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핀란드에서는 시민 주최의 크고 작은 규모의 흥미로운 행사들이 파도처럼 연이어 기획, 시도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는데 작년 세계 디자인 수도 헬싱키의 해를 맞으며 추진력을 얻은 경우가 많다. '시보우스빠이바(Siivouspäivä)'는 이의 좋은 예인데 영어로는 'Cleaning Day'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하루 동안 헬싱키 시내 곳곳이 벼룩시장으로 변모하는 특별한 날이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 남에게는 보물일 수 있다.'를 표어를 바탕으로 하는 이 행사는 사전에 웹사이트를 통해 등록을 마친 누구나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을 타인에게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는 날로써 물건의 재활용, 재사용 가능성을 높이고 생기있고, 책임감 있는 도심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데에 그 뜻을 두고 있다.
시보우스빠이바의 로고
첫 시보우스빠이바 행사는 2012년 5월 12일에, 두 번째는 2012년 9월 8일에 열렸다. 집에 쌓아 놓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자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물건을 팔고자 하는 지점을 지도에 표시하고, 팔고자 하는 물건의 항목을 공개할 수 있어 특정한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헤매지 않고 쉽게 판매자를 찾아올 수 있는 지도 서비스를 웹사이트에 제공하고 있다. 옷이나 신발, 가구, 자전거, 공구, 장난감, 책, 식기 등 갖가지 생활용품은 물론 수리나 수선 등 판매자의 기술도 팔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특별하다. 물건을 팔 수 있는 장소는 길거리, 공원, 공터, 당사자의 집 등 시내의 그 어떤 지역도 가능하다. 또한, 같은 건물이나 같은 지역에 사는 이웃 주민과 함께 신청해서 큰 규모의 시장 형태를 갖출 수도 있어 방문객들이 쉽게 찾아와 둘러보고 갈 수도 있게 기획하였다. 물건을 파는 장소를 정함에 특별한 제한사항은 없지만, 보행자와 차량의 원활한 흐름을 저해하는 곳이나 허락을 받지 않은 사유지 등만 피하면 된다.
2012년 5월 12일에 열린 첫 시보우스빠이바 행사 전경
지난 2013년 3월 16일, 알토대 미술대학(Aalto University School of Arts, Design and Architecture)에 위치한 미디어 팩토리(Media Factory)에서 시보우스빠이바의 더 나은 서비스 개발, 홍보, 발전을 위한 1일 서비스 디자인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미술대를 비롯하여 공대, 경영대 학생들과 담당 교수, 시보우스빠이바 주최 측이 한자리에 모여 총 4개의 주제로 팀을 구성하여 워크샵을 진행하였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담당한 모바일 앱스(Mobile apps)팀은 시보우스빠이바 행사 당일 사람들이 판매자들의 위치와 도심의 재활용 센터를 좀 더 쉽게 파악하고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 제안하는 역할을 맡았다. 스토리(Story)팀은 시보우스빠이바나 타 중고가게나 벼룩시장을 통해 구입한 물건의 사연을 공유하며 구매자로서 시보우스빠이바 행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우 투 시보우스빠이바(How to Siivouspäivä) 팀은 판매자 참여 방법을 조금 더 쉽게 전달하고 행사 안내, 지침 등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비디오(Video)팀은 시보우스빠이바의 홍보를 위한 영상물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알토대 미술대학 미디어 팩토리에서 열린 시보우스빠이바 워크샵 모습
이 워크샵을 통해 만난 시보우스빠이바의 빠울리나 세빨라(Pauliina Seppälä)와 야아꼬 블롬베르그(Jaakko Blomberg)에게서 더욱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내용
1. 시보우스빠이바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한다.
간단히 말해 시민 누구나 자신이 쓰지 않는 물건을 길이나 공원, 자신의 집 등지에서 사고팔 수 있는 날이다. 이 행사는 매년 5월과 9월, 일 년에 두 번 열린다.
2. 시보우스빠이바 주최 측에 벼룩시장이나 중고 가게에 관련된 일을 한 사람이 있나?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은 없다. 행사의 기획 초기 단계에 참여했던 오우띠 쀠(Outi Pyy)는 일명 '트래셔니스타(Trashionista: 버려진 옷이나 옷감을 이용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로)'로서 현재 시보우스빠이바의 빠울리나 역시 같은 배경을 갖고 있다. 시보우스빠이바 팀원 중 한 명인 마이 사이보(Mari Saivo)는 남은 조각 천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패션 디자이너이다. 그녀는 마리메꼬(Marimekko)의 조각천 활용법을 모은 책 '수루(Surrur)'의 작가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시보우스빠이바 구성원 모두가 지속 가능한 생활 환경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보면 된다.
2012년 9월 8일에 열린 두 번째 시보우스빠이바 행사 전경
3. 처음 이 행사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주최자인 빠울리나는 어느 날 갑자기 본인의 집에 너무나 많은 물건이 있음을 깨닫고 지인과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다른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흥미로운 중고 문화를 알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정기적으로 창고 세일을 열어 길거리에서 누구나 물건을 사고팔 수 있고, 행사의 끝 무렵에는 판매로 이어지지 못한 물건들을 수거하는 차량이 도심을 돌며 물건을 싣는다고 한다. 이렇게 조금 더 쉬운 중고 문화 시스템이 헬싱키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페이스북에 주제를 던지고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곧 행사 기획을 위한 실제 미팅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게 되었다.
