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컴퓨터 스위치를 누른 후부터 화면이 셋업 될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긁어모을 때도 마찬가지다. 화면을 노려보면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지는데(모든 새로운 편리함은 예외 없이 새로운 종류의 불편함을 낳는다), 그럴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지?
나는 화면은 일체 잊어버리고 옆으로 돌아앉아 여유롭게 문고판 책을 읽는다. '넌 너 좋을 대로 해. 나도 나 좋은 거 할 테니까.'하는 식으로. 뭐, 그런 식으로 잠깐씩 단속적으로 읽는 것이니 장대하고 줄거리가 복잡한 책(예를 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라든가)은 용도에 맞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굴러다니는 잡지를 읽는 것도 어지간히 '시간땜질' 같은 느낌이 들어 재미가 없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동화가 가장 좋았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잉글랜드 동화집/스코틀랜드 동화집/아일랜드 동화집>으로 가족들의 책장에 있는 것 중에서 적당히 골라 온 것인데, 훑어보는 동안 재미있어서 짧은 시간의 독서지만, 제법 심취하게 되었다. 원본이 1954년에 출판된 것이라 지금 읽으면 문체가 다소 고풍스러운데, 그 점이 오히려 더 동화답구나 하는 바람직한 맛을 내고 있다.
'옛날 옛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습니다. 작은 강 옆의 작은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아주 명랑해서 조금도 화 같은 것은 내지 않았습니다. 집도 정원도 있고, 그리고 건강한 두 마리의 황소와 다섯 마리의 암탉과 한 마리의 수탉도 있었습니다. 또 늙은 고양이가 한 마리, 새끼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정말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음,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이야, 지금부터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까 하면서 소년기에서 한참 멀어진 인간이 읽어도 상당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야기의 주역은 바로 '작은 과자빵'에게로 넘어가고, '부자라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처음에만 나왔을 뿐, 두 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아예 완전히 빠져 그대로 망각 속에 방치되어 버린다. 아주 이상한 이야기이다. 동화에는 그런 구조적인 이상함이 항상 따라다녀서 더욱 흥미롭다.
컴퓨터를 기다리는 시간에 동화책 페이지를 넘기는 것, 참 좋다. 화면이 셋업 되어도 그대로 더 읽을 수 있기도 하고. 과자빵이 어떤 운명을 겪게 될지, 관심이 있는 분은 스스로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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