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에서 자유업을 공연히 화려한 직종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성인 남자가 대낮부터 빈둥빈둥 놀고 있어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나처럼 대도시를 벗어나-도심지의 집세가 너무 비싼 데 질려서-교외의 중소 도시를 전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나름대로 고충이 많은 직업이 자유업이다.
우선 첫째로 다른 사람들이 '자유업'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싫은 것은 보너스 시즌의 은행이다. 정말 싫다싫다 해도 이것처럼 싫은 건 없을 것이다. 창구의 업무가 끝나기를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은행 직원이 다가와선 "보너스를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셨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런 걸 결정할 턱이 없으니까 "정하지 않았는데요."라고 대답하면, "그러시면 우선 이 정기 예금을 드시고 이러쿵저러쿵" 하고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저, 보너스가 없는데요."라고 하면 상대방은 하나같이 '네에?' 하는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마치 비로 인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폐가를 바라보는 눈초리다.
그 선에서 "그럼, 실례했습니다."하고 물러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그것으로 별상관이 없다. 그러나 반 정도는 물러나지 않는다. 대개 내가 은행에 가는 것은 아침 아홉 시나 열 시쯤으로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서 상대방 역시 한가한 것이다.
대체로 "저,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하고 말을 걸어온다.
내가 "자유업입니다."하고 말하면 은행 직원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목수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야 뭐 조깅 팬츠에 고무 샌들, 선글라스 차림으로 은행에 가는 나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업->목수라는 극단적인 발상을 할 것까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애당초 목수가 자유업이란 말인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음, 문필업인데요" 하면, "아아, 그렇습니까. 토지를 분필하는 일을 하시는군요." 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것도 잘 이해가 안 간다. 확실히 은행원다운 발상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분필업'이란 직종 자체가 세상에 있기는 한 걸까? 직종별 전화번호부를 찾아봤지만 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다. '분필업'도 없고, '문궤업(역주: 분필업과 함께 일본어의 음은 '분피스교'로 같다)'도 없다. '분피스교'라고 하면 필연적으로 '문필업'이다.
그리고 귀찮아서 "저술업입니다"라고 고쳐 말하면, 그제야 상대방도 대충 알아듣는다. "나오키 상이라도 타시게 되면 우리 은행에 몽땅 예금해 주십시오, 하하하"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일까? 아마 친절하게 격려를 하려는 뜻이겠지만, 이쪽으로선 누가 예금 따윌 한대? 하는 기분이 된다.
그렇지만 이 정도도 아직은 나은 편이다. 심한 경우에는 "저술업입니다."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아아, 그러십니까? 저술업이십니까?"라고 하기에 겨우 뜻이 통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럼 졸업한 다음에 보너스를 타시면 그때는 꼭 저희 은행에..."라고 말해서 사람을 이만저만 실망시키는 게 아니다. 서른여섯 살이나 먹은 남자를 붙잡아 놓고 졸업이니 뭐니 할말이 아니지 않나하고 생각하지만, 뭐 은행에는 은행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있고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이 있나 보다. 난 잘 모르겠다. 어쨌건 보너스 시즌에는 되도록 은행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기분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같은 은행에 2~3년이나 다니다 보면 얼굴이 익혀서 보너스 시즌이 되어도 '저 작자는 별 볼일 없으니까' 하고 아무도 접근해 오지 않게 된다. 참고 견디면 복이 온다더니, 반복이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작년까지 3년 동안 다녔던 교와 은행 기타 나라시노 지점 사람이 내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사내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은행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하기야 나는 이사광이기 때문에 자주 이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각지의 은행에서 "저, 실례지만 직업은?" 하는 질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들어야 한다. 정말이지 피곤한 노릇이다.
교외의 전원도시란 사실 샐러리맨의 소굴 같은 곳이다. 아침 아홉 시가 지나면 성인 남자라고는 집배원 아저씨나 채소 가게 아저씨 말고는 전혀 볼 수가 없다. 이곳에는 아줌마들과 어린아이들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교외의 전원 도시 같은) 곳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 오락실에 들어가거나 냄비를 들고 두부를 사러 가거나 하니, 이웃에서도 별로 곱지 않은 눈으로 본다.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다보면 바겐세일을 하는 생리용품을 대형 상자로 잔뜩 사고 카운터에 서 있는 아줌마들 틈에 끼여, '이건 또 뭐야, 싫다 싫
어. 대낮부터 왜 이런 데 남자가 있는 거야' 하는 느낌의 눈 흘김을 당하기가 일쑤다.
자유업이란 것도 여러 가지로 괴로운 점이 많은 직업이다. 그래도 꼭 자유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쿄의 미나토구 근처에서 살면, 아무 눈치도 볼 필요 없고 내 멋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 즐겁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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