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높은 곳이라면 딱 질색이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아마 죽을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에 가면 허리께가 찡한 게 더 이상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런 나에 비하면 아내는 높은 곳을 밥보다 좋아해서 함께 여행을 가기라도 하면 반드시 높은 곳에 올라가 깡총깡총 뛰기도 하고 한 발로 서 있기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런 행동을 나로선 이해할 수 없다. 단순히 남이 싫어하는 짓을 굳이 하려 드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은 곳이라고 해서 어디든 다 무서워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같은 높이라도 산이라든가 절벽같이 자연적으로 생긴 높은 곳은 빌딩이라든가 탑 따위의 위에 비하면 그다지-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무섭지 않다. 제일 무서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그렇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높은 곳이다.
내 책의 표지 그림을 자주 그려 주시는 사사키 마키 씨의 집도 고층 아파트의 9층인가 10층인데, 나는 그 곳에 가는 게 굉장히 겁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뻥 뚫린 바깥 계단을 한 층 내려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안쪽 벽에 찰싹 달라붙어 한발 한발 계단을 내려가고 있으면 매번 담당 여성 편집자가 "무라카미 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라며 눈을 흘긴다. 옆에서 보면 분명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거야?'겠지만, 어쨌거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공포의 질을 설명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긴 나 역시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그런 유의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어이, 저것 봐. 전기톱에 손목이 날아갔어." 하고 놀려대니까 남의 말을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가장 겁났던 곳은 빈에 있는 성 슈테판 사원 위였다. 그때도 나는 전혀 그런 곳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아내가 "어때요, 무섭지 않아요. 올라가 보자구요. 사람이라면 한걸음 한걸음 진보해야 돼요" 하며 끈질기게 설득하길래. '그럼 어디 한번' 하는 생각으로 그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말았다. 퀼른 대성당에 올라갔을 때는 계단이었기 때문에 도중에 겁이 나서 도로 내려왔지만, 엘리베이터는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그 곳은 바람이 휑휑 부는 깎아지른 듯한 지붕 위였다. 더욱이 한번 아래로 내려간 엘리베이터는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지는 올라오지 않았다. 물론 지붕을 따라 철조망으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기는 했어도, 나로서는 그런 울타리 따위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얼어붙을 듯한 겨울바람이 쌩쌩 불어와서 도무지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무서움을 느껴야 하는 거라면 인간은 진보 같은 거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공포도 하나의 재산이다.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훌륭하고, 느끼면 바보라고 단편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에는 꽤 무서운 곳이 많다. 특히 퀼른 대성당은 하늘에 닿을 듯이 뾰족하게 치솟아 있으므로 실제로 꼭대기에 올라가 보면 어중간한 고층 빌딩의 옥상 같은 데보다 훨씬 스릴이 있을 뿐더러 공포의 질도 높다. 비교 문화론을 펴려는 건 아니지만, 성 슈테판 사원 지붕 꼭대기에서 느끼는 고소 공포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느끼는 고소 공포와는 상당한 질적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도 고소 공포증이 없는 사람에게는 필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럴 시간만 있다면 전 세계의 이런 저런 높은 곳을 둘러보고 <고소 공포의 시점에서 본 고소 문화론>같은 걸 써보고 싶을 정도다. 이런 글은 단연코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따금 어째서 세상에는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도무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아기에 높은 곳에 올라가 무서워했던 기억이 없고, 그렇다고 고소 공포증이 혈통적으로 유전된 것 같지도 않다. 또 '억압된 심적 트러블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딱히 짚이는 데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떤 경위로 고소 공포증이라는 병에 말려들게 되었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이제 '공포의 선택이란 무작위적인 것이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즉 인간은 한두 가지 정도는 이른바 정신의 보호막으로서 공포가 필요하고, 결국 그 대상은 무엇이든 괜찮다는 얘기다. 나의 경우는 그것이 우연찮게 고소 공포증이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폐소 공포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첨단 공포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암흑 공포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레이더스>에 나오는 저 유명한 인디애나 존스도 뱀한테는 꼼짝을 못하지 않았나? 요컨대 공포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요인이고, 그것이 불합리하면 불합리할수록 그 유효성은 커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주의 암흑 속에 두둥실 떠 있는 바위 덩어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불안정한 생을 보내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는 상황 쪽이 나로서는 더없는 공포다.
피사의 사탑도 3층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건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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