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은 이미 많은 부분을 상실하고 말았지만, 그것은 한 부분이 끝났을 따름이며,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을 거라구요. 몇 년 전에, 필명을 사용해 조그마한 미술 잡지의 화랑 탐방 비슷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화랑 탐방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어서 특별히 전문적인 기사를 쓴 건 아니었고, 화랑의 분위기며, 그 화랑 주인의 인상을 가벼운 터치로 기술하는 정도의 기사였다.
유달리 의욕적으로 덤벼들었던 것이 아니라 하찮은 관계로 해서 공교롭게 손댄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퍽이나 재미난 작업이 되었다. 나 자신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사로 정리하는 작업은 문장을 배우는 데 매우 좋은 공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떤 식의 말로 표현하는가 하는 것을 나는 되도록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것을 잘 익혀서 나 자신의 문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연재 기사는 1년간 계속되었다. 잡지는 격월 발매이므로, 전부 해서 6회가 되는 셈이었다. 편집부-편집부 라지만, 편집자 하나밖엔 없었다-로부터 재미있을만한 화랑 몇 군덴가 소개받아, 내 발로 직접 다녀 보고, 그 중 하나를 골라 기사화 하는 것이었다.
400자 원고지 15장 정도의 기사였지만, 나 자신이 어설프고 붙임성이 없는 성격이어서 처음 얼마 동안의 작업은 난항을 거듭했다. 도대체 상대방에게 무엇을 묻고, 어떻게 뭉뚱그려 놓으면 좋을지 통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대로 몇 번인가 회를 거듭하고, 자잘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던 중에, 나는 거기에서 하나의 '비결'같은 것을 발견했다.
취재자는 인터뷰하는 상대방 안에 남달리 출중하게 숭고한 그 무엇이거나, 예민한 그 무엇이거나, 따스한 그 무엇인가를 더듬어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점이라도 상관없다. 인간 하나하나 속에는 반드시 그 사람됨의 중심을 이루는 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더듬어 찾아내는 일에 성공한다면, 질문은 저절로 나오며, 따라서 생생한 기사를 쓸 수 있다. 아무리 진부하게 들릴지언정, 제일 중요한 점은 애정과 이해, 그것이다. 나는 그 이래로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상대방에 대해 마지막까지 한 조각의 애정도 품을 수 없었던 예는 단 한번밖에 없었다. 그것은 주간지에 대학 탐방 기사를 쓰기 위해 어느 유명한 사립대학을 취재했을 때다. 일주일 가까이 그 대학을 돌아다녔지만, 어디에서나 권위와 부패와 불성실의 냄새밖에 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끝난 일이다. 평화로운 화랑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내가 취재 다닌 화랑의 대부분은 권위와는 무관한 조그마한 거리의 화랑이었다. 나이가 서너 살 위인, 키 큰 카메라맨과 둘이서 화랑으로 찾아가, 내가 화랑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에 카메라맨은 실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단 취재가 끝나면 나는 언제나 화랑 주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가지 했다. 이제껏 직접 본 그림들 중에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 하는 질문이었다. 이건 인터뷰 질문으로서 그다지 고급 종류의 것은 아니다. 소설가에게, 이제까지 읽었던 소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어떤 것인가 하고 묻는 것과 같아서, 너무나도 질문의 내용이 막연하단 말이다.
"그런 게 잔뜩 이어서 알 수 없구려." 그런 대꾸를 듣거나, 아니면 몇 번이나 되풀이되어 진부해져 버린 대사가 돌아올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되풀이했다. 그 이유는 첫째, 미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는 건 취재 그 나름의 요체라고 여겼기 때문이며, 다음으로는 잘만 맞추면 어떤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택시 탄 남자>라는 제목의 그림 이야기를 해준 것은 마흔살 안팎의 여자였다. 그녀는 결코 미인이랄 수는 없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온화하고 품위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커다란 리본이 달린 흰 블라우스에 회색 트위드 스커트를 받쳐 입고 , 검은 색의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발이 불편한 그녀가 마룻바닥을 바로 질러 걷자 고르지 못한 발소리가 텅 빈 실내에 쐐기 박는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녀는 아오야마 빌딩의 1층에서 판화를 중심으로 하는 화랑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때 벽에 장식되어 있던 판화는 나 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우수한 작품은 아닌 듯했으나, 그녀의 인품 속에는 남의 시선을 끄는 일종의 자석 같은 것이 잠재해 있어서, 그 기묘한 힘이 그녀를 둘러싼 갖가지 사물을 실제 이상으로 빛나 보이게 하는 것처럼 느꼈다.
