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나는 맥주가 좋다

chocohuh 2020. 10. 20. 08:24

옛날에,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아직 얼마 안 됐을 무렵에, 당시 잡지 <태양>의 편집장이었던 아라시야마 고자부로 씨에게서 ", 무라카미 군. 자네는 늘 맥주만 마시는 것 같은데, 그건 아직 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맥주에서 다른 술로 기호가 바뀔 거라구"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네에, 그렇습니까?" 하고 그때는 반신반의하며 대답했지만, 확실히 그로부터 6년 남짓 지난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체적인 주량 중에서 맥주가 차지하는 비율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맥주를 마시는 양 자체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고, 거기에 더해 위스키나 와인을 더 많이 마시게 된 것이다. 나는 젊었을 적에는 별로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지만, 워낙 위가 튼튼했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평균적이거나 평균을 훨씬 넘을 정도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일 하나가 끝나고 술잔을 기울일 때의 기분이란 분명 인생에 있어서의 작은 행복이다. 외국 속담에 "인생에 있어서 행복은 세 가지밖에 없다. 식전의 술 한 잔과 식후의 담배 한 대다"라는 게 있는데, 이것도 꽤 설득력이 있다.

 

하긴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이를 먹고 주량이 늘었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와 같은 연배인 사람들 대부분은 속에 무슨 탈이 나서 "아니, 난 그렇게 많이 마실 수 없어서"라며 두세 잔으로 그만둔다. 젊었을 때 주량이 셌던 사람에게 이런 경우가 많다. 정열적인 투수가 어깨를 못 쓰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너무 마셔 대서 내장이 피폐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30대 후반에 접어든 샐러리맨의 대개는 관리직의 지위에 올라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처자식에 대한 책임도 있으므로 비교적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인생이란 마시고 싶은 만큼 실컷 마실 수 있는 때가 황금기다.

 

시부야 역 앞 같은 데서 단숨에 술을 마신 뒤 왁자지껄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이 사람들 중 반쯤은 앞으로 15년도 채 지나지 않아 주머니에 위장약을 숨겨놓고 술을 마시겠지 하고 상상한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그들의 환호성 속에서도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게 느껴져 제법 정취가 있다.

 

하긴 나에게도 학창 시절에 하루가 멀다 하고 술집에서 술을 퍼 마셨던 시절이 있었다. 대개는 싸구려 정종으로, 그것을 벌컥벌컥 마셔대니 당연히 뒤끝이 안 좋았다. 누군가가 형편없이 취해 나동그라지면 대학 구내에서 '미제 타도'라고 씌어진 플래카드를 들고 와, 그것을 들것삼아 하숙집까지 옮긴다. 한번은 옮기는 도중에 플래카드가 찢어져 친잔소 호텔 옆 계단에다 신나게 등을 부딪친 일이 있지만.

 

그러나 그런 얼빠진 소동도 한 넉 달쯤 가다가 끝이 나고, 그 이후로는 모두들 와글와글 소란을 피우며 술을 마시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 덕분에 나는 나의 그 튼튼한 위를 한층 광을 내가면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고, 술을 마셔도 뒤끝이 안 좋은 일도 없고, 명치 언저리가 쓰린 일도 없다. 실제로 볼 수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내 위는 제법 괜찮은 색깔에 돌고래처럼 매끌매끌하고 생기가 있을 것 같다. 바다에 풀어 주면 어딘가로 헤엄쳐 가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술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지금은 정종이란 걸 거의 마시지 않는데, 이것은 학창 시절 내내 정종으로 줄곧 고생을 하던 후유증 때문이다. 그 책임은 100퍼센트 내 쪽에 있지 정종 탓이 아니다. 만약 정종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다면, 나는 일절 자기 변호를 하지 않고 그 죄 값을 치를 생각이다.

 

그와 반대로 맥주 나라에 가면 나는 필시 VIP급 국빈으로서 대우받을 것이다. 개인적인 소모량만 해도 굉장하고, 소설 속에서도 꽤나 맥주를 지지하고 선전해 왔다. 내 소설을 다 읽고 나자마자 곧장 가게로 달려가 맥주를 사왔다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 소설의 질이야 어찌 됐든 적어도 어떤 종류의 효용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와인은 최근에 꽤 마시게 되었고, 지금도 부동액 소동에 아랑곳없이 열심히 마시고 있다. 원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몇 번인가 꼬임에 빠져 야마나시에 있는 양조장을 들락거리다 보니 폭 빠지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곤 해도 내가 마시는 와인은 그리 고상한 건 아니고, 가장 싼 캘리포니아 산 와인을 사와서 페리에를 섞고, 거기에 레몬즙을 짜 넣어 주스 대신으로 꿀꺽꿀꺽 마시는, 퍽 엉망진창인 와인이다. 그러나 이게 또 꽤 맛있다. 리처드 브로티건을 알코올 중독자로 만든 것으로 유명한 가로의 푸어보이 보틀(손잡이가 달린 대형 술병) 같은 건, 겉보기에도 와일드해서 그런 목적에는 딱 어울린다. 느긋하게 음미하며 마시기엔 로트실트의 붉은 와인이 최고지만, 이건 한 병에 2만 엔 이상이나 가니 그렇게 자주 마실 수는 없다.

 

위스키는 비교적 값비싼 것을 좋아해서, 외국에 갈 때마다 시바스 리갈하고 와일드 터키를 면세점에서 사와서 주로 온더록으로 마신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빈 병, 빈 캔을 한 달엔 한 번밖에 수거하지 않는다. 그때 한 달에 걸쳐 마신 와인이나 위스키 병, 맥주 캔을 지정된 장소까지 들고 가는데, 이게 또 상당한 양이라서 양손에 봉지를 들고 두 번 정도 왕복해야만 한다. 그러니 그때마다 제대로 쓰레기를 버리는지 안 버리는지 체크하는 이웃 아줌마가 "무라카미 씨도 굉장한 술꾼이군요." 하며 질린 표정을 짓는다. 매달 그런 소릴 듣는 것도 몹시 고통스럽다.

 

최근에는 어찌 된 일인지 정종이 굉장히 좋아져서 대낮부터 국숫집에 앉아 조금씩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미즈마루 씨의 말에 의하면 그건 인간적으로 성장했다는 뜻이라는데, 정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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