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게링은 베를린 언덕을 파내 거대한 요새를 구축하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는 문자 그대로 언덕을 통째로 파내어, 그 내부를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발라 버렸던 것이다. 그건 흡사 불길한 흰개미의 탑처럼 황혼의 엷은 어둠 속에 선명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급한 사면을 기어 올라가 요새의 정상에 서면, 우리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동베를린 시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가 있었다. 팔방으로 구축된 포대(포대)는 수도를 향해 다가오는 적군의 모습을 포착해 그걸 격파할 수 있을 터였다. 어떤 폭격기도 그 요새의 두꺼운 장갑(裝甲)을 파괴할 수 없고 어떤 전차도 그곳에 올라올 수 없을 터였다.
요새 안에는 2,000명의 SS 전투부대가 몇 달이라도 굳게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식료품과 음료수와 탄약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비밀 지하도로가 미로처럼 뚫려 있고 거대한 에어컨디셔너가 신선한 공기를 요새 안으로 공급하고 있었다. 비록 러시아군 영미군이 수도를 포위해도 우리는 질 리 없다고, 헤르만 게링은 호언했다. 우리는 난공불락의 요새 안에서 산다고.
그러나 1945년 봄, 러시아군이 계절의 마지막 눈보라 같은 모습으로 베를린 시가에 돌입했을 때, 헤르만 게링 요새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지하도로를 화염방사기로 태우고 고성능 폭약을 설치해 요새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요새는 소멸되지 않았다. 콘크리트 벽에 금이 갔을 뿐이다.
"러시아인의 폭탄으로 헤르만 게링 요새를 무너뜨릴 수는 없지요."라고 그 동독 청년은 웃으면서 말했다.
"러시안인이 부술 수 있는 건 스탈린의 동상 정도죠."
그는 동베를린 시가를 몇 시간이나 들여 빙빙 돌면서 1945년 베를린 전투의 흔적을 하나하나 나에게 보여 주었다. 어떤 이유에서 내가 베를린 전적지에 흥미를 갖고 있을 거라고 그가 생각했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로 열심이었고 새삼스레 내 희망을 설명하기도 이상한 상황이라, 그가 끄는 대로 나는 오후 내내 시가를 돌았다. 그는 나와 그 날 점심 때 텔레비젼 탑 근처의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안내는 실로 솜씨 있고 요령이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 동베를린의 전적지를 찾아 걸으니 점점, 마치 불과 수개월 전에 전쟁이 막 끝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 시가에 탄흔이 잔뜩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자, 보세요."라고 그는 말하며 그러한 탄흔 하나를 내게 보여 준다.
"러시아군과 독일군의 탄환은 금방 구별할 수 있어요. 마치 벽을 깨부술 듯이 도려낸 것이 독일군 탄환이고, 쑥 박혀 있는 게 러시아군거예요, 정말이지 질이 달라요." 그는 요 며칠 사이에 내가 만난 동베를린 시민 중 가장 알기 쉬운 영어를 구사한다.
"매우 완벽한 영어를 쓰는 군요."라고 나는 칭찬했다.
"잠시 선원 생활을 했기 때문이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쿠바에도 갔었고, 아프리카에도 갔었죠. 흑해에도 오래 있었고요. 그래서 영어를 익히게 되었어요. 지금은 건축기사 일을 하고 있지만요."
헤르만 게링 요새의 언덕을 내려와, 다시 잠시 밤거리를 걷고 나서 우리는 운터덴린덴 거리에 있는 낡은 맥주홀로 들어간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맥주홀은 몹시 붐비고 있다.
"여긴 닭이 명물이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나는 쌀을 묻힌 닭 요리와 맥주를 주문한다. 확실히 닭은 나쁘지 않고 맥주도 맛이 좋다. 실내는 따뜻했고, 기분 좋을 정도로 들뜬 분위기였다.