취재가 끝나자 그녀는 커피 잔을 치우고, 찬장에서 붉은 포도주병과 잔을 꺼내어, 나와 카메라맨에게 건네고 자기 잔에도 따랐다. 그녀의 손가락은 아주 가느다랗고 섬세했다. 안쪽 방에는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트렌치 바바리 코트가 회색 캐시미어 머플러와 함께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사무용 책상 위에는 오리 문양의 문진과 조그만 금빛 가위가 놓여 있었다. 그때는 12월 초순이라, 천장에 설치된 소형 모니터 스피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작게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마룻바닥을 가로질러, 어디선가 담배 상자를 가지고 되돌아왔다. 그리고 가늘고 길다란 금빛 라이터로 불을 붙여, 연기를 입술에서 가늘게 뱉어 냈다. 구두 소리를 빼면 그녀의 몸놀림에는 부자연스런 부분이라곤 통 찾아볼 수가 없었다.
"끝으로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만약 괜찮으시다면."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이지요,"하고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투, 어째 텔레비전 형사물 비슷하잖아요?" 나도 웃었다. 카메라맨도 웃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보셨던 그림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어떤 그림이었습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얼마동안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재떨이에다 담배를 끄고 내 얼굴을 보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충격적'이란 말의 의미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격적'이라는 건 뭐냐 하면요, 그건 예술적 감동이랄까, 아니 좀 더 소박하게 말하자면 놀라움이라고나 할까요."
"예술적 감동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의미하는 건 좀더 피부에 와 닿는 생리적인 충격 말이지요,"
"피부에 와 닿는 감동 없이는 우리들의 직업은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런 건 얼마든지 주위에 뒹굴고 있어요. 모자라는 건 오히려 예술적 감동 쪽 아니겠어요."하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잔을 집어들어, 와인으로 입을 축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요, 아무도 진정으로 감동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에요. 안 그런가요? 선생님께서도 글을 쓰고 계시면서, 그렇게 안 느끼세요?"
"그럴지도 모르지요,"하고 나는 대답했다.
"예술적 감동의 불편한 점은, 그걸 제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혹 표현했다 하더라도, 판에 박힌 것이 되고 말지요. 판에 박힌 여전한 구식, 상투적인 진부함... 마치 공룡처럼 말예요. 그래서 다들 좀 더 간결하고 간편한 것을 찾는답니다. 자신의 표현이 파고들 여지가 있는 것이나, 텔레비전의 리모트 컨트롤처럼 척척 채널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걸 말이죠. 피부에 와 닿는 충격, 감성...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요." 그녀는 다 마셔 비어 있는 세 개의 포도주 잔에 다시 와인을 따르고,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죠?"
"아니요, 퍽 재미있습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에어컨디셔너의 우르릉거리는 희미한 소리와 가습기의 배기음과 크리스마스 캐롤이 나지막이 섞여 기묘하게 단조로운 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만일 예술적 감동도 아니고, 피부에 와 닿는 충격이 아닌 것이라도 괜찮다면, 제 마음에 남아 있는 한 장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어요. 한 장의 그림에 얽힌 이야기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거라도 괜찮을는지요?"
"물론 좋습니다."
