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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길만 있으면

chocohuh 2021. 6. 4. 08:17

골프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그 이야기를 계속할까 보다. 내가 골프를 하지 않는 이유를 87개쯤은 즉석에서 읊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만을 들어 보겠다.

 

(1) 혼자서 할 수 없다. 타인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2) 일일이 멀리까지 가야 한다.

(3) 도구를 모두 사서 갖고 다녀야 하는 것이 힘이 든다.

(4)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가시다.

 

역으로 말하면, 그 반대에 있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될 것이다. 요컨대 달리기이다. 달리는 것은 혼자 할 수 있고, 길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적당한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특별한 도구가 필요 없다.

그런 이유로 벌써 20년쯤 날마다 달리기를 하고 있지만, 달리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특히 여행을 할 때이다. 낯선 외국 도시에 가면 아침에 일어나서 그 동네를 천천히 달려 본다. 그것은 정말 기분 좋다.

 

기분이 좋을 뿐만이 아니다. 조깅할 때의 스피드(시속 약 10킬로미터)는 풍경을 바라보기에 이상적이어서 차로 달리다가 보면 놓치는 것들도 다 볼 수 있고, 걸어서 구경하는 것보다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훨씬 더 많아진다. 흥미를 끄는 것이 있으면 멈춰 서서 찬찬히 바라볼 수도 있고, 사람 잘 따르는 고양이가 있으면 같이 놀 수도 있다. 만약 뭔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왕왕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그야 당연하다. 전혀 낯선 거리를 적당히 달리는 것이니, 헤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핀란드 어느 도시를 달릴 때도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호텔을 나왔을 때는 해가 비쳤지만, 도중에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더니 몹시 추워졌다. 주변에 인적은 없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만약 그곳에서 친절한 한 가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대로 동사 했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물론 농담이지만, 정말 추웠다.

 

이탈리아 중부의 미로 같은 옛 도시에서는 숙박했던 호텔을 잊어버린 일도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달리고, , 기분 좋다, , 호텔로 돌아가서 샤워를 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호텔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건, 정말 난처했다. 길을 물어 볼 수가 없잖은가.

자포자기하고 여기저기 달리다가 우연히 낯익은 그 호텔이 눈앞에 나타나서 구사일생의 운명이 되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스에서는 길을 달리고 있으면, 종종, '오빠, 잠깐 쉬면서 우조(아니스의 열매로 맛을 낸 그리스산 리큐어) 한잔 하구 가.' 하는 유혹의 소리들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물론 정중히 거절하지만(그런 것을 마시면 달릴 수 없단 말이야), 그러나 자신의 다리로 길을 달리면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이라는 것은 정말 멋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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