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자면 길어지지만, 어쨌든 내 자동차가 도난을 당했다. 집 앞에 세워두었던 나의 폭스바겐 코라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그곳에 흰색의 혼다 어코드가 세워져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둑맞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 자동차가 혼자서 제 멋대로 어딘가로 가 버릴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정말 난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보다 2주일 전에 하버드 광장에서 내 소중한 자전거를 도둑맞았던 참이다. 가로수의 몸통에 체인만 남아 있고 자전거는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전에는 대학의 체육관 사물함이 훼손당하고 스쿼시용 운동화를 도둑맞기도 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까지 도둑맞았으니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30분 뒤에 집으로 찾아온 사람은 젊고 키가 큰 여자 경찰관이었다. 나보다 대충 머리 절반쯤은 더 키가 크고 금발이었는데, 얼굴은 롤라 던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녀의 임무는 도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용지에 시리얼 넘버, 연도, 차 색깔 등 필요한 사항을 담담하게 적어 넣고, 그 복사본을 나에게 주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만 말하고 돌아갔다.
겉으로 보기에 그다지 스릴 있는 일도 아니고, 본인도 특별히 즐겨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형사가 나오는 영화에서는 젊고 미인인 여자 경찰관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멜 깁슨 같은 남성과 콤비를 이루어 스펙터클한 사건들만 맡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현실은 좀 더 현실적이다.
나는 그녀에게 "자동차 도난이 이 부근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아뇨, 거의 없었던 일입니다. 이 부근에서 자동차를 도난당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사실은 저도 약간 놀랐어요."하고 믿기지 않는다는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안녕"하고 무뚝뚝하게 말을 마친 다음 혼자 순찰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져 갔다.
"이 부근에서 자동차를 도난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인지,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집 주인 스티브도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이상하군요. 여기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는데, 참 이상하네요."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한 블록 앞쪽 거리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스티브는(그는 영화일을 하고 있다)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나는 여기서 20년 동안 살면서 누군가가 세워 놓은 자동차를 도둑맞았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정말 놀랄 만한 이야기네요" 하고 탐정 영화라도 본 듯 감탄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특별히 부자들이 사는 곳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범죄와는 무관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차 문만 닫고 핸들 키는 빼지도 않고 살 정도로 안심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전례가 있든 없든, 감탄을 하든 동정을 해주든 간에, 내 자동차가 도난을 당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내가 경찰에 통보한 다음에 해야만 하는 일은 보험 대리점에 연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대리점에서는, "뭐요? 차를 도둑맞았어요?(귀찮게 됐군) 그래서요?" 하는 식으로 번거롭고 성가시다는 대응이었다. 친절이나 동정심 같은 건 약에 쓰려 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경찰 보고서의 사본을 받아 들고 나를 힐끔 바라보고는, "그럼 보험회사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로 끝이었다. (몇 가지 내 개인적인 체험으로 말한다면, 미국에서 가장 기분 나쁜 시간을 보내려면 자동차 보험 대리점에 가면 된다. 모두들 정말로 죽기 싫어서 하는 듯이 일하고 있다. 이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자동차를 찾을 때까지 렌터카 요금은 하루에 15달러까지 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인 제이 루빈에게 렌터카 사무실까지 태워다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에 21달러의 가격으로 포드 에스코크(놀랍게도 에어백이 붙어있어서 좋아했는데, 조수석 쪽에는 사이드 미러조차 없었다)를 빌렸다. 렌터카의 창구 직원 남자가, "도난당한 차의 90퍼센트는 삼사일 이내에 발견됩니다. 종종 '조이 라이드(Joy Ride, 차타는 것을 즐김)'라고 해서 젊은 애들이 타고 다니다가 휘발유가 떨어지면 그냥 버려두고 가거든요, 틀림없이 기다리고 있으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하고 위로해 주었다.
12월 8일
렌터카 창구 직원의 예언대로 4일 후에 자동차가 발견되었다. 에이본이라는 보스턴 교외의 거리에 버려져 있었다. 관할 경찰관이 컴퓨터로 넘버를 체크해서 케임브리지 시 페이어트 가에서 도난당한 무라카미씨 소유의 자동차라는 것을 확인했다. 전화로 그 소식을 전해 준 것은 케임브리지 경찰서의 경찰관이었다.
"아, 자동차는 겉으로 보기에는 피해가 없다고 합니다."하고 그 경찰관은 자못 따분한 듯이 말했다.
