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략은 모두 히틀러의 뜻에 따라 결정되고 있었는데, 1942년말부터 독일의 전략은 동부전선에 대한 소련의 공격과 남부 및 서부 전선에 대한 영·미 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어, 아직도 독일이 지배하고 있는 넓은 지역(유럽의 대부분 지역과 북아프리카의 일부)의 방위를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었다.
독일인들은 그런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에서는 연합국이 꽁무니를 뺄 것이라고 생각했고, 서방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의 '부자연스러운' 결합은 연합국이 승리를 얻기 전에 깨지리라고 기대했지만, 이런 막연한 기대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히틀러는 "독일은 세계의 강대국이 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말에 따라 일부러 독일 국민의 몰락을 주도하기로 결심했다.
히틀러의 융통성 없는 명령으로 인해 모든 군대는 전술적으로 전혀 가망이 없는 진지를 굳게 지키면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아야 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항복할 수 없었다. 히틀러가 현위치 고수 전략을 쉽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장군들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독일 장군들은 지휘권을 잃거나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감히 히틀러의 말에 반대할 수 없었다. 과거에 독일군을 승리로 이끈 유능한 지휘관들이 1943~44년에 대부분 제거되었으며, 그 결과 여러 사령관이 빈번히 교체되었고 사령부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의심받은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강요당했다.
1943년부터 히틀러는 동부전선의 독일군 병력을 빼내어 서부전선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대부분의 서양 역사가들은 아직도 정치적 관점에서는 이 전략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1944년 초에는 대규모 영·미 연합군의 서유럽 침공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고, 이 침공의 위험을 생각하면 동유럽의 점령지를 일부 잃어버리는 것은 덜 심각하게 여겼을 게 분명하다.
히틀러는 연합군이 1944년 6월에 프랑스 북부를 침공하기 시작한 뒤 서부전선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고, 그 후 2개월 동안 독일군이 연합군의 교두보를 노르망디로 제한하려고 분투하는 동안, 히틀러는 소련의 여름 공세(1944. 6~)로 동부전선에 있는 독일 중앙 집단군의 전멸을 감수했다. 그 후 몇 주일 만에 붉은 군대는 비수 강과 동프로이센 국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부전선도 몇 주일 만에 허물어졌고, 연합군은 독일의 서쪽 국경을 향해 진격했다. 그러자 아직도 자신의 주요원칙을 고집하고 있던 히틀러는 남아 있는 병력을 모두 서부전선에 집결시켜, 영·미 연합군을 몰아내려고 했다.
나중에 벌지 전투라고 불리게 된 이 전투는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독일군 가운데 그나마 전투력이 남아 있는 마지막 부대가 서부전선에 투입되어 있는 동안, 동부전선에 남아 있는 독일군 병력보다 훨씬 수가 많은 붉은 군대는 독일의 동쪽 국경으로 다시 돌진하여 1945년 1월말에는 오데르 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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