"1968년의 일입니다."하고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애당초 화가가 될 작정으로 미국 동부의 미술 대학에 유학했었는데, 졸업 후에도 그대로 뉴욕에 남아서 자활하기 위해-혹은 제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지만-그림바이어 비슷한 일을 시작했었지요. 말하자면 뉴욕에 있는 젊은 무명화가의 아틀리에를 돌면서 소질이 돋보이는 작품을 찾아내어, 그걸 사들여 도쿄의 화상에게 보내는 일이었지요. 처음 얼마 동안은 제가 컬러의 네가를 보내면, 도쿄의 스폰서가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그걸 제가 현지에서 사들이는 시스템이었는데, 점차 신용을 얻어서 저의 재량만으로 직접 그림을 살 수 있게 됐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화가들 세계에 상당히 확실한 정보망이랄까, 소식통 같은 걸 갖고 있었지요. 덕분에 누가 재미난 걸하고 있다는 등, 누가 돈에 쪼들리고 있다는 둥 하는 정보가 전부 저의 귀에 들어왔죠. 1968년의 그리니치 빌리지라는 거, 그야말로 대단했다구요, 그 즈음의 일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네?“
"대학생이었습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아시겠네요." 그녀는 혼자서 수긍했다.
"...거기엔 모든 것이 있었지요. 진짜 모든 것 말예요. 제일 위로부터 제일 아래까지 말예요. 잡것이 섞이지 않은 진짜부터 백 퍼센트 가짜까지.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시절의 빌리지는 마치 보물섬 같은 거였답니다. 확실한 감식안만 가졌다면, 다른 시대의 다른 장소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멋진 사람들이랑, 힘있고 참신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사실 말이지, 제가 그 당시 도쿄로 보낸 작품의 대부분은 지금 상당한 값이 붙어 있지요. 그 중 몇 개만이라도 제 자신을 위해 챙겨 두었더라면, 저도 지금 '소'재벌쯤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그 시절엔 진짜 가진 돈이 없었거든요. ...유감이지 뭐예요." 그녀는 무릎 위에 놓았던 양쪽 손바닥을 위로 벌려 보이고는,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 당시 한 장, 딱 한 장, 예외적으로 제 자신을 위해 사놓은 그림이 있었답니다. '택시를 탄 남자'라는 게 그 그림의 제목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예술적으로 우수한 것도 아니었고, 기법 상으로 우수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거친 대로 재능의 싹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답니다. 작가는 무명의 망명 체코슬로바키아 화가로, 무명인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물론 비싼 값도 불을 리 없지 않아요? ...어때요, 이상하죠? 타인을 위해서는 값나가는 그림만 잔뜩 고르고, 저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장의 전혀 값어치 없는 그림이라니요. ...하지만 결국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렸다.
"제가 그 화가의 아파트로 간 건 1968년 9월의 오후였지요. 비가 막 개고, 마치 뉴욕 전체를 통째로 찌는 것 같은 날씨였지요. 그 화가의 이름은 이제 잊어버렸어요. 아시다시피 동유럽계 사람들의 이름이란 미국식으로 고치지 않으면 굉장히 기억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를 소개 해 준 건 저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던 독일인 화학도였습니다. 그가 저의 방문을 노크하고 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이것 봐 도시코, 내가 아는 사람으로 아주 돈이 궁한 환쟁이가 있단다. 만일 괜찮다면 내일이라도 잠깐 들러서 그림을 보아주지 않겠니?' 그래서 전 '오케이'하고 말했지요. '그래, 그 사람 재능은 있어?'하고 제가 물으니까 '아마, 별로 없나봐, 하지만 착한 녀석이야.', 그랬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그 체코인의 아파트로 갔었습니다. 그 다아시의 빌리지엔 그런 데가 있었습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조금씩 서로가 어깨를 다가붙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데가 말이죠."
