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영화를 보는데, "베트남에 얼마나 있었어?" 하는 질문에 어떤 파일럿이 "2년 반"이라고 답하는 대목이 나왔다. 자막은 "두 번 왕복하고 반"으로 처리되었다. 직업상 나도 다른 사람의 번역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건 역시 '2년 반'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내 기억으로는 마이클 파가 쓴 <파병>이라는 베트남 전쟁 리포트에 이 '턴(Turn)'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확실히 원 턴이 1년이었다. 베트남에서 1년을 근무했다면 이미 베테랑 군인으로, 보통 사람이라면 정신이 이상해지고 만다. 그런 것을 2년 반이나 근무했으니 이 파일럿은 상당히 거친 사내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두 번 왕복하고 반'이라면 도무지 뭐가 뭔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다. 미국 본토와 베트남을 두 번 왕복하고 반이라면, 지금쯤은 베트남 한복판에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영화나 소설이나 다큐멘터리가 꽤 많은데, 그런 것들을 보다가 새삼스레 깨닫는 것은 은어와 속어가 참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나도 처음으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소설을 읽었을 때는 뜻도 모를 단어투성이라 뭐가 뭔지 도통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하기야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평범한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에 따라서는 책 뒤에 베트남 전쟁에서 쓰였던 전문용어와 속어에 대한 '빠른 이해를 위한 사전' 같은 편리한 것이 붙어 있는 것도 있다.
나는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 좋아서 극장에 가서 네 번 정도 봤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속어도 소설만큼은 아니더라도 역시 상당하다. 특히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인 말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자막으로 처리할 수도 없다. 말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추잡한 전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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