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ksy)가 디즈니랜드를 풍자한 테마 파크인 디즈멀랜드를 개장했다. 침울한 세계라는 이름처럼 달콤한 솜사탕처럼 꿈과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는 대신,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예술 작품들로 가득한 곳이다. 서해안 리조트 도시인 웨스턴 슈퍼 메어를 거닐던 뱅크시는 건물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폐허가 된 야외수영장 부지에서 영감을 받아 디즈멀랜드 기획하기 시작했다. 뱅크시의 지휘 아래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한 5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테마파크 조성에 참여했고 마침내 베일이 벗겨졌다.
총 6주간의 개장 기간 동안 하루에 4,000명으로 입장이 제한되어 온라인상에 입장권을 게시하자마자 사이트가 다운되고 암표상까지 등장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더욱 화제를 몰고 왔다. 총 3,000평 면적의 테마파크 내에는 관람차, 회전목마, 야외극장, 미니 골프장 등의 즐길 거리가 있으며, 실내 갤러리를 비롯해 텐트마다 볼거리와 함께 바와 음식점 같은 편의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안 검색대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지시하는 보안 요원이 위협감을 주는 한편 경찰봉, 총기, CCTV, 무전기 등 각종 소품이 종이로 만들어져 실소를 자아낸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아티스트 빌 바르민스키(Bill Barminski)의 작품으로 그는 저예산 영화 제작을 위해 모든 소품을 종이로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곧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성안으로 들어서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의 엔딩 장면이 작은 스크린을 통해 반복 재생된다. 왕자와 결혼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던 영화 속 공주와는 달리 디즈멀랜드의 공주는 부서진 호박 마차안에 고꾸라져 죽어있고, 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뱅크시의 설치작품은 교통사고로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던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연상시키며 어려서부터 세뇌된 이상적인 행복에 대한 판타지를 산산 조각낸다.
오르골 연주와 함께 돌아가는 회전목마에는 말을 도축하는 괴기스러운 광경이 벌어진다. 영국 슈퍼마켓에 유통되는 소고기에 말고기 및 다른 고기가 섞여 있는 것이 밝혀져 영국 전체를 들썩였던 일명 말고기 사건에 대한 뱅크시의 또 다른 작품이다.
작은 연못에는 동전을 넣어 보트를 운전하는 놀이기구가 설치되어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배 안에는 흑인 난민 마네킹들이 빼곡히 차있고, 곳곳에 물에 빠져 둥둥 떠다니는 마네킹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유럽의 가장 큰 화두인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한 작품은 돌아서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실업률 증가, 경제위기, 환경오염, 부의 불균형, 공권력 남용 등의 사회 문제들을 외면하고 해결을 미룬다면 후세대가 물려받게 될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디즈멀랜드는 가상의 테마파크를 통해 어두운 현실과 미래에 대한 강렬한 예술적 충격을 제공한다.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예술을 추구하는 뱅크시의 다음 프로젝트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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