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올해엔 설날은 비교적 즐겁다라고 쓰고 싶다

chocohuh 2021. 2. 9. 13:46

작년 정월 나는 '설날 같은 것은 조금도 즐겁지 않다'는 의미의 내용을 썼는데, 금년에는 설날은 비교적 즐겁다는 식으로 써보고 싶다. 나는 그런 것을 꽤 좋아한다.

 

때때로 혼자 토론회를 벌이며 즐기곤 한다. 가령 '인간에게는 꼬리가 있는 편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식의 테마로 꼬리 지지파 A와 꼬리 배척파 B를 교대로 혼자 해가면서 말이다. 그런 걸 하고 있노라며, 인간의 의견 혹은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애매모호하고 임시변통적인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 애매모호하고 임시변통적인 점이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설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설날이 되면 우리 집에선 일단 설음식 같은 걸 만든다. 연말에 집사람과 함께 쓰키지의 생선 시장에 가서, 방어니 다랑어니 새우니 야채 따위를 한 아름 사 가지고 와 설음식을 잔뜩 만든다.

 

솔직히 말해 나는 설음식을 병적으로 좋아한다. 나는 대체로 고기나 기름기가 많은 것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생선이나 야채 지진 것을 조물조물하게 잔뜩 늘어놓은 잔치음식을 끔찍이 좋아한다. 한 달 정도 설음식을 계속 먹어대도 아마 물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떡국도 좋아한다. 우리 집 떡국은 내가 고기를 싫어하니까 다랑어와 다시마오 국물을 내서, 방어 살과 새우, 파드득 나물, 버섯, 어묵, 당근, 무와 토란, 구운 떡을 집어넣은 잡탕이다. 이틀째에는 방어 대신에 연어 살과 연어 알, 사흘째에는 삼치를 집어넣는다. 이런 것이 식탁에 오르면 마음속 깊이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잔뜩 음식을 만들어도 우리 집은 단 두 식구인 데다 나의 동반자는 본래 소식을 하는 편이고, 나는 절식을 하고 있으니까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는다. 그래서 매년 사흘째에는 두 사람이 모두 대식가 친구 부부를 초대해서, 펠리니의 영화처럼 실컷 먹고 마시게 하도록 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오면 대형 정종통도, 남아 있던 포도주도 깨끗이 비워지고, 그날이 지나면 내버려야 할 음식도 버리지 않아도 되니까 정말 고맙기 짝이 없다. 식사가 끝나면 스크램블 게임을 하거나 마작을 하면서 즐겁게 논다.

 

먹는 것 외에 설날의 좋은 점이라고 하면, 우선 하늘이 깨끗해지고 거리가 조용해지는 것일 거다. 트럭이나 그런 대형 자동차의 수도 적어진다. 나는 자동차라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평상시엔 길을 가득 메우던 그 많은 자동차가 드문드문 지나가고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한 기분이 된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거리를 조깅하면 정말 기분이 상쾌하다.

 

그러나 즐겁다 즐겁다 해도, 도쿄의 도심에 살면서 설날을 맞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 동안 센디가야에 살았는데, 그때는 정말로 재미있게 설날을 보냈다.

 

우선 섣달 그믐날 저녁때 걸어서 롯폰기에 있는 메밀국숫집 마미아나에 가서 메밀국수를 먹고, 신주쿠로 나와 술을 마시고, 가부기초를 어슬렁거리다가 영화 구경을 하고, 그러고 나서 하라주쿠에 가서 도고 신사를 기웃거리다 길흉을 점치는 제비를 뽑고,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레코드 가게의 올 나이트 바겐세일을 기웃거리고, 노점에서 낙지 구이를 사 먹고,, 그리고는 걸어서 센다가야로 돌아와, 하토노모리 신사에서 제주를 얻어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명절 음식을 먹고, 뜨거운 우동을 먹으면서 '홀 앤드 오츠'의 레코드를 듣고 나서 잠이 드는 스케줄이다. 이것이 섣달 그믐날 밤이다.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일찍 일어나서 아카사카까지 걸어간다. 그 부근의 분위기가 참으로 좋다. 거리가 물을 뿌린 듯이 조용하고 넓은 도로도 휑뎅그렁하다. 공기가 산뜻해서 살갗이 따끔따금거린다..

 

미술관 앞에서 낙엽이 떨어진 은행나무 가로수를 빠져나가, 아오야마 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도쿄 마라톤에서 세코가 고메쓰를 추월한 문제의 언덕길을 내려가 아카사카에 도착한다. 왼쪽에 도요카와 이나리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잠깐 들러 다시 낙지 구이 같은 것을 먹는다.

 

그다음에는 히에 신사에 들린다. 히에 신사에서 복을 불러온다는 고양이 장식물을 사고, 힐틀 호텔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다.

 

이런 식으로 설날에 시내 한가운데를 산책하고 있으면, 도쿄라는 곳은 참으로 좋은 곳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느껴진다.

 

하늘에 매연이 없고, 자동차가 적고, 사람 수가 적어지기만 해도 무척 태평스럽고 느긋한 기분이 될 수 있다. 행복하다. 매일이 설날 같으면 나는 기꺼이 도쿄에서 살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 지금은 지바에 살고 있다.

 

나는 정월에는 다른 사람의 집에 가지 않는다.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이다. 너무 불평만 늘어놓고 싶지는 않지만 정월의 텔레비전 프로는 어째서 그렇게 모두들 절규만 해대는 것일까? 일본 자체가 1년 내내 히스테릭하게 시끄러우니까, 정월의 3일 간만이라도 전국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중지하면 좋으련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자동차의 운전도 제한하면 좋겠다. 그러면 일본 전국이 조용해져서 좋을 것 같다. 정월에는 모두들 조용히 떡국을 먹읍시다!

 

그런데 인간에게 꼬리가 달려 있다면, 지우개 찌꺼기를 털어 낼 때, 굉장히 편리할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