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술이 부상하면서 이제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같은 가상 현실 헤드셋은 가상 세계에서 게임을 즐기기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산업 디자이너의 작업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 RCA의 재학생 네 명이 RCA 전시회에서 첫선을 보였던 3D 스케치패드 그래비티(Gravity)가 바로 그 좋은 예이다.
현재 그래비티는 작동이 가능한 시제품 상태로, 그 기능은 누구나 상상할 법한 방식 그대로이다. 사용자는 가상현실 안경을 착용한 다음, 핸드 헬드형 유리판인 랜딩 패드(Landing Pad) 위의 공간에 오브제를 그린다. G 스페이스(G Space)라고 부르는 랜딩 패드 위의 이 공간은 하나 혹은 여러 개의 드로잉을 소화할 수 있다. 랜딩 패드의 방향을 바꾸거나 기울여서 드로잉 평면을 조절하며, 공간의 실제 오브제에 세부 요소를 더하듯이 드로잉을 구축해 나갈 수 있다.
그래비티는 몇 가지 추적 기술을 통해 시스템의 제 요소들과 AR 안경의 작동을 결합하고 동기화함으로써, 3D로 생성된 콘텐츠를 사용자의 시야에 실시간으로 띄워준다. 그래비티 개발 팀의 이 획기적 기술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
기욤 쿠슈(Guillaume Couche), 다니엘라 파레데스 푸엔테스(Daniela Paredes Fuentes), 피에르 파슬리에(Pierre Paslier), 올루와세이 소사냐(Oluwaseyi Sosanya)로 구성된 그래비티 팀은 현재 베타 소프트웨어 제작을 마무리 중이며, 랜딩 패드와 펜을 생산할 제조사를 물색하고 있다. 다만 가상현실 헤드셋은 사용자들이 직접 구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개발 팀은 프랑스 기업 래스터(Laster)의 AR 안경을 사용하고 있지만, 어느 장비에나 맞는 포괄적인 호환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 소프트웨어를 오큘러스 리프트 헤드셋과 호환이 되게 하는데 성공했으며, 시장에 출시되어 있는 모든 최첨단 AR 안경 즉, 카메라가 탑재된 넓은 화각의 몰입형 AR 장비와 함께 사용할 수 있게끔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그래비티는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 지닌 창작의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줄 도구이다. 그래비티를 최대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구상은 AR에서 3D 스케치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비티의 아이디어는 RCA의 혁신 디자인 공학(Innovation Design Engineering)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그룹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하였다. 당시 학생들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이디어의 신속한 구현과 관련해 안고 있는 한계와 역량에 대해 탐구하였다. 펜과 종이는 3차원의 아이디어를 2차원으로 옮기는 데는 제격이지만, 투시도를 그릴 수 있는 드로잉 기술을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CAD 툴 역시 사용자의 기량 차이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라는 게 RCA 학생들의 생각이었다. 만들기 운동(Maker Movement)이 부상한 가운데, 그래비티 팀은 진입점이 낮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구, CAD를 잘 모르는 사람도 실시간으로 오브제를 그리고 모형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고 싶었다. 그래비티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3D 사물을 드로잉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데 흔히 사용되는 기존의 도구들이 아이디어를 신속하고 직관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창작자의 능력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비티는 창작 활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할 단순하고 매력적인 도구를 겨냥한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사각의 아크릴 판에 그린 드로잉을 쌓아 3차원의 형상을 구성하였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 그래비티 팀은 3차원 형상의 신속한 구현을 도와줄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를 이용하였다. 이들 테스트 중 두 가지가 가장 흥미로운 결과와 최고의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보여주었다. 그래비티 팀은 사각의 작은 아크릴 판을 이용해, 사용자에게 머릿속에 그린 형태가 나오도록 층층이 드로잉을 하라고 주문하였다. 사용자들은 일단 하나의 형태를 시각화한 다음 이를 여러 층의 아크릴 판에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의 구상을 신속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테스트에서는 좀 더 크고 상세하게 드로잉을 할 수 있도록 사용자들에게 면적이 더 넓은 정육면체를 주었다. 그러나 이 테스트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는데, 형태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층들이 투박하고 다루기 힘든 미완의 형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전체 과정을 거치며 우리가 주목한 부분은 조사 및 초기 탐구 작업에서 알아낸 매우 중요한 통찰이었다. 간단한 규칙들이 제시되면, 사람들은 도구의 한계를 빠르게 익히면서 작업을 완성해 나간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그래비티 팀은 사람들이 자연스런 본능에 따라 2차원 평면에 쉽게 드로잉을 하면서, 본인의 아이디어를 3차원 공간에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정육면체를 이용한 실험은 아이디어를 즉각적으로 시각화해서 공유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됐다. 또한 그래비티 팀은 몇 개 안 되는 대강의 스케치 선만으로도 아이디어를 담아내 전달할 수 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그처럼 낮은 해상도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층층이 대강의 스케치를 한다는 동일한 컨셉을 AR 기술의 활용에도 적용하였다.
그래비티 팀은 아날로그적인 실험을 마친 후에야,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층층이 드로잉을 하는 작업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이제 층층이 쌓인 아크릴 판과는 이별을 해야 했다. 증강현실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는 단 한 장의 드로잉만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장의 드로잉을 위아래로 움직여 여러 층으로 드로잉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완성된 스케치 선들은 허공을 둥둥 떠다니게 된다.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증강현실의 가능성이 증대되면서, 어느새 그래비티는 허공에 마음껏 드로잉을 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이것은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고려했던 또 하나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창의적인 협업을 돕고 향상시킬 수 있는 도구를 창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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