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나와 여자와

chocohuh 2022. 6. 21. 10:02

요즘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여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매우 힘든 일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서른네 살이고, 뭐 보통 사람만큼은 여자와 사귀어 본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여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한다.

 

미리 말해 두지만, 그저 단순하게 여자에게 친절을 베풀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집까지 바래다준다든가 짐을 들어준다든가,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한다든가 옷차림을 기억해 준다든가 하는 일은 고등학생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일을 하면서도 상대방에게 "하루키 씨는 참 친절하시네요."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끔 하는 테크닉이다. 왜 여자에게 "친절하시네요."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는지를 설명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이런 느낌은 웬만큼 나이를 먹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잘났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예전에는 여자에게 친절하려고 애쓰다 실패만 잔뜩 한 사람이다.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열일곱 살 때 일로, 그 무렵에 나는 매일 한큐센을 타고 고베에 있는 학교까지 다녔는데, 어느 날 아침 한큐 아시야가와 역에서 종이봉투가 전철 문에 끼여 당황해하고 있는, 굉장히 귀엽게 생긴 여학생을 발견했다. 그래서 곧장 달려가 "잡아당겨 드릴까요?"라고 했더니, "어머, 고마워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내가 힘껏 잡아당기자 종이봉투가 둘로 짝 찢어지면서 내용물이 선로 위에 흩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무척 난감해지기 마련이다. 더 이상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 , 미안합니다." 하고 뒤처리는 역무원에게 맡기고 도망쳐 버렸다.

 

벌써 17년이나 지난 얘기지만, 그때의 고난 여자 고등학교의 여학생, 정말로 미안해요. 악의는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