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부루 수에드 슈즈

chocohuh 2012. 12. 6. 12:37

"우리집에 불지르고 싶으면 그래봐요.
우리집의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셔봐요.
뭐든 원한다면
하고 싶은대로 해봐요.
그런데 베이비
우리 부루 수에드 슈즈만은 절대로 안돼요."


칼 파킨즈 '부루 수에드 슈즈'

이 노래 덕분에 나는 오랫동안 부루 수에드 슈즈(부드럽게 무두질한 양가죽 신)를 동경해 왔다.
부루 수에드 슈즈를 신고 있으면 인생의 모든 것이 정말 쉽게 그리고 편하게 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열네살 때였다. 아무튼, "그런데 베이비-우리 부루 수에드 슈즈만은 안돼요."  라는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열여섯 살이 되면 틀림없이 부루 수에드 슈즈를 살 것이다.


열여섯 살의 나이는 왠지 부루 수에드 슈즈가 꼭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다. 열여섯 살이 되면 여자친구도 열다섯 명쯤 생기고 그녀들과  매일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그때마다 '부루 수에드 슈즈 신발에 손대지 말아요.'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열네살 때에는 이런 생각만 했었다. 그리고 두 편을 동시상영하는 영화관의 휴식 시간같은 기분으로 이년을 기다렸다. 이제 나는 열여섯 살이 됐다. 열여섯 살이 되던 생일에 그토록 바라던 부루 수에드 슈즈를 샀다.


그래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아무 일도 없었다. 3월달에 데이트한 여자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심한 애무를 요구했다. 그래서 그녀는 매우 괴로워했다. 나는 그녀의 상담에 응했다. 이런 것뿐. 6월달에 데이트한 여자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내가 남극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녀는 북극에 대해 생각했다. 이래서 펭귄이나 백곰은 안주할 땅을 잃고 정처없는 방황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게 전부.
7월달에 데이트한 여자는 나의 한계 체중을 3킬로 정도나 넘었다. 9월달에 데이트한 여자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코를 풀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예뻤다. 그녀와 두번째 데이트 할 때 그녀는 '저 말이에요. 그 청색 신발 정말 안어울려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부루 수에드 슈즈를 벗어 신발장 안에 넣어버렸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없었다. 내가 남극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차분히 남극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살이 찌지도않았다. 감기도 다 나아 코를 풀지도 않았다. 심한 애무에 대해 그렇게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런 일들로 해서 나는 조금씩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