"그것, 참 다행이네요."하고 나는 대답했다. 정말 나로선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부터 그 에이본이라는 거리까지 자동차를 가지러 가면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마라카모씨, 사실은 타이어가 한 개도 없어요."하고 경찰관은 (아마) 콧구멍을 후비면서 얼핏 생각이 난 것처럼 덧붙였다. "그리고, 으음, 휠도 하나 없어요. 시동도 전혀 걸리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지러 가도 자동차를 가지고 돌아올 순 없을 겁니다."
"도대체 뭘 보고 자동차의 어디가 특별히 피해가 없다는 거야? 게다가 나는 마라카모가 아니라 무라카미라고!" 하고 그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점잖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평소에 늘 자동차 수리를 부탁하는 '스트리트 와이즈' 카센터의 보비에게 연락을 해서 래커 차로 자동차를 에이본에서 그곳까지 운반해 달라고 부탁했다.
12월 9일
골치 아픈 수속이 여전히 계속해서 이어졌다.(별로 재미없는 내용이 아니니까, 미국의 자동차 보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이 대목을 건너뛰고 읽어주기 바란다) 경찰서에 가서 '리커버리(Recovery 발견) 증명서'라는 것을 발행 받았다.
그 경찰서는 카프카적인 분위기라고나 할까, 상당히 우울한 장소였지만, 그 장소에 관해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으니까 여기서는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고 나서 그 길로 보험 대리점까지 찾아가서 '리커버리 증명서' 복사본을 제출한다. 대리점은 그 증명서를 보험 회사에 팩스로 보내고, 보험회사는 전문 감정인을 '스트리트 와이즈' 개러지로 보내 내 자동차의 상태 검사를 하고, '어프라이잘(보험금 사정) 통지서'를 작성한다.
그제서야 겨우 자동차의 수리가 시작된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다. 규정상 보험회사의 직원이 나에게 약 30분에 걸친 전화 인터뷰를 하는 규정이 있다. 이것은 선서를 하고 하는 정식 녹음인터뷰여서 나의 회답은 모두 법률적으로 유효하다.
인터뷰한 여성은 결코 불친절하지 않았지만, 독감에 걸려서 재채기를 하거나 기침을 하고, 게다가 콧소리였기 때문에 발음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것도 말하자면 하나의 지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설을 마무리 짓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러나 그로부터 2주일이 경과한 지금까지도 사태는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나의 불쌍한 폭스바겐은 여전히 타이어 네 개가 모두 빠진 채 수리 공장에 방치되어 있다. 보험 대리점이 보험 회사에 팩스로 보낸 '리커버리 증명서'가 어딘가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 회사 직원이 자동차를 검사해서 견적을 내지 않는 한 수리 공장에서는 수리를 하려고 해도 손댈 수조차 없다.
더군다나 짜증스러운 듯 미간에 주름을 잡은 대리점 여성은 나에게 차갑게 선고했다. "미스터 모로카미, 자동차가 발견된 그날을 기한으로 해서 렌터카의 요금은 더 이상 지불되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자기 돈으로 내세요."
그래서 나는 항의 했다. "하지만 타이어가 한 개도 없다고요. 게다가 당신이 '리커버리 증명서'를 잃어버린 탓에 아직도 수리를 못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나는 모로카미가 아니고, 무라카미다. 그러나 나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계속 렌터카의 대금을 지불하고 있다.
자동차를 한 대 도난당하는 것이 이처럼 번거로운 결과를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보험 회사에 전화를 자꾸 걸지 않으면 안 되고, 경찰서나 수리 공장에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관청이나 대학 서무과로 가서 '주차 허가서'를 다시 발급받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저기로 뺑뺑이 돌리듯 뛰어다니게 만들고, 있어도 없다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불친절한 대우를 받거나 하면서 시간이 정신없이 흐르는 탓에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무엇보다 외국이고, 외국어만 통하니까, 화가 치밀어 고함을 치고 싶어도 제대로 고함을 칠 수 없는 게 가장 괴로웠다.
'그렇구나, 세상이란 이렇게 골치 아픈 것이구나, 무슨 일이든 모두 경험이야'하고 생각하며 의젓하게 행동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도저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 쓸모없는 소모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사정이 어떠냐고 친지에게 전화로 물어 보았더니, "일본에서는 자동차를 도둑맞는 일이 없다고"하고 웃어넘겼다. 그 대신 못으로 문짝을 긁어놓거나, 타이어를 펑크 내거나 하는 악질적인 장난이 많다고 한다. 하긴 둘 다 모두 마찬가지니까, 서로서로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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