큼한 생각을 품고 있겠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불쾌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루한데 이야기 좀 걸어주면 어때. 아마 소심한 남자인가 봐' 하고 생각해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참 어렵구나, 하고 느낀다. 어떡한다지, 하고 고민하면서 캔 맥주를 따서 마시며 [고리기 파크] 책장을 넘기고 있는 사이에 전동차는 종착역에 닿아버렸다. 그것으로 끝이다.
이런 일은 정말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대수롭지 않은 만큼 몸에 좋지 않다. 이럴 바에야 할머니나 아주머니 단체와 동석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혼자 여행을 하는 여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은 이런 경우 말을 걸어주기를 바랄까, 아니면 걸어주지 않기를 바랄까?
젊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번은 그 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하루키 선생님은 바보 같으시네요. 그건 상대방에 따라 틀린 것 아니겠어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딴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나 같은 사람은 더욱 고민스러워진다.
말을 건다 치더라도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화제가 없지 않은가.
"그 [앙앙] 잡지 재미있어요?"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스물다섯, 여섯 정도의 여자가 이야기를 걸어오는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저, 학생은 어느 대학 다니나요? 아, 와세다요. 애인은 있나요? 지금 읽고 있는 그 책은 무슨 책이죠?"
아무튼 이런 질문을 장장 세 시간 동안이나 받고 혼이 났던 적이 있다.
그 당시의 신칸센은 차량 하나에 손님이 두세 사람밖에 없었는데도 그녀는 마치 노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내 옆에 앉아서 "저, 학생은 몇 살이죠? 어디 살아요?"라고?" 말을 걸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그 대답을 다 해주느라 진짜 애를 먹었다. 그래도 비교적 예쁜 여자였기 때문에 나이 차이 같은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때 당당하게 말을 주고받고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으로서는 일어나지만 그 무렵엔 나도 아직 순정파였기 때문에 불안에 떨며 세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하는 여성에게는 말을 걸기가 힘들다. 나는 딱히 소심한 사람은 아니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는 데에 있어서 약간 과민한 구석이 있다. 속마음에 관해서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딜레마를 제외시켜 놓고 본다면, 혼자 여행을 하는 여자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볼 때 비교적 좋은 느낌이 드는 분류의 사람이다.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는 여자 아이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약간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무릎 위에 책을 얹어놓고, 때때로 문득문득 창밖을 내다본다. 몰래 살짝 도시락을 먹거나 뭔가를 마시거나 한다. 그리고 혼자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과묵하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하는 투의 불필요한 말은 일체 걸어오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러는지 모르지만 차 안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여자아이와 동석을 하거나 하면 "저, 어디 갔다 오시는 길이죠?" 한다거나 "즐거웠어요?" 하는 흔해빠진 질문을 하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는 편이 좋겠다는 느낌이 들어, 마침내 말을 걸어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에 [밤의 나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기타를 메고 혼자 여행을 하는 젊은 여자 아이의 이야기다. 그녀는 밤 열차 안에서 색다른 노부부와 동석해서 기묘한 체험을 하는 내용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참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열차 안에서 혼자 여행을 하는 여자아이를 만나면 언제나 이 단편을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