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매발톱꽃주의 밤

chocohuh 2020. 4. 3. 11:46

"역시 안 됩니까?"라고 나는 말했다.

"이봐요, 물론 안 되오."라고 문지기는 이쑤시개로 이빨 사이를 쑤시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않소? 벌써 6 30분이나 지났단 말이오."

"정말 잠시 동안만이라도 좋습니다. 잊어버린 물건을 찾으면 곧 돌아올 테니까요."

"그건 곤란하오. 들키면 내가 혼나니까."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세상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거 아닙니까? 이봐요, 얼마 전만 하더라도 당신이 어린이 애완용으로 기린이 갖고 싶다고 해서......."

"하긴, 얼마 전에는 그랬었지만 말야." 라고 말하고서 문지기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군. 30,  30분만이오. 늦어도 7시 까지는 여기로 돌아와 주시오. 이런 일은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나는 문지기의 손을 잡았다.

 

문지기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철문의 자물쇠를 열고 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봐요, 부디 지하철은 조심하시오. 여하튼 그 녀석들은 해가 지면 배가 고파서 신경이 곤두서니까.“

메마른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해가 져 버린 탓에 안은 캄캄했다. 나는 손을 더듬어 벽의 스위치를 찾아 전등을 켰다. 전등은 건너다보이는 초원을 연한 블루로 떠올렸다. 초원에는 꽤 많은 기린이 뒹굴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린 투성이였다. 기린은 낮 동안은 바나나 껍질 속에 숨어 있고, 밤이 되면 이런 식으로 초원에 누워서 잔다. 바나나를 먹으려다가 잘못해서 기린을 베어 먹는 일도 종종 있다.

 

나는 기린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이 없다.

초원의 한가운데쯤에서 지하철을 만났다. 나는 풀 뒤에 몸을 숨기고 지하철을 지나 보냈다. 문지기가 말했던 것처럼 녀석들은 위험하다. 내 옆을 지날 때 전압기가 타닥타닥 기분나쁜 불꽃을 날렸다. 그리고 지하철은 사라져 갔다.

10분 정도 지나 예의 오래된 우물에 도착했다. 오래된 우물 앞에는 두 마리의 매발톱꽃이 한창 주연을 베풀고 있었다.

 

"미안합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잠깐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데요."

"좋고 말고요."하고 나이 많은 쪽의 매발톱꽃이 말했다.

", 얼마든지요."하고 젊은 쪽의 매발톱꽃이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요, 한잔 하십시다."라고 젊은 쪽이 말했다.

"글쎄요, 정말 바쁘긴 하지만, 뭐 한잔 마시겠습니다." 매발톱꽃이 술을 권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다.

 

매발톱꽃은 술자리에서의 예의에 대해서는 매우 까다롭고, 게다가 매발톱꽃이 빚은 술은 정말 맛있다. 나는 나무 잔에 따라 준 술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하하하하하하, 우하하하하하"하고 나는 웃었다. 매발톱꽃의 세계에서는 많이 웃는 것이 예의라고 되어 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라고 두 마리의 매발톱꽃은 칭찬해 주었다.

"아니오, 정말이지 잘 마셨습니다. 하하하하."

매발톱꽃은 기뻐하며 옆에 있던 작은 병에 매발톱꽃주를 담아 나에게 가져가라고 했다. 기분 좋은 작자들이다.

매발톱꽃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우물을 내려갔다.

 

마지막 다섯 단은 뛰어내렸다. 뛰어내리는 순간 기린의 발을 하나 밟아 버렸다.

"실례."하고 나는 말했다. 기린은 한동안 투덜투덜 불평을 했지만, 곧 다시 잠들어 버렸다. 하지만 우물 속에까지 들어오다니 본래 기린쪽이 잘못한 것이다.

 

지하도를 500미터 정도 나아가자 해안이 나왔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다 냄새가 났다. 해변에 튀어나온 바위에는 나이든 갈매기가 앉아 있었다.

 

"미안합니다."하고 나는 갈매기에게 말을 걸었다.

"이 근처에 빨간 가죽 표지의 주소록이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쯧쯧쯧, 안됐군 젊은이."라고 갈매기가 말했다.

"물건은 소중히 해야지."

", 면목 없습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한 번 잃어버린 물건은 좀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 말이 맞습니다." 갈매기는 "후유."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빨간 가죽 표지의 주소록 말인가?"

"그렇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아아. 그거라면 아까 거북이가 소나무 밑에 묻고 있었는데."

 

나는 갈매기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소나무 밑을 파 보았다. 30센티 정도 팠더니 주소록이 나왔다. 정말이지 거북이라는 동물은 손에 닿는 대로 물건을 묻어 버린다.

나는 주소록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우물을 올라갔다. 우물 입구에서는 아직 두 마리의 매발톱꽃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잘 자요."라고 나는 말했다.

"잘 자요."라고 매발톱꽃들은 말했다6 50. 나는 서둘러서 초원을 빠져나갔다. 꽤 많은 기린을 밟아서 짓뭉개 버렸다.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문지기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운 좋게 지하철은 만나지 않았다.

72분 전에 나는 철문을 똑똑 노크했다. 문지기가 문을 열어 주었다.

"시간에 맞게 왔군요."라고 그는 말했다.

"아슬아슬했어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런 뒤에 우리들은 농담을 하면서 매발톱꽃주를 마셨다. 달이 아름다운 기분 좋은 밤이었다.

'무라카미하루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팅 나이프  (0) 2020.04.03
야구장  (0) 2020.04.03
사우스베이 스트라트  (0) 2020.04.03
쌍둥이와 가라앉은 대륙  (0) 2017.04.27
서재기담  (0) 2017.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