그녀는 그 체코인이 살고 있는 지독하게 지저분한 아파트 방에서 20장 가량의 그림을 보았다. 체코인은 스물 일곱 살로, 3년 전에 국경을 넘어서 망명해 온 참이었다. 그는 빈에서 일 년을 산 후, 그 다음에 뉴욕으로 왔다. 프라하에 아내와 어린 딸을 남겨 놓고 왔다고 했다. 그는 낮 동안에는 아파트에서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근처의 터키 요리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체코엔 표현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으나, 우선 당장 그에게 필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 이전의 것이었다. 독일인 화학도가 말했던 것처럼 그에겐 재능이라는 것이 부족했다. 프라하에 머물러 있을 걸 그랬네요, 하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체코인의 그림은 기술적으로는 부분 부분 볼 만한 것이 있었다. 특히 색채 용법에는 괄목할 만한 데가 있었다. 근사한 터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프로의 눈으로 보면, 그의 그림은 거기서 완전히 정지되어 있었다. 의식의 확산이랄 것이 없었단 말이다. 마찬가지로 정지해 있더라고, 그것은 예술적 '막바지'까지에도 도달해 있지 못했다. 그저 그런 '한계점'이었다. 그것뿐(댓츠 올).
그녀는 독일인 화학도 쪽을 흘깃 보았다. 그의 표정이 무언중에 말하는 결론도 그녀와 같았다. 그것뿐(디스 이스트 알레스). 체코인만이 멍청하고 불안한 듯한 눈으로 그녀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체코인의 아파트에서 나오려 했을 때, 문 옆에 놓여 있던 한 장의 그림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20인치의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의 옆으로 긴 그림이 있었다. 다른 그림과 같이, 그 그림 속에는 무엇인가 숨 쉬고 있었다. 대단한 건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그 무엇인가였다. 가만히 응시하고 있노라면, 점점 졸아들어 사라지고 말 것만 같은 정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확실히 그림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그녀는 체코인에게 부탁해서 다른 그림들을 전부 옆으로 치워 벽에다 순백의 스페이스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그 그림을 세우게 한 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건 제가 뉴욕에 와서 맨 처음 그린 그림입니다."하고 체코인은 안절부절못하는 듯 빠르게 말했다.
"뉴욕에 온 맨 첫날 밤, 타임즈 스퀘어의 모퉁이에서 서서, 몇 시간이나 길거리를 바라보았지요. 그리고 방으로 되돌아와 하룻밤만에 그린 겁니다." 그것은 택시의 뒷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의 그림이었다. 카메라로 말하자면, 렌즈가 앞자리의 한복판에서 약간 넓게 남자의 모습을 포착했다.
남자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창 밖으로 눈길을 주고 있었다. 핸섬한 남자였다. 야회복에 흰 정장 셔츠, 검정 나비 넥타이, 그리고 하얀 스카프. 얼핏 지골로 같기는 하지만, 지골로는 아니다. 지골로가 되기엔 그에겐 무엇인가 부족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집약된 굶주림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에게 굶주림이 없다는 건 아니다. 굶주림이 없는 젊은 남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다만 그 속의 굶주림은 너무나도 막연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주위에서 보면-혹은 그의 눈으로 보더라도-그것은 무슨 별개의 발전 도상에 있는 일종의 '사물의 견해'처럼 여겨진단 말이다.
그것은 마치 푸른 안개 같기도 하다. 존재하고 있다는 건 알겠으나 포착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그 푸른 안개처럼, 밤이 택시를 뒤쫓고 있다. 차의 뒤편 유리창으로, 그 밤의 색깔이 보인다. 밤의 색깔밖에 보이지 않는다. 푸른 색깔 속에 검정과 보라가 주입된다. 제법 멋진 색깔이다. 듀크 에린튼 오케스트라의 음색처럼, 세련되고 중후하다. 거기에 손을 대기만 해도, 다섯 손가락이 몽땅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중후하다. 남자는 옆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창문 유리 저편에 무엇이 보이건 간에, 그 풍경은 그의 마음에 찰과상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차는 계속 움직이고 있다.
남자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
남자는 어디로 돌아가려 하고 있는가?
