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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생일이 재미없어졌다

chocohuh 2022. 6. 21. 09:56

앞서 어떤 글에서 나이를 먹고 나니 발렌타인데이가 전혀 재미있지 않다는 얘기를 썼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 재미없어진 것은 발렌타인데이뿐만이 아니다. 생일날도 무척 재미가 없다. 자랑할 일도 못 되지만, 최근의 내 생일만 하더라도 무엇 하나 재미있는 일이 없다.

 

물론 선물을 받지 못한 건 아니다. 우리 집사람은 꽤 선심 쓰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선물은 뭐가 좋아요? 뭐든지 사 줄게요"라고 말하고, 또 대개는 실제로 선물을 사준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집사람이 돈을 내든 내가 돈을 내든 나오는 구멍은 한 구멍인 것이다. 10만 엔짜리 카세트테이프 레코더를 선물 받고 그 당시에는 와아 하고 좋아라 해도, 월말이 되면 "저기 말이죠, 이번 달 생활비가 모자라요" 하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생일 선물로 무얼 받든 전혀 기쁘지 않다. 우울하다.

 

그래서 올해의 생일은 슬그머니 넘어가 버리려고 했다. 긴자에서 레코드 한 장을 산 뒤(내가 직접 샀다), 니혼바시에 있는 다카시마야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그 정도라면 분수에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니혼바시까지 걸어갔는데 다카시마야는 정기 휴일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다카시마야에 가면 나름대로 은밀하게 생일 축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니혼바시까지 걸어왔던 것이다. 결국 그날은 버럭버럭 화를 내며 맥주를 마시고 배가 터지도록 회를 먹어 돈을 잔뜩 쓰고 말았다.

 

그 이튿날, 나는 출판 담당 여자 편집자와 만나 식사를 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연하로, 나와 혈액형도 같고 생일도 같다.

"생일이라 해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요."라고 그녀도 말했다. 나이를 먹으면 이런 식으로 생일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일이라곤 없군요." 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실컷 먹고 마시는 게 생일을 보내는 가장 타당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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