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봄의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진 오후

chocohuh 2021. 3. 22. 09:30

옛날이야기.

 

중학교에 들어간 해 봄, 생물 첫 시간에 교과서를 잊고 와서, 집까지 생물책을 가지러 돌아간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15분쯤 되는 곳에 있었으니까, 뛰어서 왕복하면 수업 시간에는 거의 지장 없이 되돌아올 수가 있었다.

 

나는 매우 순진한 중학생이었으니까(옛날 중학생들은 모두 순진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열심히 달려서 집으로 돌아가 교과서를 집어 들고, 물을 한 컵 꿀꺽꿀꺽 들이키고 나서 다시 학교를 향해 뛰었다.

 

우리 집과 학교 사이에는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다. 그다지 깊지 않고 물이 깨끗한 강인데, 그곳에 오래된 돌다리가 걸려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도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좁은 다리이다. 주위는 공원으로 되어 있어서, 협죽도가 눈가리개처럼 무성하게 늘어서 있다. 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난간에 기대고 남쪽을 응시하면 바다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따끈따끈하다'고 하는 형용사가 딱 들어맞는, 마치 마음이 풀어져서 녹아내릴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봄날 오후여서, 주위를 둘러보니까, 모든 것이 지표에서 2, 3센티미터 가량 떠올라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숨을 돌리며 땀을 닦고는 강기슭의 잔디밭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계속 달렸으니까 5, 6분쯤 쉬어가도 상관없을 것이다.

 

머리 위의 흰 구름은 꼼짝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눈앞에 손가락을 한 개 세우고 재보니까, 아주 조금씩 동쪽을 향해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 밑에 벤 생물 교과서에서도 역시 봄의 냄새가 났다. 개구리의 시신경과 저 신비스러운 랑게르한스섬(췌장에 있는 내분비 세포, 췌장 전체에 섬 모양으로 산재)에서 봄의 냄새가 났다. 눈을 감으면 부드러운 모래밭을 어루만지듯이 흘러가는 강물 소리가 들렸다. 마치 봄의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버린 것 같은 4월의 오후에 다시 뛰어서 생물 교실로 되돌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61년 봄의 따뜻한 어둠 속에서, 나는 살며시 손을 뻗어 랑게르한스섬의 강기슭을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