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도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유로움

chocohuh 2022. 8. 24. 09:39

1981년 여름에 도심에서 교외로 이사를 와서 가장 난처했던 것은 대낮부터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거였다. 인구의 태반이 샐러리맨이라서 그런 사람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때 집에 돌아온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대낮의 거리에는 주부들밖에 없다.

 

나는 원칙적으로 아침과 저녁때밖에 글을 쓰지 않으니까, 오후에는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게 된다. 왠지 아주 묘한 기분이 든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몹시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힐끔거려대니까, 나 스스로도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나를 아무래도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산책을 하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이봐요, 하숙집 구해요?" 하고 말을 걸어왔고, 택시 운전사는 "공부하기 힘들지요?" 하고 물어왔으며, 레코드 대여점에서는 "학생증 좀 보여 주세요." 하는 말을 들었다. 1년 내내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벌써 서른셋인데 아무리 그래도 설마 학생으로야 보이겠느냐는 생각이 들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대낮부터 빈둥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은 모두 학생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도심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없었다. 아오야마 거리를 한낮에 산책하고 있으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곤 했다. 특히 삽화가인 안자이 미즈마루 씨와는 자주 만났다.

 

"안자이 씨, 뭐하십니까?"

", 아니, 그냥 잠깐..." 하는 식이다.

 

안자이라는 사람은 정말로 한가한 것인지 그걸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아무튼 도시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사람들이 대낮부터 빈둥거리고 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잘은 알 수 없지만, 편안하기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

 

점심시간에 분식 센터에서 맥주를 시켜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분식집에서 마시는 맥주는 정말 맛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