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영화 제목 만들기의 어제와 오늘

chocohuh 2021. 2. 2. 09:42

요즘 영화 제목은 이렇다 할 만하게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히트한 영화를 보면 <스타 워즈>라든가 <E.T>라든가 <레이더스> 같은 오리지널 제목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왠지 흔하다. 도대체가 <레이더스><블레이드 러너>란 제목을 언뜻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너무 불친절한 것 같다. 하기야 <레이더스>처럼 '잃어버린 성궤' 따위의 제목이 붙어 있어서 오히려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 예도 있긴 했지만.

 

최근에 이해가 잘 안 갔던 것은 진 와일더와 리처드 프라이어가 나온 <스타 크레이지>라는 영화였다. 원제는 'Star Crazy'가 아니라 'Stir-Crazy'였다. 'Stir-Crazy'란 게 어떤 뜻인지 이해가 갑니까?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 사전을 펼쳐 보았더니(작은 사전에는 나오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형무소에 있어서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뜻이었다. 물론 속어다. 일반적인 일본인들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내도 이해 못할 듯한 까다로운 말을, 그래도 영화 제목으로 공개하는 일을 삼가해야 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발음 탓으로 <스타 크레이지>라는 제목을 들으면 누구든지 'Star Crazy'로 생각하고 말 테니까, 이건 배급 회사의 불친절 내지는 직무 태만이다. 바로 이럴 때에 수완을 발휘해 강렬한 제목을 붙여서 왕창 돈을 벌어야 당연한 게 아닐까?

 

옛날 사람이라면 <얼빠진 형무소 소동> 같은 제목을 붙였겠지만, 이래서는 아무래도 구닥다리 같으니까 <형무소 파라다이스>라든가 <웃기는 탈옥>쯤으로 해두면(물론 예를 들자면 말이다), 이건 코미디고 게다가 형무소 얘기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걸 <스타 크레이지>라고 해버리면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옛날 사람들은 정말 성실하게 제목을 번역해 붙였다. 너무 지나칠 정도로 성실해서 원제와 번역한 제목이 잘 연결되지 않아 문제였지만, 제법 그 나름대로의 느낌이 있었다.

 

예를 들면 <잇 해픈드 인 브루클린><뒷골목 천국>으로, <레크리스><무궤도 행진곡>으로, <로열 웨딩><연애 준결승전>으로 재미있게 번역되었다. <연애 준결승전>이 도대체 뭘 말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극장에 한 번 가볼까 하는 기분이 든다. 이 영화는 뜨뜻미지근하지 않고 아주 밝은 연애 영화랍니다.라는. 메시지가 제목에서 바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그런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성인 영화 전문 업자로, 가령 최근작으로는 <리퀴드 애세츠>가 <슈퍼오나도르 한코>, <사운드 오브 러브><돌비 아크메 고인>이라는 황당한 제목을 내걸고 개봉되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한코'라는 말을 생각해 낸 것일까?

 

내 생각에는 영화 배급 회사에서 ''이라든가 ''이라든가 ''이라든가 ''이라든가 ''라든가 ''이라든가 '' 같은 글자들을 써놓은 카드를 책상 위에 잔뜩 늘어놓고, 사원이 그중에서 대충 몇 장 뽑아서 조합하는 조어 작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성유'라든가 '발범'이라든가 말이다. '범음 준결승전' 같은 것도 웃긴다. 매일 이런 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이상해지지 않을까. 머리가 이상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성에 굶주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글쎄, 얘기가 좀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말하자면 그럴싸하게 제목을 붙인 영화는 매우 재미있고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팝 뮤직 세계에서도 옛날에는 <외로운 소년병>이라든가 <어린애가 아니에요>라든가 <딸기의 짝사랑>같이 가벼운 제목을 붙였었는데, 비틀스가 출현한 이후로 그런 식의 제목이 눈에 띄게 사라져 섭섭하다. 어째서 <딸기의 짝사랑>이냐 하면, 낸시 시나트라가 바로 그전에 부른 노래가 <레몬의 키스>였기 때문이다. '레몬'이 히트를 치자 "그럼, 이번에는 '딸기'로 가자"라는 식이었던 것 같다. 그런 건 나도 굉장히 좋아한다. '포도의 고백'이라든가 '사과의 웨딩'이라든가 '드릴게요, 오렌지'라든가 '도둑 참외'라든가 그런 거 말이다.

 

요즘 비교적 마음에 드는 것은 레이 파커 주니어의 <아이 스틸 캔트 겟 오버 러빙 유>라는 노래로, 번역된 제목은 <아이 스틸 사랑하고 있어>였다. 이런 식의 제목 붙이기는 진짜 멍청하고 품위 없는 짓이긴 해도, 외우기 쉬우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목의 대략적인 뜻과도 잘 맞았다. 제목의 번역이라면 이런 식으로 그냥 적당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홀 앤 오츠의 <세이 잇 이즌트 소>라는 제목을 들어 봐야 ', 그런 게 있나 보지' 하는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그보다는 "다음에 띄워 드릴 곡은 홀 앤 오츠의 <포도의 고백>입니다"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원리적으로 완전한 번역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고,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될지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팝 뮤직이니까 말이다.

 

재즈 스탠더드 넘버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어이없어진다. 롯폰기의 재즈 클럽 같은 데 가면, 여자 가수가 혀를 마구 굴리면서 "다음 곡은 <아이 게스 아이 윌 해브 투 행 마이 티어즈 아웃 투 드라이>입니다"라든가, "<스프링 윌 비 어 리틀 레이트 디스 이어>를 부르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런 건 <눈물에 잠겨서>라든가 <늦은 봄>이라든가로 적당히 바꿔 놓으면 서로 얘기가 빨리 통하지 않을까 싶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지도 않는 모양이다. 게다가 솰라솰라 영어로 떠드는 쪽이 어쩐지 더 재즈답다는 풍조도 있으니, 참 난감하다. 같은 곡을 팝 가수가 부르면 <내 마음에 드는 것>인데, 재즈 컬렉션이 연주를 하면 <마이 패이버릿 싱>이 되고 만다. 완전한 차별이다. 옛날 사람들은 외국 노래라도 <어떻게 전할까요>라든가 <달빛의 값은 천금>이라는 좋은 제목을 붙였다. 그러니 요즘이라고 해서 그게 불가능할 리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재즈 팬이고 영어 소설을 번역하고 있는 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 게스 아이 윌 해브 투 행 마이 티어즈 아웃 투 드라이' 같은 말을 절대로 단숨에 줄줄이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