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서재기담

chocohuh 2017. 4. 27. 00:03

처음 보는 얼굴의 하녀였다. 아마 새로 들어왔을 것이다. 수수한 무늬의 기모노에서 희미하게 향냄새가 나고 있었다.

"선생께서는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하고 그녀는 말했다.

"서재?"하고 나는 무의식중에 되물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선생이 나를 서재에 들여보내 주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나는 선생의 얼굴을 본 적도 없다. 나는 언제나 현관 참에 붙어 있는 팔각형의 거실로 가, 그곳에서 벙어리 미소녀로부터 그 달의 원고를 받는다. 그녀는 선생의 먼 친척인데, 이곳에 거두어져 비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선생은 절대로 사람들 앞에는 나서지 않는다. 출판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나는 적잖이 놀라기는 했지만, 선생이 서재로 오란다고 해서 거기에 대해 그다지 이의를 달 이유는 없었다. 만일 이의를 달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거기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아무튼 한 달에 한 번 원고를 받아 회사로 갖고 돌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유일한 입장인 것이다.

 

하녀가 앞장을 서서 긴 복도를 소리 없이 걸어갔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집이다. 만듦새는 낡았지만, 낡은 만큼 세세한 손질이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진달래, 황매화나무, 사리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누렇고 어슴푸레한 3/4의 달이 층층나무 잎 사이로 떠 있었다. 어딘가에서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아련한 4월의 밤이다.

 

하녀는 복도 막다른 곳의 바로 앞에 멈춰서서 마름모 모양의 젖빛 유리가 있는 낡은 문을 콩콩하고 작게 노크했다. 누가 들어도 귀의 착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노크이다. 그러나 분명히 응답은 있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하고 작은 목소리로 하녀가 말했다.

"들여보내라."하고 안에서 쉰 듯한 목소리가 났다. 들어가시죠, 하고 하녀가 눈으로 신호했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방안은 지독히 어둡고 뜨뜻미지근했다. 오래된 책과 노인 특유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전등은 꺼져 있었다. 입구 정면에는 빼곡히 책이 들어찬 거대한 책장이 있었고, 그 건너편에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모두가 아물아물거리는 입자가 섞인 기묘한 어둠에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어둠에 눈을 익히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어둠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둠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늘 신세를......."

"인사는 필요 없네."하고 사람의 그림자가 말했다. 작고 쉬긴 했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거기 앉게."

나는 <거기>를 찾았다. 오른쪽에 낡은 소파가 있었다. 앉는 느낌이 좋은 소파이긴 했지만 이런 어둠 속에서는 누군가에게 뒤로부터 꼼짝 못하게 꽉 안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눈이 좀 안 좋아서 말야."하고 말하며, 선생은 한바탕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난 빛을 견디지 못하네. 빛을 보면 머리가 빙빙 돌아. 그래서 하루 종일 이곳에 있지. 여긴 창문도 없네. 밤새워 일을 하고, 아침이 되면 내실에서 잠을 자네. 하지만 자네에겐 이곳이 지나치게 어둡겠지."

"저는 괜찮습니다만, 선생님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내 몸은 남이 걱정해 줄 정도는 아냐. 빛을 보면 머리가 아플 뿐이지. 어둠 속에서도 원고는 쓸 수 있고, 이걸 다 쓸 때까지는 죽을 수가 없네."

"그렇고말고요."하고 나는 말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작업에 대해서는 독자들로부터 압도적인 반향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특히 저번<시계 풀의 엄숙한 피>에 대해서는........"

"아첨은 그만두게. 시끄럽기만 할 뿐이야."

"죄송합니다."하고 나는 사과했다.

 

한동안 깊은 침묵이 계속되었다. 바깥에는 바람 한 점 없었고, 살랑대는 나뭇잎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붙박이 책장이 빼곡히 들어찬 고서들이 나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죄어들게 했다.

"자넨 아름다운 목덜미를 갖고 있군."하고 선생은 말했다.

"네에?"

"목덜미 말이야. 희고 매끄럽고 반들반들하군."

"고맙습니다."하고 나는 영문도 잘 모른 채 말했다. 사이즈가 좀 작은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기 때문에 목 근처가 근질근질했다.

