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쌍둥이 걸 프렌드를 갖는 일이다. 쌍둥이 여자 아이가 둘 다 꼭 같이 나의 걸 프렌드라는 사실-이것이 나의 10년 전부터의 꿈이다.
쌍둥이 여자분이 이런 글을 읽고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혹시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농담 작작 해요, 하면서 화를 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용서하세요. 이건 단지 나의 꿈일 뿐이니까요. 꿈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며 일상적인 규제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건 단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꿈 이야기다'라고 치부하고 읽어주십시오.
몇 년 전에 (고등학교)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것은 캘리포니아의 고등학생의 생활을 그린 청춘 영화로서, 나는 이 영화를 몹시 좋아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거의 화제에 떠오르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참고로 이영화의 음악은 비치보이스의 마이크 러브가 담당하고, 찰스 로이드가 주연으로 크게 활약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졸업 기념 파티의 장면인데, 이 파티 장소에 주인공인 남자아이가 디너 재킷을 입고, 양 옆에 쌍둥이 여자아이를 이끌고 멋있게 등장하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뷰티플하고 패셔너블하고 스트라이킹하고 트렌드하고 고저스하고 그루비 했다. 나도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파티란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참석하지 않지만, 만일 쌍둥이 여자 아이들을 에스코트하고 갈 수만 있다면 생활 패턴을 바꾸어 얼마든지 참석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반드시 미인이 아니라도 좋다. 그다지 미인이 아니라도 좋다. 지극히 흔한 보통 쌍둥이 여자 아이면 된다. 나는 단지 쌍둥이 여자 아이와 파티에 가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왠지 굉장히 특별한 일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뿐인 것이다.
쌍둥이가 좋다는 건 한마디로 말해버리면 '논 섹슈얼인 것인 동시에 섹슈얼인 것이라고 하는 쿨 한 배반성'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즉 남자라고 하는 것은(혹은 여자 역시 마찬가지 일지 모르지만) 여자와 함께 데이트를 하는 동안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 애와 함께 자면 어떻게 될까?' 하는 가설을 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쌍둥이와 데이트를 하다가 만약 '이 쌍둥이와 함께 자면 어떻게 될까?'라는 가설을 품었다 하더라도, 그 가설은 가설로서는 확실히 재미가 있지만 그것은 이미 일상적인 리얼리티를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그 가설을 좀 더 추구해 들어가면 뭐랄까 '포르노 쌍둥이 성폭행' 따위의 영역으로 빠져들 것이고, 나로서는 별로 그런 영역에 까지 사물을 추구해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 거기까지 이야기를 까다롭게 몰고 가고 싶진 않다. 내가 쌍둥이에게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남과 여 1대1의 리얼한 가설을 배제한, 이를테면 형이상학적인 영역이다.
즉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제도로서의 쌍둥이다. 콘셉트로서의 쌍둥이 말이다. 그리고 그 쌍둥이적인 제도라든가 콘셉트 가운데서 자신을 검증해보는 일이다. 상당히 우회적인 검증 방식이라고는 생각되지만.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밀하게 따지고 들면 쌍둥이와 사귄다고 하는 것도 대단히 까다로운 일일 거란 생각도 든다.
우선 비용이 많이 든다. 식사비만 하더라도 보통 데이트의 두 배가 든다. 선물을 사더라도 어느 한쪽에만 사줄 수 없는 노릇이다. 똑같은 것을 반드시 두 개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용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각각 두 사람에게 항상 공평하게 대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자동차를 타고 데이트를 할 때, 한 사람은 옆에 태우고 다른 한 사람은 뒤에 태울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 모두 뒷좌석에 태워야 한다는 말이 되며, 그러다간 흥이 싹 가셔버린다는 얘기다.
그리고 디즈니랜드에 가서 스페이스 마운틴을 탈 때만 해도 그렇다. 여자 아이 둘이 나란히 타고 "꺅꺅" 소리를 질러댈 동안, 나는 혼자 외톨이로 타야 된다. 이렇게 되면 맥이 빠진다.
그리고 데이트 약속 하나 하는 데도 "구리코는 월요일, 수요일 낮과 금요일 밤엔 안 돼요. 그리고 일요일엔 승마 클럽에 가야 하고"라든가, "우리코는 수요일 밤과 금요일 오후엔 안 돼요. 토요일엔. 양로원 위문 가야 되고"라든가 해서 조정하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럼 수요일엔 구리코와 만나고 일요일엔 우리코와 만나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쌍둥이와 교제하는 원래의 의미가 싹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그녀들은 언제 어디서나 띄어놓을 수 없는 상태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쌍둥이 둘 다와 함께 현실적으로 교제한다는 것은, 나같이 까다로운 일에 서툴고 부주의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일는지 모른다. 문제가 너무나 많다. 이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처첩과 함께 동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 같다. 쌍둥이의 경우에는 입장의 차이 같은 것이 없고 완벽한 fifty-fifty(50:50)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혹은 파티에 데리고 다닐 정도의 가벼운 교제로 그치는 게 현명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쌍둥이라고 하는 상황을 좋아한다. 쌍둥이와 함께 있다고 하는 가설 속의 나 자신을 좋아한다. 그녀들이 서로 남몰래 가지고 있는 그 분별성을 좋아한다. 그녀들이 지니는 현기증 나는 증식성을 나는 좋아한다.
그녀들은 분열하고 동시에 증식한다. 그것은 나로서는 영원한 백일몽이다.
내게 딱 한명의 여자는 어떤 경우에는 너무 많고 어떤 경우에는 너무 적다. 이따위 소리를 해대면서도 15년씩이나 기나긴 결혼생활을 해오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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