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가게는 대로에서 두 골목쯤 떨어진 옛날의 상점가 한가운데쯤 있었다. 가게의 넓이는 유리문 두 개 정도로, 간판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문패 옆에 '만년필 가게'라고 조그맣게 씌어져 있을 뿐이었다. 형편없이 엉성하게 만든 유리문은 열리고 나서 제대로 닫히기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은 변변치 못한 것이었다.
물론 소개장이 없으면 안 된다. 시간도 걸리고 돈도 많이 든다. 하지만 말이야, 꿈처럼 마음에 쏙 드는 만년필을 만들어 주거든, 하고 친구는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찾아왔다..
주인은 예순 살쯤 되어 보였는데, 숲 속에 사는 거대한 새 같은 풍모였다.
"손을 내놓아 보게" 하고 그 새가 말했다.
그는 나의 손가락 하나하나의 길이와 굵기를 재고, 피부의 기름기를 확인하고, 바늘 끝으로 손톱의 딱딱함 정도를 조사했다. 그러고 나서 내 손에 남아 있는 여러 가지 상처 자국을 노트에 메모했다. 그렇게 살펴보면, 손에는 갖가지 상처 자국이 나있는 법이다.
"옷을 벗게나."하고 그는 간략하게 말했다.
나는 무엇 때문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셔츠를 벗었다. 바지를 벗으려고 하니까, 주인이 황급히 제지하며 위만 벗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나의 등 쪽으로 돌아가 등골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손가락으로 눌러 내려갔다.
"인간은 말일세, 등골 하나하나로 사물을 생각하고 글자를 쓰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의 등골에 맞춰 만년필을 만든다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나이를 묻고, 생일을 묻고, 월수입을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만년필로 도대체 무엇을 쓸 생각이냐고 물었다.
3개월 후, 만년필은 완성되었다. 꿈처럼 몸에 익숙한 만년필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것으로 꿈같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꿈처럼 몸에 익숙한 문장을 파는 가게에서 바지를 벗어 보았자 내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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