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턴에서 유령이 나오지 않는 오래된 집을 발견하기란 지극히 힘든 일이다,라고, 어떤 책에 써져 있었다. 뭐 다소 문장상의 과장은 있었다 해도, 확실히 해질 무렵에 찰스턴의 고요한 코블스톤 거리를 걷다 보면 정교하게 세공된 검은 철문 너머로, 혹은 어렴풋한 등불이 뿌옇게 비치는 현관 한 구석에서 뭔가 이상한 그림자를 본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한밤의 정원은 어쩐지 울적하고, 거대한 떡갈나무 가지에 몰(역주: 인도 모골 지방이 원산지인 돋을무늬의 모직물)처럼 축 늘어진 착생 식물이 강바람에 흔들거리며, 땅거미 속에 백일홍이 아련하게 떠 있다. 찰스턴이란 곳은 그런 도시다. 모든 것이 오래되고 고요하며, 그리고 우아하다. 기왕 나올 바에는 유령도 뉴욕 시티보다는 이런 도시에 출몰하는 쪽이 훨씬 기분이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찰스턴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데, 고풍 찬연한 남부의 옛 모습을 좀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완고하게 간직한 항구 도시다. 애슐리강과 쿠퍼강이 합류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 하구에 꼭 맨해튼 섬과 비슷한 모양으로 위치하고 있는 천연의 항구로, 식민지 시대에는 '작은 런던'이라 불리며 번창했었고, 군사적 중요성에서 남북전쟁의 발화점이 되기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팬들에게는 버틀러 선장이 봉쇄망을 뚫고 용감한 이름을 날렸던 도시라고 말하면 얘기가 통할지 모르겠다.
나는 딱히 레트 버틀러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앨라배마 주의 모빌 호텔에서 미국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찰스턴이라는 곳에 꼭 가보고 싶어 져서 비행기를 타고 곧장 대서양 해안으로 날아갔다. 어째서 찰스턴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여행이라는 것은 대개 늘 그런 식이다. 지도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마음에 들 만한 곳이 있으면 '음, 이거야!' 하고 결심하고는 그 곳으로 간다. 그런 기대에 제대로 부응되는 때도 있고, 전혀 영 아니다 싶을 때도 있다.
찰스턴은 기대에 부응했던 도시다. 그 사실은 애슐리강의 다리 위에서 도시를 한눈에 둘러보았을 때부터 이미 알았다. 물가에 무성한 푸른 풀들은 마치 논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쓰다듬어 주기라도 하는 듯 부드럽게 몸을 흔들고 있고, 줄줄이 늘어선 요트의 돛대는 여기저기에서 펄럭 펄럭 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 위를 갈매기나 황새(!)가 천천히 춤추듯 날고 있다. 시가지는 오랜 기품을 간직하고 있고, 고층빌딩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거리를 걸어가고 있으면 몇 사람이나 "하우 아 유 두잉 투데이?"하고 말을 걸어온다. 찰스턴이라는 것은 아이 앰 저스트 파인. 생큐,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만약 당신이 유령이라 해도 사우스 브롱스크보다는 역시 이런 곳에 나타나고 싶겠죠?
내가 묵은 여관에도 자주 유령이 출몰한다고 한다. 나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찰스턴의 유령》이라는 책에서 보고 알았다. 이 책에 따르면 "유령은 밤이 되면 복도를 걷다가 2층에 있는 남쪽 침실로 들어가 그 곳에서 사라진다."라고." 한다. 유령의 정체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타르반데라는 부인일 거라고 얘기되고 있다. 타르반데는 18세기 후반에 이 건물에서 여자 기숙학교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그녀가 20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굳이 한밤중에 복도를 걷고 있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불투명하다.
하기야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유령이 나오는 여관의 본관에 묵지는 못했다. 객실이 네 개밖에 없는 본관이 전부 찼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여관의 젊은 주인인 월터 버튼 씨는(소개가 늦어졌는데, 이 여관의 이름은 '스워드 게이트 인'이다) 나를 별채에 묵게 해 주었다.. 별채는 이웃집 정원을 지나 안쪽에 있는데, 전용 풀이 딸려 있는 호화로운 큰 건물이었다.
월터씨는 나를 안내하면서 "이웃집이지만 지나다니는 걸 염려하시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잠깐만요"하고 내가 끼어들었다.
"웨스트 모어랜드라면 ......베트남 전쟁에서 총사령관을 지낸 웨스트 모어랜드 말입니까?"
"맞아요"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장군의 집 정원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지고 돌아온 듯한 장식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타르반데 유령보다는 인도차이나 땅에서 쓰러져 간 몇 십만, 몇 백만의 사람들의 피가 훨씬 리얼했지만, 이 우아한 찰스턴에서 그런 말을 해봤자 풍류 없단 소리나 들을 것이다. 게다가 여관의 젊은 주인은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이번 주말에 친구들과 대형 요트를 타고 가까운 섬에 가서 수영도 하고 바비큐 파티도 할 예정인데 같이 가지 않겠냐며 나를 초대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일정 관계로 그들과 동행할 순 없었지만, 딱히 섬까지 가지 않고 이 거리에서 느긋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마도 이 고장 사람들은-이 기품 있는 조용하고 깔끔한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인도차이나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결국 그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밤 열 시 반에 달빛이 비치는 웨스트 모어랜드 장군 일가의 정원 끝의 풀에서 헤엄을 치면서 말이다.
찰스턴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청나게 많은 레스토랑이 있는데다가 맛의 수준도 미국 치고는 월등히 높아서 실망시키는 일이 별로 없다.
나는 퀸 거리에 있는 '푸건즈 포치'라는 남부풍 시프드 레스토랑이 마음에 들어 그곳에서 몇 번이나 저녁밥을 먹었다. 황당무계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냉방이 잘 되지 않았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공기를 휘젓고, 그 아래에서 우리는 디프 프라이드 캣피시(메기 말이다)를 먹었다. 메기는 제법 맛있는 물고기다. 보리멸의 맛과도 비슷하지만, 보리멸보다는 약간 진한 느낌이 든다. 암게를 사용해서 만든 수프와 도넛 버터 파이는 이 가게의 자랑거리고 이 두 가지는 확실히 일품이다. 이 세 가지 외에 머시룸 서테와 슈림프 크레올과 샐러드와 커피가 딸려 나오면서 20불 남짓이니, 이 정도면 꽤 싼 거다.
이곳에서 '돌핀 사바나 풍(風)'이라는 요리도 먹었다. 가다랭이와 게르치를 뒤섞어 고급스럽게 만든 듯한 맛이 났다. 약간 오도독거려 꽤 맛이 괜찮았지만, 이것은 진짜 돌고래는 아니고 아마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만새기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미국에서 돌고래를 먹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푸건즈 포치'의 넘쳐흐를 정도로 양이 많은 정식을 배에 꾹꾹 눌러 담고 나는 애슐리 강을 향해 처치 거리를 걸었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모양의 달이 은 세공품처럼 부드러운 여름 밤하늘에 파묻혀 있었다. 나는 강가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포도주의 취기를 씻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각별히 이렇다 할만한 이유도 없이 백일홍 옆에 앉아 있다. 마치 예약 등록을 끝마친 말없는 유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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