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텔레비전이 없으니까 당연히 비디오도 없다. 내 친구의 집에는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있어서 이따금 한꺼번에 몰아서 보러 간다. 지난번에는 가서 하루 종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피터팬>과 <라일락의 문> 이렇게 세 편의 비디오를 보고 왔다. 그때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정말로 잘 먹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 거의 간식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 담배를 끊고 얼마 안되었을 때에는 입이 심심해서 여러 가지 것을 열심히 먹어댔지만, 이러다가는 살이 한없이 찌개 될 것 같아 어느 날 단단히 결심을 하고 쓸데없는 것은 일체 입에 넣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간식을 하지 않는다. 간식을 먹고 안 먹고는 습관적인 문제라서,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까지도,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이것저것 꽤나 여러 가지 것을 집어먹게 된다. 더군다나 내 친구는 대단히 친절해서 쿠키라든가 전병이라든가 초코렛이라든가 애플파이라든가 그러한 것을 주위에 쭉 늘어놓아 주기 때문에 나는 극히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계속적으로 먹어 치우게 된다.
과자를 잔뜩 먹으면 목이 마르니까, 그 다음에는 차나 커피, 주스나 맥주 같은 것을 꿀꺽꿀꺽 마시게 된다. 그 덕분에 오줌만 계속 나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일곱 시간이나 여덟 시간 가량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여러 가지 것을 먹고 마시고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온다. 나의 경우 그러한 일은 2개월에 한 번 정도밖에 없어서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매일 그 짓을 했다가는 영락없이 뚱보가 될 것이다.
지난번에 공항 대합실에서 스탠드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으려니까, 정면에 놓인 커다란 텔레비전에서 <웃어도 좋고말고!>라는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에는 300명가량의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 왠지 모르게 굉장히 기묘하게 느껴졌다. 점심때였기 때문에 모두들 주스를 마시거나, 도시락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하면서 이따금 일제히 웃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쳐다본다는 의식도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위장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텔레비전 화면에 오버랩 되어서,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그런 것이 좋다든가 나쁘다 라든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기계가 갖는 기능의 기묘함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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