4. 시보우스빠이바를 처음 어떻게 홍보하고 참여를 유도했나?
사실 페이스북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홍보를 위한 특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단지 사람의 관심과 기대,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게끔 대화의 진행 단계에 걸맞은 시설을 제공하고 환경을 만들려고 애썼다. 아이디어는 점점 실체화되어 곧이어 공식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행사의 포스터도 제작하여 더욱 쉽게 퍼질 수 있도록 웹사이트에 공개하였다.
5. 행사에 얼마나 많은 판매자와 방문객이 있었나?
작년 5월에 열린 첫 번째 행사에는 약 800여 명이 웹사이트를 통해 공식 등록을 했으나 비공식 판매자까지 합치면 약 2.000여 명이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방문객은 집계하기 어려우나 시내의 깔리오(Kallio) 지역에만 수천 명이 다녀간 것으로 본다. 8월의 행사에는 첫 번째 행사보다 판매자와 방문객이 적었는데 이는 궂은 날씨 탓으로 본다.
6. 정식 판매 자격증이 없는 일반인들이 공공장소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행사인데 이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법의 장벽은 없었나?
사실 도시 공공장소, 공공 기물을 관리하는 공공사업국(Public Works Department)은 이 행사를 애초에 반기지 않았다. 행사를 치르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와 공공질서 침해, 쓰레기와 공공 기물 파손 등 행사 뒷마무리의 어려움 등이 그 이유였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행사를 지원하는 시민이 허가를 요청하기 시작했고 그 숫자가 단순히 너무 많아 해당 기관이 이를 처리하기 버거웠다고 한다. 이런저런 우려에도 시보우스빠이바 행사는 너무나 깔끔하게 진행, 마무리되었고 염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등록 시 판매 희망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웹사이트 지도에 표시하고 연락처를 기입하기 때문에 지금은 헬싱키를 비롯한 몇몇 도시들이 시보우스빠이바 행사에 공공장소를 사용함에서 시로부터 그 어떠한 허가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2년 9월 8일에 열린 두 번째 시보우스빠이바 행사 전경, '끼르삐스(Kirppis)'는 핀란드 어로 '중고 가게'라는 뜻이다.
7. 이 행사가 시민과 지역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하는가?
계급이나 권위의식 없이 타인과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성취감, 연대감, 자유로움을 느꼈으면 한다. 게다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물건을 나누는 즐거움 역시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너무 많은 물건을 불필요하게 소유하는 현대인의 생활상을 한번 돌아볼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물건의 재활용, 재사용 환경의 개선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조금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한다.
8. 시보우스빠이바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선점이나 보완점이 있을까?
일단 무엇보다도 행사의 참여객이 지금보다 많아지고 규모가 커져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서비스가 개발, 발전되어야 하는데 가구와 같이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들도 좀 더 쉽게 거래될 수 있는 서비스 또한 고안해야 하겠다. 그리고 판매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당일에는 좀 더 편리하게 재활용 센터의 서비스를 이용할 방법을 만들어야 하겠다. 또한, 앞으로 페이스북뿐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 더욱 널리 회자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9. 알토 대학 학생들과 함께 진행했던 수업은 어땠나?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몇몇 제안들은 바로 적용해도 될 만큼 이미 완성도가 높았는데 다음번 시보우스빠이바 행사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조직 외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자리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10. 다른 나라에도 시보우스빠이바와 비슷한 행사가 있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보우스빠이바는 암스테르담에서 일어나는 중고 물품 판매 행사와 미국 가정의 세일에서 그 영감을 받았다.
2012년 9월 8일에 열린 두 번째 시보우스빠이바 행사 전경. 물건 이외에도 수리나 수선 등 판매자의 기술 역시 팔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11. 최근 몇 년 동안 핀란드에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시민 주최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핀란드의 젊은 세대들이 도시 계획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적은 예산으로도 정보가 효과적으로 퍼질 수 있는 다양한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개발과 확산으로 이들의 움직임이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현대의 도시 법규가 꽤 빡빡해서 종종 사람들의 창의력을 가둔다는 것을 느끼는 젊은 세대들이 좀 더 생기있는 도시 문화를 원하고 있고 또한, 기후 변화 탓에 사람들이 현대의 소비 행태를 되짚어보고 반성하며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생활상을 만드는 데에 커진 관심이 이와 같은 행사로 이어지는 것 같다.
12. 시보우스빠이바가 다른 나라에서도 기획, 실현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고대한다. 우리가 직접 가서 만들기보다는 현지의 사람이 시작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시보우스빠이바 핀란드 홈페이지를 영문화하는 작업을 했다.
13. 이 행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
좀 더 열린사회를 만들고 싶고 관료주의도 줄이고 싶다. 시민이 자신의 도시를 조금 더 편안하게 느끼고 그만큼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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