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랐었지만, 다른 사람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도코야(이발소의 옛 호칭)'라는 말은 방송 금지 용어인 모양이다. 라디오라든가 텔레비전에서는 '리하쓰텐(이발소)'이라고 해야만 하는 것 같다. 단, '도코 야상(이발소도코야상(이발소 아저씨)'은 X와 Z의 중간인 Y로, 그 정도라면 뭐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고 한다. 이왕 내친김이니까 더 얘기하자면, '야오야(채소 가게)'는 X고, '야오야상(채소 가게 아저씨)'는 Y란다. 허 참, 세상이란 한없이 복잡하다. 도코야라는 말이 대체 어디가 어때서 차별적인 용어라고 하는 걸까? 가령 '재능 없는 작가'라는 비평은 차별적인 용어가 아닐까? '재능에 부자연스러운 작가'라든가 '재능에 핸디캡이 있는 작가'라든가 좀 더 완곡하게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어째서 '도코야'는 안 되고 '재능이 없다'는 허용되는 걸까? '오카마(역주: 남색을 가리키는 비어)'는 어째서 차별 용어가 아닌지, 이런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면 한이 없기 때문에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도코 야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사실 나는 옛날부터 이발소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이 고역이었다. <하이패션>의 독자 중에는 필시 이발소에 가본 적이 없는 분들이 무수히 많을 거라 생각되어 일단 설명을 해두자면, 이발소의 마사지 과정은 머리를 감은 뒤에 행해진다. 머리가 마르기까지 머리와 관계된 일 이외의 일이 '막간을 이용해서'라는 식으로 삽입되는 것이다.
어깨나 목이나 팔을 중심으로 1~2분 간 꼭꼭 주물러 주는데, 그것이 나한테는 참으로 고역이다. 어째서 고역이냐면, 어깨가 전혀 결리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어깨 결림이라는 걸 한 번도 의식하지도, 경험한 적도 없다(잘난 체를 하자면 숙취, 두통, 변비를 경험한 적도 없다. 불면증을 경험한 적도 거의 없다. 자기 혐오증은 1년에 약 두 번 정도). 그러니까 미안한 얘기긴 하지만, 모처럼 이발소에서 마사지를 받아도 그저 간지러울 뿐이다. 모두들 어깨 결림은 고통스러운 거라고 말하지만, 결리지 않는 어깨를 누군가가 쓸데없이 주물러 줘도 나름대로 꽤 괴롭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프로페셔널하게 열심히 주물러 주는데 트집을 잡듯이 "간지러우니까 마사지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는 좀처럼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몇 십 년 동안이나 이건 일종의 인간 수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내내 참아 왔다. 나는 이발소에 간다는 별것도 아닌 한 가지 일을 통해서도 인생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긴 요즘에는 반갑게도 이 마사지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어쩌면 나이를 먹음에 따라 내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안 되어도 조금은 어깨 결림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사지를 받고 '아아, 참 기분 좋구나'라고까지는 생각을 안 해도, 옛날에 비해 훨씬 덜 간지럽다고 느낀다. 덕분에 이발소에 가는 것이 옛날보다 훨씬 덜 고통스럽다. 사람이란 이렇게 사소한 일들을 쌓아 가면서 나이를 먹어 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발소 아저씨한테 "무라카미 씨는 어깨가 결리지 않으신가 봐요. 이 정도로 근육이 부드러운 사람은 많지 않죠."라는 얘기를 듣는다. 어째서일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님도 어깨가 결리는 체질이고, 아내도 그렇다. 나만 전혀 결리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의 어깨를 주물러 보았는데, 어깨가 가장 심하게 결리는 사람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바둑을 두시는 분들이죠. 그렇게 어깨가 결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딱딱한 것이 아예 돌덩이 같아요,"라고 이발소 아저씨는 말한다. 내가 다니는 이발소 바로 근처에 기원이 있어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 것이다.