그림은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자는 택시라는 한정된 틀 속에 포함되어 있다. 택시는 이동이라는 그 본래적인 원칙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이동한다. 어디로 가건 어디로 돌아가건, 어느 쪽이면 어떠냐 말이다. 어디든 좋단 말이다. 그것은 광대한 벽에 열려진 어두운 구멍이다. 그것은 입구고, 출구다. 이를테면 남자는 그 어둠을 보고 있다. 남자의 입술은 메말라 있고, 담배를 애타게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담배는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다. 광대뼈가 불거져 있다. 턱의 살은 빠져 있다. 아주 심하게 빠져 있다. 거기에, 마치 생채기처럼 가느다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소리 없는 전투가 남기고 간 그늘이다. 하얀 스카프가 그 생채기의 끝머리를 덮고 있다.
"결국 저는 제 자신을 위해 120달러를 내고 그 그림을 샀습니다. 120달러는 한 장의 그림 값으로선 그다지 비싼 것은 아닙니다만, 당시의 저로선 좀 호된 부담이었지요. 저는 그때 임신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실직 상태였습니다. 그는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의 배우였는데, 직업이 있었다 해도, 대수롭지 않은 수입이었죠. 그래서 생활비의 대부분은 제가 벌어들였지요.“
그녀는 거기서 이야기를 중단하고, 옛날을 회상하듯 와인을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가 보군요?"하고 나는 물어 보았다.
"그림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림 그 자체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아마추어에 털이 돋은 정도의 것이죠. 나쁘지는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어요. 제 마음에 든 건, 거기에 그려진 젊은 남자였습니다. 저는 그 남자를 보기 위해 그 그림을 샀던 겁니다. 그것뿐이죠. 체코인은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로선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테지요. 제가 그 그림을 산, 진정한 이유 같은 건 말이죠.“
크리스마스 캐롤 테이프가 거기서 끝나고,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깊은 침묵이 왔다. 그녀는 트위드 스커트 위에서 손가락을 포개었다.
"저는 그때 스물아홉 살이었지요. 진부한 표현입니다만, 저의 청춘은 끝나려 하고 있었지요. 저는 화가가 되려고 미국에 와서, 결국 화가는 되지 못했죠. 저의 재능이 자신의 안목만큼 훌륭하진 못했으니까요. 저의 재능으로는 그 무엇도 창조해 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그림의 남자는... 어쩐지 제 자신이 상실하고 만 인생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졌던 겁니다. 저는 그 그림을 아파트의 방 벽에 걸어 놓고, 매일매일 바라보며 지냈어요. 그 그림의 남자를 볼 때마다, 저는 제가 상실한 것이 얼마나 컸던가를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혹은 그것이 얼마나 작았던가를 말이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남편은 곧잘 저를 보고 '당신은 그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나 보군."하고 놀려댔지요. 제가 언제나 그 그림을 말없이 바라보곤 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그는 잘못 생각한 거예요. 제가 그 남자에게 품고 있던 감정은 이를테면 '심퍼시(sympathy)'같은 겁니다. 제가 말하는 '심퍼시'는 '동정'도 '공감'도 아닌, 두 인간이 어떤 종류의 '슬픔'을 나눠 가지는 그런 것이죠. 아시겠어요?"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 <택시를 탄 남자>를 바라보았던 탓에, 그는 어느 틈엔가 제게 있어서 분신 같은 존재가 되었어요. 그는 제 심정을 이해했던 거예요. 저 역시 그의 심정을 이해했고요. 저는 그의 슬픔을 이해했어요. 그는 '범용'이라는 이름의 택시 속에 갇혀 있었던 거죠. 그는 거기서부터 빠져 나올 수가 없었던 거예요. 영원히 말이죠. 진정한 영원 말입니다. 범용함이 그를 거기에 있게 하고, 그리고 범용한 배경의 우리 속에 가두었던 거지요. 슬픈 일이라고 생각지 않으시나요? 그녀는 입을 다물고, 얼마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든 그렇다는 이야기예요. 예술적인 감동이나 충격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감성이니 피부로 느끼는 충격 같은 것도 없었어요. 하지만 가장 마음에 남아 있는 그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한 장밖엔 없어요. 이 정도면 될까요?"
