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전 일인데, 공장을 견학하는 책을 쓰기 위하여 미즈마루 씨와 함께 취재차 유명한 가발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먼저 별실에서 홍보 담당 아저씨를 만나 '가발이란 어떤 것인가, 사람이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초보적이며 학술적인 강의를 들었다.
대충 설명이 끝난 다음, 그 아저씨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저 말이죠, 무라카미씨. 당신은 지금 노란 스웨터를 입고 있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머리가 벗겨진 사람은 그런 스웨터 입기 힘들어요. 그런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없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런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 걸 입고 있으면 말이죠, '체, 대머리 주제에 저렇게 화려한 스웨터를 입다니'라고 말들이 많아요. 아니 실제로 말들은 안해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본인이 느낀다니까요. 그래서 입지 못하죠. 한번 자신이 그런 입장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아저씨는 덧붙였다.
막상 그런 말을 듣고 보니, 마치 구둣발로 저벅저벅 남의 집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기야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대머리들은 꼼므 데 갸르손의 옷을 입고 포르셰를 타고 다니면서, 젊은 애인까지 거느리고 제법 화려하게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정말 내 인생보다 훨씬 화려하다구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활태도는 머리카락의 양과는 무관하고, 사람 각각의 개인적인 차이가 아니겠느냐 싶다. 그런 현상을 안일하게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지금 현재 나 자신 딱히 머리가 벗겨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머리카락이 빠진 적이 두 번 정도 있다. 한번은 삼십대 초반이었고, 또 한 번은 사십대 초반이었다. 이때는 과연 나도 '이거 큰일났는데' 하고 마음이 상했다. 목욕탕에 들어가 머리를 감으면, 눈에 띄게 머리카락이 빠진다. 머리를 감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평소와는 달리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렇게 되면 주위 사람들도 '요즈음 이상하네, 슬슬 대머리가 되어가는 것 아니야'라고 놀리게 된다. 나 자신도 '혹시 이대로 대머리가 되는 거 아닌가' 싶어 불안스러워진다.
하지만 이때의 일시적인 대머리 현상의 원인은 비교적 확실하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더 이상의 이유는 없다. 처음에는 전업소설가가 된지 얼마 안되서 였다. 소설가가 된 것은 좋았는데, 직업을 바꾼 데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가 돌출하였다. 인간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적인 피로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진 모양이었다. 한참이 지나 상황이 완화되자, 내 머리카락은 다시 원래의 양으로 돌아왔다.
두번재는 《노르웨이의 숲》이 빨강 초록 두 권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어 황망하던 때다. 물론 자신의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자체는 기뻤고, 그에 불만을 터뜨릴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에 부수되는 혹은 유발된 이라고 해도 좋을 짜증나고 괴로운 일이 더러 있었다. 나는 그 때문에 골치를 앓았고, 몸과 마음이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거의 1년 정도 아무 글도 쓰지 못했다. 그때도 머리카락이 우수수 애처롭게 빠졌다.
어쩌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처럼 인생의 마무리 점에서는 무슨 일이 있든 없든 정신적인 압박이 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뭐 그럴 때마다 벼랑에 매달리는 클리프 행어적으로 다시 재기하여, 내 머리카락은 지금 그럭저럭 정상적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번재가 언제 올지, 혹은 오지 않을지 알 길은 없지만.
인생이란 예기치 못한 함정으로 가득한 장치이다. 두번이나 일시적인 대머리 현상을 체험하면서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총체적인 균형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간단하게 말하면 '인생, 좋은 일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는 일에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기면 대신 인간관계에 금이 간다. 사랑이 있으면 미움도 있다. Vice Versa(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 머리카락이 늘고 줄고 하는 것은, 내게 그런 장치의 통절함을 가르치기 위한 일종의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그런저런 사연으로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빗을 때마다, 조금 더 어개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살자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너무 힘을 빼면 바보 같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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