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0년대에 십 대 시절을 보내서 데뷔 때부터 해산 때까지의 비틀스와 동시대적인 체험을 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것을 대단찮게 생각했다. "예스터데이"가 히트했을 때도, 처음에는 '좋은 곡이군' 하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예스터데이"만 나와서 결국에는 '빌어먹을, 제발 그만 좀 틀라구' 하며 진절머리를 쳤다. 지금도 "예스터데이" 전주가 들리면, '젠장, 작작 좀 틀어 줘' 하는 생각이 조건반사적으로 치밀어 오른다.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에는 재즈와 클래식에 빠져 비틀스는 경원시하는 쪽이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흥'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있다. 어쨌든 한창 건방질 때여서 그런 돼먹잖은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해도 라디오에서는 비틀스의 히트곡이 매일 흘러나오니, 결국 어쩔 수 없이 비틀스 노래는 내게 60년대의 백뮤직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대단한 밴드이며, 대단한 곡들이었다고 지금은 솔직하게 감탄한다. 왜 젊을 때 좀 더 솔직하지 못했을까? 투덜투덜.
어느 날 볼일이 있어서 먼 곳에 갔을 때, 샌드위치맨이 상점가를 걸어가는데, 그 음악이 "오블라디 오블라다"였다. 여러 샌드위치맨을 보았지만, 비틀스를 연주하는 샌드위치맨은 처음이어서 신기해하며 지켜보았다. 클라리넷과 큰북이라는, 예의 고전적인 악기 편성이었지만.
그러나 그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에 이상하게 머리가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뫼비우스의 띠' 같은 미로에 빠져들어, 아무리 둘러보아도 출구가 발견되지 않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상하네, 대체 뭐가 이상한 걸까 하고 생각하는 동안, 퍼뜩 깨달은 것인데, 그 샌드위치맨이 연주하는 "오블라디 오블라다"에는 전개부가 없었다. 요컨대 AABA라는 형식에서 B 부분이 없고, A 부분만 되풀이해서 연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들은 전개부를 건너뛴 것일까? 연주가 기술적으로 어려워서일까. 혹은 첫 부분을 단순하게 반복하는 편이 마술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계산에서 일까.. 어쨌든 지금도 종종 그때의 '머리가 근질거리는 느낌'이 체내에 되살아나 솔직히 말해서 짜증이 난다.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것은 좋지만, 기왕 할 바에 라면 전개부까지 제대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 전개부가 없는 음악이란, 핸드폰 착신 멜로디도 그렇지만, 갖다 붙일 데가 없어 은근히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문득 생각났는데 세상에는 종종 이야기할 때 '전개부가 없는' 사람이 있다. 하는 말 하나하나에는 언뜻 들어 옳은 것 같지만, 전체적인 세계상의 전개에 깊이가 없다고나 할까, 미로 속에 들어가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런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역시 녹초가 되고 그 피로감은 의외로 오래간다.. 이것도 물론, 비틀스에게는 책임이 없는 이야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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