"한 가지만 더 질문 드리죠. 그 그림을 지금도 갖고 계신가요?"하고 나는 물었다.
"갖고 있지 않습니다. 태워 버렸으니까요."하고 그녀는 즉시 대답했다.
"언제요?"
"1971년입니다. 1971년 5월. 바로 얼마 전 일 같지만,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네요. 이런저런 사건들이 계속 겹쳐서, 저는 남편과 헤어져 일본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죠. 어린애도 내놓았지요. 자세한 것은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넘어갈게요. 그때 저는 모든 것을 버리기로 마음먹었죠. 모든 것을 말이죠. 그 땅이 저를 사로잡았던 꿈이며, 희망이며, 사랑이며, 그런 것들의 진상, 그 모든 것을 말입니다. 저는 친구에게서 소형 트럭을 빌려 짐칸에다 방안의 물건 일체를 실어 가지고 빈터로 가서, 등유를 뿌리고 불태웠답니다. <택시를 탄 남자>도 그 속에 있었지요. 감상적인 음악이 걸맞을 법한 정경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그녀가 생긋 웃었기에, 나도 미소를 지었다.
"그림을 태우는 게 아깝진 않았어요. 그것은 제 자신이 해방됨과 동시에 '그'를 해방시키는 것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는 불에 탐으로써 범용의 '우리'에서 가까스로 해방된 거지요. 저는 그를 태웠고, 그리고 저의 일부를 태웠습니다. 1971년 5월의 맑게 갠, 기분 좋은 오후였죠. 그리고서 저는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경위로 해서"하고 말한 후 그녀는 방안의 주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바로 이렇습니다. 저는 화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사업은 순조롭구요. 저한테, 그 뭐라고 할까요, 상술이라는 게 있나 봐요. 지금은 독신이지만, 별로 힘들진 않아요. 그런 대로 재미나게 살고 있답니다. 하지만 '택시를 탄 남자'의 이야기는 1971년 5월 오후의 뉴욕의 빈터에서 끝난 건 아니었어요. 이야기는 계속 있지요."
그녀는 플레이어즈 곽에서 담배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카메라맨이 기침을 했다. 나는 의자 위에서 몸의 위치를 바꾸었다. 담배 연기가 서서히 위로 피어올라 에어컨디셔너 바람에 흩어지듯 사라졌다.
"작년 여름에, 아테네 거리에서 저는 '그'를 만났던 거예요. '그'말예요. 그림 속의 '택시를 탄 남자'를 말예요. 틀림없었어요. 확실히 '그'였어요. 저는 아테네에서 택시 뒷자리에 그와 합석했던 거예요."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녀는 여행중이었고, 저녁 6시쯤에 아테네의 이집트 광장 앞에서부터 바시리시즈 소피어스 대로까지 택시를 탔던 것인데, 그 젊은 남자는 오모니어 광장 언저리에서 그녀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아테네의 택시는 행선지만 잘 맞으면 마구 손님을 합승시킨다. 남자는 홀쭉한 몸매로, 아주 핸섬했다. 그리고 여름의 아테네에선 보기 드물게도 야회복을 입고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중요한 파티장에 참석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에서 열까지 털끝 하나도, 틀림없이 뉴욕에서 그녀가 사들인 그림 속의 남자와 똑같았다. 그녀는 한순간 자신이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그릇된 시간에 그릇된 장소에 뛰어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자기 몸이 10센티미터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 속이 새하얘지고, 그것이 조금씩 제대로 돌아가기까지는 퍽 긴 시간이 걸렸다.
"안녕하세요?"하고 남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하고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일본인이시죠?"하고 남자는 깨끗한 영어로 말했다. 그녀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엔 한 번 간 적이 있습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곤 침묵의 길이를 재는 듯한 시늉으로 공중에서 손가락을 펼쳤다.
"공연 여행을 갔었죠."
"공연?"하고 그녀는 막연한 기분으로 한마디 했다.
