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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젊었을 때 번번이 실패했던 연애

chocohuh 2020. 12. 15. 09:31

여성에 관한 호감이란 것은 내게도 역시 있다. 기혼자인 데다 이제 거의 중년에 접어들었고, 별로 좋은 점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호감이라는 것은 있다. 좀 낯 두꺼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호감이란 것은 겉모양이라든가 분위기라든가 그런 것을 말한다. 즉 어떤 여성과 어떤 일로 우연히 마주쳐, ', 이 여자는 괜찮구나. 호감이 가는 걸.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성이군.' 하고 문득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일은 그렇게 많이, 1년 내내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역시 1년에 한 번 정도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상대와 작렬하는 듯한, 불같은 연애에 빠져드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헤어져 버린다.

 

이것은 내가 특별히 일부일처제의 도덕률에 따라 스스로를 억제하며 의식적으로 연애에 빠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가 아니라 극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버리는 것이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내가 외견상 좋아하는 여성은 우선 100퍼센트 가깝게 내면적으로는-내면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적으로는-내가 좋아하지 않는 타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번갯불에 얻어맞은 것처럼 가슴을 뒤흔들어 놓지만, 잠시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어쩐지 싫은데' 하는 느낌이 들어 그 번갯불이 어느새 서서히 꺼져버리고 결국 나는 연애에 빠지는 일 없이 끝나고 만다. 이런 인생은 불행하다면 불행하고 평안하다면 평안하다.

 

물론 좀 더 젊었을 때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외모에만 끌려서 메아리 없는 연애를 한 적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그런 작업의 불모성은 몸에 배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 여자 괜찮겠는 걸 어쩐지 싫은데, 라는 선에서 낙착되어 버리는 셈이다. 그보다는 외모와 전혀 관계없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여자 아이와 함께 있는 편이 훨씬 즐겁다. 물론 그런 걸 가지고 연애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

 

어째서 내가 호감이 가는 외모의 여성은 거의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고 나는 때때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곤 하지만 납득이 가는 대답은 여간해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하고 커트 보네거트 식으로 간단하게 납득해 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것은 호색적인 연애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인생이란 그런 거야', '그게 어쨌다는 거냐'하는 말은 인생에 있어(특히 중년 이후의 인생에 있어) 두 개의 중대한 '키워드'. 체험적으로 말해서 이 두 개의 말만 머릿속에 잘 아로새겨두면 대개의 인생 국면은 큰 탈 없이 무난히 넘길 수가 있다.

 

가령 기를 쓰고 역의 플랫폼 계단을 뛰어올라갔는데 전동차 문이 싹 닫혀버리거나 하면 몹시 속상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인생이란 으레 그런 거야'라고 생각해버리면 된다. 곧 전동차의 문이란 대체로 눈앞에서 닫혀버리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납득해버리면 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별로 속상할 것도 없다. 세상이 그런 원칙에 따라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전동차에 못 탄 덕분에 약속한 시간에 늦는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그게 어쨌다는 거냐' 하고 자기 자신을 향해 타이르면 된다. 약속한 시간에서 한 20분가량 늦어봤자 그런 건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확장 경쟁이나 신의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이 '그게 어쨌다는 거냐?'의 정신이다.

 

다만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마음 편하게 살 수는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우선 향상이 없다.

 

사회적 책임감이나 리더십 같은 것과는 우선 인연이 끊어져 버린다. 머잖아 핵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혹은 신이 죽어도 '세상이란 그런 거야', '그게 어쨌다는 거냐'하고 생각해버리게끔 되어-나에게도 다소 그런 경향이 있지만-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점이 있다. 사물에는 '적당' 이란 것이 필요하다.

 

 

 

말을 처음으로 돌려서, 내가 호감을 느끼는 외모의 여성에게 내가 좋아하는 인격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보기에 정말 안타깝다. 보기에도 안타까운데, 깊이 관여하게 되면 훨씬 더 안타깝고 안쓰러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여성을 보고 있을 때의 심경은-매우 비근한 예이긴 하지만-양복점에서 지극히 마음에 드는 옷이 눈에 띄기는 했는데 사이즈가 전혀 맞지 않을 때의 심경과 흡사하다.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어쩐지 체념하기가 어렵다.

 

나는 7, 8년 전에 한 번 그런 타입의 여성과 함께 4~5일 동안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곤 하지만 단 둘이서 한 여행은 아니었고, 여러 명과 함께였다. 맨 처음 보았을 때는 매우 호감이 갔고, 참 예쁜 여성이구나 하고 생각했으나 몇 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나와는 전혀 생각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격이 맞지 않기 때문에 사이가 더 가까워지지도 않았고, 여행이 끝나자 그냥 그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좋든 싫든 얼굴을 마주치며 다녀야 했기 때문에 그 4~5일 동안에는 그 상대방 여자를 비교적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 절실히 느낀 것은-그런 것을 절실히 느낄 것까지는 없지만-내가 내 눈으로 보는 세계와, 객관적으로 '세계'로서 실재하는 세계와는 그 성립 양식이 너무나 달랐다는 사실이다. 즉 내가 아무리 그녀의 외모와 그녀의 인격이 서로 상반되고 있다고 느껴도 그 상반되는 상태가 한 개인의 인간으로 존재하며 기능하고 있는 이상, 나에게는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에서는 나라는 인간 역시 매우 비뚤어진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이런 인식 시스템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연애 같은 것은 도저히 못한다. 영화 [아메리칸 그래피티]에서 리처드 드리피스가 거리에서 문득 보게 된 선더버드에 탄 '꿈속의 여자'를 잊을 수 없어 밤새도록 그녀의 모습을 찾아 헤매는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연애라고 하는 것은 그런 기존의 시스템을 넘어서는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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