우리 테이블의 웨이트리스는 킴 칸즈를 매우 닮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밝은 금발에 파란 눈이고 몸이 꽉 짜여 있으며, 웃는 얼굴이 귀엽다. 그녀는 마치 거대한 페니스를 찬양하는 따스한 모습으로 맥주 조끼를 끌어안아 우리 테이블로 가져온다. 그녀는 나에게 도쿄에서 내가 알았던 한 여성을 생각나게 한다. 얼굴이 별로 닮은 것도 아니고 어디가 닮은 것도 아닌데, 그 둘은 어딘가에서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헤르만 게링 요새의 잔상이 그녀들을 미궁의 어둠 속에서 맞스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상당한 양의 맥주를 마시고 있다. 시계는 10시 가까이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밤 12기까지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의 S번 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나의 동베를린 체재 비자는 12시로 끝나 버리는데, 그걸 1분이라도 어기면 굉장히 귀찮은 꼴을 당하게 된다.
"시 교외에 대단히 심한 전투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나는 멍하니 웨이트리스를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청년의 말을 듣지 못했다.
"익스큐즈 미?" 그는 반복한다.
"SS와 러시아군 전차가 정면으로 맞닥뜨렸는데 말이죠. 이게 사실상 베를린 전투의 고비가 되었지요. 철도 조차장 터인데요. 그게 지금도 그냥 그대로 남아 있어요. 전차의 부서진 부품들 따위를 볼 수 있죠. 친구 차를 빌려서 지금이라도 갈 수 있는데요."
나는 청년의 얼굴을 본다. 그는 홀쭉한 얼굴로 회색 코르덴 윗도리를 입고 양 손을 테이블 위해 평평하게 올려놓고 있다. 그의 손가락은 길고 반들반들해서 선원의 손가락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머리를 젓는다.
"12시까지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 역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돼요. 비자는 끝나기 때문에."
"내일은 어때요?"
"내일 점심 전에 뉘른베르크로 출발해요."라고 나는 거짓말을 한다. 청년은 조금 실망한 모습이었다. 지쳤다는 빛이 그의 표정에서 슬쩍 지나간다.
"내일이면 내 여자 친구와 그녀의 여자 친구가 같이 갈 수 있을 텐데요."라고 그는 변명하듯이 말한다.
"유감스럽지만."하고 나는 말한다. 미적지근한 손이 내 몸 속의 신경 다발을 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도대체 어찌해야 좋을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기묘한 탄흔투성이의 시가 한복판에서 완전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래도 마침내 그 미적지근한 손은 썰물이 빠지듯 천천히 내 체내에서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헤르만 게링 요새는 굉장했지요?"라고 청년은 말하고 조용히 미소 짓는다.
"40년이나 걸렸어도 아무도 그걸 부술 수 없었던 거죠.“
운터덴린덴과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의 교차점에 서면 여러 가지를 시원히 볼 수 있다.
북쪽에 S번 역. 남쪽에 체크포인트 찰리, 서쪽에 브란덴부르크 문, 동쪽에 텔레비젼 탑.
"괜찮아요."라고 청년은 나를 향해 말한다.
"여기서부터라면 천천히 걸어도 15분만 있으면 S번 역에 도착할 수 있어요. 괜찮겠죠?" 내 팔목시계는 1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괜찮아요."라고 나는 내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말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악수한다.
"조차장에 안내하지 못해 유감이군요. 그리고 여자 건두요."
"그래요."라고 나도 말한다. 그런데 도대체 그에게 있어 뭐가 유감이란 말인가.
나는 혼자서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의 북쪽을 향해 걸으며, 1945년 봄에 헤르만 게링이 뭘 생각하고 있었을까를 상상해 본다. 그렇지만 1945년 봄에 천년 왕국의 제국 원수가 뭘 생각하고 있었나 하는 따위는, 결국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사랑한 아름다운 하인켈 117폭격기 편대는 마치 전쟁 그 자체의 사체처럼, 우크라이나의 황야에 몇백이나 되는 백골을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