분명히 머리를 쓰는 탓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딱한 일이다. 하지만 '아니, 아니, 잠깐. 그러고 보면 나도 일단 소설가고 이래저래 머리를 쓰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머리를 쓰고 있지 않은 건가? 그냥 머리를 쓰고 있다는 기분만 들뿐인가?? 소설을 쓰는 것은 바둑을 두는 것보다는 머리를 덜 쓰는 작업인가? 이발소 아저씨에게 나 이외의 다른 소설가가 머리를 깎으러 온다면 그런 비교도 가능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소설가 손님은 나밖에 없는 듯해서 비교할 방법이 없다. 어쩌면 이발소 아저씨가 ""이런저런 사람들의 어깨를 주물러 봤지만, 소설가처럼 어깨가 결리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라는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할지도 모른다.
나는 솔직히 다른 사람의 어깨를 주무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썼듯이 부모님도 아내도 어깨가 결리는 체질이므로 옛날부터 자주 어깨를 주물러 봤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니까 어쩔 수 없다. 나 자신이 어깨가 결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깨 결림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풀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모르는 일을 하자니 당연히 재미도 없다.
그래도 부모님의 경우에는 내가 어깨를 10분쯤 주무르면 용돈을 주시기도 했으니까 어렸을 때는 돈이 탐나서 참고 주물렀지만, 아내는 물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음음, 거기가 아파요. 왜 그렇게 못해요?"라든가 "좀 더 힘을 줘서 주물러요" 하고 혼을 내기 일쑤다. 내가 불평을 하면 "당신은 어깨가 결리는 고통도 모르고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 정도 봉사하는 건 당연하잖아요?"라고 반론을 편다. "그럼, 좋아요.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고요." 하는 얘기를 들으면, 그런 억지를 부릴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만 포기하고 열심히 어깨를 주무르게 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어깨를 주무르는 게 특기인 남자가 있다. 어깨가 결린다는 사람이 있으면(상대방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 어째서일까?) 그럼 잠깐 주물러 주지, 하고는 몸을 만지고 결리는 부분을 찾아서 시원하게 잘 풀어 준다. 나 같은 사람과는 달리 손놀림이 간결하고 요령이 좋으며 보기에도 효과적이다. 이 사람은 인기가 높아져서 마침내 마사지의 프로가 되었는데, 나도 그 기분을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내가 다른 사람의 어깨를 꾹 한 번 누르면 안개가 걷히듯이 그 사람의 어깨 결림이 가셔, "아아, 편안해졌어. 거짓말 같다. 정말 고마워" 하는 인사를 듣거나 한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분야가 어떻던,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기쁨을 준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도 내가 쓴 책을 읽고 "아아, 재미있었어." 하고 기뻐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격려도 되고, 더욱 재미있는 걸 써야지 하고 다짐도 하게 된다. 딱히 칭찬을 받으려고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내가 뻔뻔스럽다고 해도 기가 꺾여 도중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일이 계속 이어지면 그대로 프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재능의 경향이라 불러도 괜찮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경향이 생기면, 그것이 자동적으로 점점 짙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결과적으로 프로가 된다. 그런 경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경향은 원래부터 사람에게 입력되어 있나 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몸을 슬쩍슬쩍 만지기만 해도, 여기가 이런 식으로 뭉쳐 있으니까 여기를 이렇게 누르면 되는 거라고 알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전연 몰라서(요는 그런 재능이 입력되어 있지 않아서) 멀쩡한 관절을 함부로 꾹꾹 누르다가 아내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세상은 이렇게 무척이나 불공평한 것이다.
나는 어째서 마사지의 프로가 되지 못하고(혹은 될 수 없고), 이렇게 프로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일까, 하고 가끔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고, 적합하고 적합하지 않다는 근소한 차이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다르게 지압사가 되고, 바둑기사가 되고,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참으로 순수하고,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이런 걸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이에 이윽고 이발이 끝났다. 이발소에서 나는 온갖 일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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