"나이는?"

"스물다섯입니다."

"혼잔가?"

", 독신입니다."

"죽는 게 무서운가?"

나는 고개를 들어 쌓여 있는 책 사이로 선생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어슴푸레한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무서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하고 선생은 조용히 말했다. "익숙해지면 죽음이란 건 무서운 게 아냐. 요는 상상력이지. 자기 몸 안을 도는 피를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게 바로 상상력이네."

"."

"이리로 받으러 오게."

"?"

"원고 말이네. 원고를 받으러 온 거 아닌가?

이유 없이 싫은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 벽의 어두컴컴한 틈새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두려움이었다. 공기에 닿아 있는 피부가 사포에 문질러지듯이 따끔거리며 아팠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하고 나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나는 단지 한 사람의 노작가의 집에 원고를 받으러 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몸은 뜻대로 잘 움직이지 않았다. 몸 안의 특수한 감각이 지진계의 바늘처럼 살포시 흔들리고 있었다. 몸은 이대로 방을 뛰쳐나가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리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원고도 없이 회사에 돌아갈 수는 없다.

"왜 그러나?"하고 선생은 비웃듯이 말했다. "이번 달 원고는 필요 없는 듯하군."

"지금 가겠습니다."하고 말하며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밑을 확인해 가면서 어둠 속을 네 걸음 정도 걷다가 책상에 부딪혀 멈춰 섰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선생이 후욱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착하군."하고 선생은 말했다. 목소리의 피치가 얼마간 높아지고, 떨리고 있었다.

"착하군. 손을 내밀게."

나는 책상 위로 가만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는 자기 손의 모양조차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공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침묵만이 먼지처럼 바닥에 쌓였다.

다음 순간, 내 옆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서늘한 공기의 막이 내 뺨을 휙 하고 스쳤다. 낡은 우물 속에서 기어나온 듯한 섬뜩한 냉기였다. 나는 뭔가에 튕겨진 것처럼 책상에서 훽 하고 물러섰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미끈미끈한 손이 나의 손을 꽉 잡고 책상 앞으로 끌어갔다. 대단한 힘이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상대의 몸이 있음직한 곳을 힘껏 차올렸다. 나의 발은 정확히 상대의 몸을 포착했지만, 반응은 없었다. 미끈미끈한 젤리덩어리가 나의 발을 푹 싸안았다. 온 몸의 숨구멍이 얼어붙었다. 젤리는 발목에서 허벅지로 조금씩 조금씩 기어 올라온다. 책상 저편에서 선생이 킁 하고 콧소리를 냈다.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문진을 왼손으로 들어 그 소리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유리덩어리가 두개골을 치는 둔탁한 소리와 으깨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겹쳐졌다.

 

그 다음 일은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구두도 신지 않고 소나무 숲을 벗어나 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오른쪽 손목에는 아직도 그 무서운 감각이 남아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 서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의 벤치에는 벙어리 미소녀가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한밤중이 다 된 그 무렵, 그녀 외에는 승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안심하는 듯했다. 뺨에는 눈물 줄기가 빛나고 있었다.

그 집에는 요즘 무서운 일만 일어나고 있어요, 하고 미소녀는 손짓으로 말했다. 난 이제 참을 수 없어요, 그곳은 뭔가에 둘러싸여 있어요,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주세요.

"그래, 그러는 게 좋겠군."하고 나는 말했다.

"한시 바삐 이곳을 떠나자."

 

멀리서 건널목의 경보음이 들렸다. 막차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플랫폼에 서서 어둠 속에서 전차의 불빛을 찾았다. 해안을 따라 커브를 그리는 노란 불빛이 내 눈을 언뜻 스쳤다. 나는 간신히 한숨을 돌리고 포켓 속의 담배를 찾았다.

다음 순간, 미끈거리는 덩어리가 나의 목덜미를 감쌌다. 그리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네 개의 손이 나의 목을 쇠사슬처럼 조였다.

"자아, 서재로 돌아가는 거예요."하고 벙어리 미소녀가 쉰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모두 함께 녹아 버리는 거예요."

내 머릿속에서 건널목의 경보음이 조금씩 엷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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