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디자인 비엔날레는 올해 처음 열렸다. 토마스 무어(Thomas Moore)의 유토피아(Utopia) 출간 500주년을 기념하여 디자인에 의한 유토피아(Utopia by Design)라는 주제로 총 37개 나라가 참여해서 저마다의 시선으로 디자인에 의한 유토피아를 선보였다.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 전역에서 전시 뿐 아니라 각 전시에 대한 토크도 준비되어 있어 전시에 대해 궁금하거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관람객들이 작업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실제로 유토피아에 대한 각국의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시리아 난민들 마음속에 있는 유토피아인 전쟁 전 시리아에 대해 다룬 프랑스의 전시, 모두가 동등하게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르웨이 베르겐(Bergen) 시의 다양한 시도를 소개한 전시, 음식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경지인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나타낸 대만의 전시, 그리고 몽유도원도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 인터렉트 미디어(Interact Media) 작업으로 재현한 대한민국의 전시를 소개하려 한다.
프랑스는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시리아 난민들을 찾아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유토피아인 전쟁 전 그들의 고향을 영상으로 나타냈다.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난민들이 된 그들이 즐겨먹었던 사탕과 이에 얽힌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기억들을 증언하도록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전쟁 이전의 삶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어쩌면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유토피아가 자리하고 있다는 직시, 그리고 누군가의 잃어버린 유토피아를 되찾기 위해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모아야 한다는 촉구 등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전시였다. 전시장 밖에는 이 영상에서 언급된 시리아 전통 방식의 사탕을 사먹을 수 있는 자판기가 놓여 있다. 한 봉지 사서 맛을 보았는데 이국적인 향과 함께 입 안에서 퍼지는 달콤한 맛이 났다. 누군가에게는 사무친 그리움을 자아내겠다는 생각을 하니 숙연해졌다.
노르웨이의 경우, 베르겐(Bergen) 시에서 지난 몇 년간 디자인을 통해 시민들의 생활을 어떻게 개선시켰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소개하였다. 실제 사례의 결과를 살펴보면 특별히 새로운 건 없다. 다만 개선에 이르는 그들의 태도와 과정이 눈길을 끈다. 이들의 유토피아는 개념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별다른 이론이 필요 없다. 삶의 현장에서 살아 숨 쉬며 함께 해답을 찾아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정이라고 했다. 평균 혹은 보통 또는 남성 중심의 주류에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시각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1971년에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이 그의 저서를 통해 마케팅만이 우리의 특정한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실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통감한다고 한다. 단순히 미적인 가치를 넘어서 디자인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게 지속적인 숙제라고 한다. 그들은 병원 한켠에 지면이 울퉁불퉁한 공원을 조성해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이곳에서 실전훈련을 하면서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한다든지, 호텔의 모든 음식과 침구류를 알레르기 걱정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마련하는 등의 결과는 사람을 우선하는 태도로 고민하지 않고 나올 수 없는 발상이라고 자평한다. 이런 미래의 노력을 응원하기 위해 익스클루시브 디자인(Exclusive Design)과 서스테이너빌리티 디자인(Sustainability Design) 분야에 대해 시상하고 널리 알린다고 하였다.
대만은 자신의 문화를 화이부동(和而不同,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 않는 일)으로 정의하고 여기에 이르는 여정을 다섯 개의 다이닝 코스(Dining Course)로 나타냈다. 숲처럼 꾸며진 전시장에 들어서면 안쪽에 깊은 숲속에 초대된 것 같은 공간이 나오고 거기에 길쭉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10파운드(한화 15,000원)을 내면 이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른바 사색에 이르는 음식 푸드 오브 써트(Food of Thought)라고 소개한다. 대만의 일상적인 가치 네 가지를 반영해 재료를 선택하고 모양을 만들고 맛을 낸 음식을 각각 맛보게 하고, 마지막에는 이를 모두 하나의 그릇에 놓고 섞어 멜팅 팟(Melting Pot)을 만든 뒤 이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칭한다. 대부분의 전시가 시각과 촉각에 중점을 두고 기획된 데 반해 대만의 경우는 시각과 후각 촉각 그리고 미각을 동원하여 이들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대한민국은 조선시대 화가인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각자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표현했다. 마침 몽유도원도가 발표된 시기와 토마스 무어가 유토피아를 펴낸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도 이 작업에 의미를 더한다. 몽유도원도 역시 안견의 그림 가장자리에 이 그림을 감상한 이의 감상평이 적혀 있다. 이런 구조에서 착안해 실제 전시에서도 그림에 해당하는 부분 가장자리는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관람객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에 대해서 적으면 그 내용이 몽유도원도 원화의 골격에 따른 실루엣을 따라 자리를 잡아 함께 그리는 몽유도원도가 탄생한다. 이 작업은 당초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 출품을 위해 기획하여 시작되었으나 비엔날레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모습을 달리하여 전시를 이어가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웹사이트를 통해 경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 토크에 참가한 관람객 중 혹시 삽입되는 내용에 대한 검열은 없는지 물었는데, 작업자들은 모두의 생각과 참여를 존중한다는 가치가 우선하기 때문에 일부 부적절한 내용이 삽입되더라도 이를 감안해 검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이후에 보다 많은 데이터가 모이면 이를 재배열하고 재구성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작업자들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 작업이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이후에 이 작업을 통한 경험을 담은 기록 또한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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