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나는 이발소가 좋다

chocohuh 2021. 1. 25. 13:11

최근의 젊은 남성들은 대부분 유니섹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는 것 같지만, 나는 전부터 이발소 쪽을 좋아했다. 개성 없는 헤어스타일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용실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여자들 옆에서 여자 미용사가 머리를 깎고 감겨 주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리를 잔뜩 말고 있거나, 얼굴 면도를 하거나, 머리에 건조기를 뒤집어쓰고 얼빠진 얼굴로 주간지를 읽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점이 오래전부터 꽤나 신경에 거슬려서 한 번은 여자 몇 사람을 붙잡고 "미용실 옆자리에 남자가 있으면 싫지 않아요?" 하고 물어 봤더니, 그녀들 역시 한결같이 ",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줄곧 남녀 공학을 다녔으므로 여자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지만, 머리카락을 자를 때에 한해서는 역시 남녀가 따로따로 인 쪽이 편하다. 그래서 꽈배기 과자 같은 기둥이 서 있는 동네 이발소를 죽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미의 문제지, "모름지기 남자란 모두 이발소에 가야 한다."라고 확고하게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발소가 붐벼서 곤란해질 것이다. 미용실에 가는 사람은 계속 미용실을 이용해 주었으면 한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의 단골 이발소는 센다가야에 있다. 나는 지금 후지사와에 살고 있으므로 두 달에 세 번 꼴로 오다큐센의 로맨스 카를 타고 센다가야까지 머리를 깎으러 간다. 이래저래 가는 데만도 한 시간 반은 걸리니까 한가하다면 한가한 거고, 유별나다면 유별난 것이다.

 

후지사와에 살기 전에는 나라시노에서 살았는데, 그때도 역시 한 시간 반씩 걸려 지금의 이발소에 다녔다. 소부센 쾌속보다는 오다큐 로맨스 카 쪽이 운치도 있고, 값도 싸고, 애플 티도 마실 수 있으므로 나로서는 이쪽이 훨씬 편하다. 나라시노 전에는 센다가야의 이발소 근처에서 살았다. 그러니까 그럭저럭 8년째 단골인 셈이다.

 

어째서 그렇게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이발소만큼은 끈질기게 바꾸지 않는가 하면, 새로운 이발소에 가는 게 너무나 귀찮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발소에 가면 여러 가지 사항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설명해야만 한다. 우선 나는 회사원이 아니니까 그다지 단정한 머리형을 할 필요가 없고, 3주에 한 번은 머리를 깎으니까 그렇게 짧게 깎을 필요도 없다는 기본 방침을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고는 세부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귀 위는 어느 정도 길이로 하고, 가르마는 어디쯤에 있으며, 수염은 깎지 말고, 매일 머리를 감으니까 샴푸는 대충 한 번이면 되고, 헤어 리퀴드는 필요 없다고 설명을 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지쳐서 축 늘어지게 된다. 게다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설명한 대로 깎아 준다는 보장도 없다. 아니, 그렇게 깎아 주지 않는다. 특히 지방 소도시의 경우에는 더욱 심해서 대개는 군인 아저씨처럼 바싹 잘라 놓는데, 그러면 4~5일은 뿌루퉁해서 집에 틀어박히게 된다. 이런 일은 몹시 난처하다.

 

그런 점에서 단골 이발소는 문을 밀고 들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의자에 털썩 앉기만 하면 잠에 빠져 있어도 언제나처럼 알아서 말끔하게 다듬어 준다. 이렇게 편할 데가 있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이발소는 첫째, 이발사가 자주 바뀌지 않아야 한다. 종종 갈 때마다 이발사의 얼굴이 바뀌는 가게가 있는데 이래서는 이쪽도 마음이 놓이지 않고, 그때마다 다시 설명을 새로 해야 하므로 단골 이발소에 다니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사람이 들락날락하지 않는 이발소는 나름대로 분위기란 게 있고 솜씨도 안정돼 있다. 이것은 초밥집 주방장도 마찬가지다.

 

둘째로는 쓸데없이 자꾸 말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전혀 얘기를 안 하는 것도 따분하지만, 나는 이발소에서는 멍청하게 있는 것을 퍽 좋아하므로 너무 말을 시키면 피곤해진다. "이젠 봄이군요.", "따뜻해졌죠."라든가 "꽃구경은 하셨습니까?", "아뇨, 바빠서요."정도가 이상적이다. 내가 가는 이발소의 아저씨 중에는 조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가끔 경주 이야기를 짤막하게 하곤 한다.

 

셋째는 품위 없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 놓지 말아야 한다. 요즘에는 오후 시간대에 주부들을 상대로 한 야한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서, 그걸 듣고 있으면 정말이지 피곤하다. "우리 남편은요,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항상 뒤에서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도 그게 싫진 않아서..." 하고 떠들어대면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요즘 주부들은 모두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사실은 NHK FM<한낮의 클래식>같은 프로그램이 백 뮤직으로 흐르는 게 이상적이지만, 뭐 이발소에서 브람스를 듣는 것도 약간은 속물 같으니까, NHK 1방송쯤이 바람직하겠다. NHK 라디오 프로그램은 이발소 정도에서밖에 들을 수 없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꽤 재미도 있다. 듣다 보면 적어도 '세상은 넓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퍼시 페이시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푸른 산맥>은 아오야마 미용실에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오전 열한 시 반쯤에 하는 소설 낭독도 이발소 의자에 앉아 듣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지금은 더욱 멀어져서 가는 데만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여전히 같은 이발소에 다니고 있다. 퍼시 페이시스의 <푸른 산맥>은 중간에 썩 훌륭한 포 버스의 응수가 있기도 하여, 상당한 열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