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쓰면 주위의 모든 것이 갑자기 잘 보인다. 자신은 지금껏 알지 못했어도 정말 눈이 나빠진 것이 갑자기 잘 보인다. 자신은 지금껏 알지 못했어도 정말 눈이 나빠진 것은 틀림없다. 안경을 쓰고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면 아마 거의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계에 빠져버린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았던 부분도 선명히 보이는 예가 있고, 이제까지 완전히 볼 수 없었던 부분이 잘 보이는 경우도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원숭이'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내가 이따금 길모퉁이에서 원숭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은 안경을 쓰고 나서였다. 분명히 단언해서 말할 수 있지만 내가 그때까지 원숭이를 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는데, 내가 넉 달 전에 안경을 쓴 다음부터 모두 일곱 번 정도로 원숭이 모습을 목격했다. 결국 한 달에 1.75번 정도로 발견한 셈이지만 요일별로 말하면 월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이 각각 두 번씩이고 화요일이 한 번씩이다. 때문에 이것은 물론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원숭이들은 주말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원숭이들이 출몰하는 장소에도 특징이 있어 주로 그곳은 지하철 긴자선 선로 주변에 한정되어 있다. 내용별로 상세하게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오모테산도 부근 - 3번
2. 아오모리 1가 부근 - 2번
3. 란노몽 - 1번
4. 교바시 – 1번
그러나 이것은 물론, '내가 어쩌다 가끔 본 것뿐'이라는 조건 하에 써본 것으로 실제로 그들은 마루노우찌선 철로변에도 똑같이 출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원숭이들은 아카사카 미쯔케에서 갈아타면 요쯔야에도 갈 수 있고 고라쿠엔에도 갈 수 있는 것으로, 원칙적으로는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원숭이들의 숫자에 관해서 나는 확실히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 일곱 번 본 원숭이는 똑같은 하나의 원숭이인지도 모른다. 또 각각 다른 일곱 마리의 원숭이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안경을 썻다 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잘 보이게 됐다고 해도 일곱 마리 원숭이가 모두 비슷비슷하고 더구나 원숭이의 털모양, 상태까지 구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마 자기변명인지 몰라도 도대체 어느 누가 그런 것까지 알아낼 수 있을까?
일곱 번 발견한 원숭이 중에서 지금 가장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교바시에서 발견한 원숭이였다. 교바시 역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 밖으로 나오면 니혼바시 방향이 나온다. 바로 그쪽 주변에 있는 킨포도의 모서리에 원숭이가 서 있었다. 중앙 공론사에서 큰길로 빠지는 길모퉁이였다. 원숭이는 털이 덥수룩한 손에 거대한 스패너를 쥐고 길모퉁이를 돌아 나타나는 누군가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원숭이는 땅바닥에서 손을 조금 떨어뜨리고 허리를 조금 구부린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가끔 흰 거품이 입 언저리에 생겨나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쩌다가 박제된 원숭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원숭이는 그 정도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원숭이는 분명히 살아 있었고 오른쪽 손에 꽉 쥔 스패너로 이제부터 누군가를 때려 죽일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제부터 자신이 원숭이에게 맞아 죽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때 중요한 볼 일이 있어서 결과를 최후까지 지켜보지 못했다. 아마 원숭이는 그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성공적으로 돌연한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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