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탈모와 스트레스

chocohuh 2021. 3. 31. 08:59

며칠 전 어떤 주간지로부터 <나의 20>라는 난에 싣고 싶으니 20대 시절에 찍은 사진을 한 장 빌려 달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지금도 그렇지만) 20대에 찍은 사진이라고는 거의 없는데, 그래도 여기저기 뒤적이다 보니 대여섯 장 정도가 나왔다.

 

그런데 불과 10년밖에 안 된 사진을 보고 발견한 사실인데, 20대 시절보다도 지금이 확실히 머리숱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헤어스타일이 달라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아도 지금이 더 머리숱이 많다. 부푼 데다가 밀도도 높다. 이발소에 다니는 횟수도 전보다 잦아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숱이 많아졌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은 "옛날에 비해 머리를 쓰지 않게 돼서,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으니까 그런 거 아냐?" 하고 쉽게 말해 버리지만,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소설이라고는 해도, 소설을 쓰기 위해선 역시 그 나름대로 머리를 써야 하고, 머리를 쓰면 스트레스도 쌓이게 된다. 문단이라든가 업계라든가, 세금이라든가 대부금도 있으니, 작가라고 해서 느긋하게 마당에 내려앉은 참새나 바라보며 "벌써 봄인가"라는 말이나 하고 있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머리를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 간단히 결론을 내려 버리고 싶지는 않다. 나라고 해서 이런저런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어려움이 외모에 반영되지 않을 뿐이다.

 

그렇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확실히 내 머리숱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부터다. 그렇다면 전업 작가가 된 게 내 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내 머리숱이 많아진 비밀도 저절로 풀릴 것이다. 몇 가지 변화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쿄를 떠나 교외에서 살게 되었다.

(2) 다른 사람과 만나는 일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3)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4)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스스로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5) 매일 운동을 하게 되었다.

(6) 접대로 마시는 술자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머리숱이 적어지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 한마디로 결론을 내릴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 경우에는 이러한 생활의 변화가 머리카락의 상태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뒤집어 말하면, 등골 빠지게 소설을 쓰고 있지 않다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때-5년쯤 전의 일이지만-나 역시 머리숱이 상당히 준 적이 있었다. 그 무렵에는 사업상 이런 저런 말썽이 많아(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몹시 피곤하다), 그 때문에 머리카락이 계속해서 조금씩 빠졌었다. 욕실에 들어가 머리를 감으면 욕실 바닥의 배수구엔 언제나 기가 찰 정도로 많은 머리카락이 엉켜 있었다.

 

나는 워낙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처음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이윽고 목욕을 하고 거울 앞에 서면 머리카락 사이로 두피가 약간 보일 지경에 이르렀고, 그러는 사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머리숱이 좀 준 거 아니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자 나도 꽤 머리를 의식하게 되어 헤어스타일을 바꾸기도 하고, 헤어 토닉으로 정성껏 두피를 마사지하기도 했다. 탈모라든가 발기부전이라든가 하는 것은(후자는 아직까지는 관계없지만) 비만이나 금연과 달리 스스로 암만 노력해도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당사자는 몹시 울적하다.

 

그러나 사람들이란 참으로 잔인해서, 본인이 신경을 쓰면 쓸수록 "괜찮아, 괜찮아. 요즘엔 가발도 잘 나온다구"라든가, "하루키 씨는 머리가 벗겨지면 벗겨진 대로 꽤 귀여울 거예요"라는 둥 정말 집요하다. 어느 한 쪽 귀가 잘라져 나갔다거나 하는 얘기라면, 모두들 안됐다고 동정하지 앞에서 놀리거나 하지는 않을 테지만, 탈모라는 건 구체적인 아픔을 동반하는 게 아니니까 진지하게 동정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젊은 여자들은 자신도 머리가 벗겨질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지 않은 만큼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천진난만하다. "어머, 세상에. 정말 벗겨지잖아. 어디 좀 보여 줘요. 어머 두피가 보여. 와 싫다, 싫어"라는 식으로, 이런 때는 정말 화가 난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귀찮고 불쾌한 상황이 개선됨에 따라 빠지는 머리카락의 양도 서서히 줄어들어 두세 달이 지날 무렵에는 머리카락이 완전히 예전 상태로 회복되었다. 그 이후로 머리카락에 대해서 걱정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젠가 또다시 어떤 연유로 해서 거대한 트러블에 말려들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자질구레한 일에 안달복달하지 않고,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지도 않고,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무라카미하루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동차 유감  (0) 2021.04.02
장수하는 것도 말이지  (0) 2021.03.31
욕실 속의 악몽  (0) 2021.03.26
재수 좋은 고양이를 만날 확률  (0) 2021.03.26
봄의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진 오후  (0) 2021.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