"전 배우입니다. 그리스 국립극장의 배우입니다. 그리스의 고대극은 아시겠지요? 유리피데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컨대 그리스입니다. 낡은 극기 가장 훌륭하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고는 화제를 중단하고, 날씬한 목을 옆으로 돌려 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무도 아닌 그저 배우일 뿐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창밖으로 논을 돌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스타디오 거리는 통근차로 붐비어, 택시는 거북이 걸음으로 나가는 꼴이었지만 남자는 그런 데엔 아랑곳 않고 상점의 진열장이나 영화관의 간판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머리 속을 정리하려고 했다. 현실을 정확한 현실의 틀에 넣고, 상상을 정확한 상상의 틀 속에 넣었다. 그러나 그래도 사태는 털끝만큼도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7월 아테네 거리의 택시 안에서 그림 속의 남자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잘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그러는 중에 차는 가까스로 스타디오 거리를 지나, 신터그머 광장 옆을 빠져서, 바시리시스 소피어스 대로로 들어섰다. 택시는 이제 2~3분이면 그녀가 묵은 호텔 앞에 당도할 참이었다. 남자는 침묵한 채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 좋은 저녁 미풍이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흔들고 있었다.
"실례합니다만, 지금 어느 파티에라도 가시는 건가요?"하고 그녀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예, 물론."하고 남자는 그녀 쪽을 향해 대답했다.
"파티죠, 아주 크고 훌륭한 파티입니다. 온갖 사람들이 오고, 술잔치가 벌어지지요. 아마 새벽녘까지 계속되겠지요. 전 도중에 나올 작정입니다만."하고 남자가 말했다. 택시는 호텔의 현관에서 멈추고, 택시 기사가 문을 열었다.
"카로 택시지(즐거운 여행)"하고 남자가 그리스어로 말했다.
"애후카리스트 보리(참 고맙습니다)"하고 그녀도 그리스어로 말했다. 택시가 저녁의 도로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그녀는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엷은 어둠이 바람에 일렁이는 장막처럼 도시 위를 헤매듯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호텔의 바에 앉아 워트카 토닉을 석 잔 마셨다. 바 안은 조용하기만 했고, 그녀 외엔 손님의 모습도 없었으며, 저녁 어둠도 거기까지는 와 닿지 않았다. 마치 그녀 자신의 일부를 저 택시 속에 버려두고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일부가 아직도 저 택시의 뒷자리에 남아 있어서, 저 야회복을 입은 젊은 배우와 함께 어느 파티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꼭 흔들리는 배에서 내려, 강고한 땅에 섰을 때에 느끼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잔존감이었다. 육체가 흔들리고, 세계가 멈추어 있었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이 지나고, 그녀 내부의 그 흔들림이 사라졌을 때, 그녀 내부의 무엇인가가 영원히 사라졌다. 그녀는 그것을 똑똑히 느낄 수가 있었다. 무엇인가가 끝난 것이다.
"그가 저를 향해 한 마지막 말은 저의 귀에 아직 똑똑히 남아 있어요. '카로 택시지'라고."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무릎 위에서 두 손을 모았다.
"멋진 말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생각한답니다. -나의 인생은 이미 많은 부분을 상실하고 말았지만, 그것은 한 부분이 끝났을 따름이며,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을 거라구요."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입술을 조금만 옆으로 펼치듯이 빙그레 웃었다.
"이걸로 '택시를 탄 남자'이야기는 끝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서 미안합니다."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진 않다, 아주 재미난 이야기다, 하고 나와 카메라맨은 말했다.
"이 이야기엔 교훈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귀중한 교훈 말입니다. 그것은 이런 것이지요. 사람은 무엇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지워져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 거 말이에요."하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나와 카메라맨은 잔에 남아 있는 와인을 다 마시고,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화랑을 나섰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곧 원고지에다 정리해 보았으나, 그때엔 잡지의 지면 관계로 아무래도 기사화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 이러한 형태로 발표할 수 있어서, 나는 매우 다행스럽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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