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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체벌에 관하여

chocohuh 2021. 11. 22. 08:06

중학교 때, 툭하면 선생님한테 얻어맞았다. 초등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한테 얻어맞은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중학교 때만은 수도 없이 얻어맞았다. 그것도 담배를 피웠다든가 물건을 훔쳤다든가 술을 마셨다든가, 그런 심각한 나쁜 짓을 저지른 결과로 얻어맞은 것이 아니다. 숙제를 잊어버리거나 선생님의 기분을 거스르는 무슨 말을 하는 정도의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선생님은 손바닥으로 뺨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하고, 자 같은 것으로 머리를 때리기도 하였다. 선생님한테 맞는 것은 우리한테는(적어도 나한테는) 일상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대개 남학생이 얻어맞았지만, 여학생이 맞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유난히 건방져서 쉬 얻어맞았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당시의 나라고-지금은 차치하고-타인의 기분을 거스르는 짓만 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닌 학교는 효고현 아시야시에 있는 평범한 공립중학교로 환경도 결코 열악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눈에 띄는 불량생도 없었고, 대부분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내가 듣고 보는 한, 비행 청소년이나 교내 폭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평화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선생님이 학생을 그토록 빈번하게 때리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그래 가지고서야 전쟁통의 병영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물론 학생을 때리지 않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선생님이 학생을 때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 우익들이 '전후 민주주의 교육이 일본을 망쳤다'고들 하는데, 나는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내게는 '전후 민주주의 교육' 따위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벌써 30년이나 지난 일이라 기억도 생생함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시를 돌아보며 얻어맞은 일을 '그것도 뭐 좋은 추억거리지'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지금 생각해도 역시 불쾌하고 화가 치민다.

 

물론 얻어맞은 자리에서 '얻어맞아도 싸지'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집요하게 한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겨우 이런 일로 얻어맞다니 불합리하고 불공평하지 않은가'라고 느꼈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다른 졸업생들은 몰라도 나는 두 번 다시 그 모교를 방문하고픈 마음이 없다. 이 점은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는 잊기 어려운 좋은 추억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일상적으로 얻어맞은 일로 하여 내 인생이 크게 변화하였던 것 같다. 나는 그 이후 선생이나 학교에 대해 친근감보다는 공포와 혐오감을 품게 되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몇몇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일은 있지만, 그런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한 일은 거의 없다. 도무지 그럴 마음이 일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불행한 일이다.

 

몇 년 전 같은 효고현의 고등학교에서 여고생 교문 압사사건이 생겼을 때도 '기도 안 차는 사건이지만, 내 체험으로 봐서 그런 무모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선생님을 '불행한 일이지만 교육에는 열심인 선생님이었다.'라고 변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점점 더 기분이 참담해졌다. 그 열심히라는 것이 문제를 한층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내가 다닌 그 중학교를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한신 대지진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교정에 죽 뉘어 있는 장면, 그리고 또 한 번은 지진 직후 임시 숙소로 텐트를 설치한 교정에서 행해진 졸업식 광경이었다. 그때 나는 마흔여섯 살의 소설가로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살고 있었고, 이미 선생님한테 불합리하게 얻어맞을 염려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진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기보다 '아아, 저기서 꽤나 선생님한테 얻어맞았었지' 하는 씁쓸한 기억이었다. 물론 지진의 희생자 여러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안됐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고통에 비하여 선생님한테 얻어맞은 정도의 아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리와 비교를 넘어서, 나는 아직도 자신의 마음과 육체에 남아 있는 상처의 아픔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지진과 체벌이란 전혀 무관한, 두 불합리한 폭력성이 내 머릿속에서 그때 하나의 정경이 된 것이다.

 

세상에는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체벌은 필요 불가결하다'라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주장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뜻에서 무의식적으로 학생들에게 손을 대는 열성적인 선생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체벌이 열성의 하나의 방법론으로 홀로 독주하는 시점부터, 그것은 권위의 힘을 빌린 그저 비굴한 폭력으로 변하고 만다. 그런 일은 비단 학교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일본 사회에서 그런 비굴한 폭력성을 질리도록 보아 왔다. 앞으로는 가능하면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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