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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디자인

캐리 영(Carey Young)의 디클레어드 보이드(Declared Void)

chocohuh 2013. 8. 12. 11:08

캐리 영은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텍스트를 이용해 세계 시장 경제의 결과인 기업 문화와 법률, 그리고 개인의 관계에 대해 표류하는 디자이너, 아티스트이자 법률가다. 그녀의 작업들은 현대사회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계약과 관리에 이용되는 언어들을 개념적으로 표현하는 드로잉과 예술적인 미디어를 이용한 기록이 양립하며 좌우가 다른 데칼코마니처럼 존재한다. 즉 법률이라는 비인격적이고 감성이 배제된 이성적인 개념들 사이에서 감성을 추출해내는 작업이다.

 

나는 계약이라는 명제를 이용해 사람과 사람, 공간, 물체, 시간 사이의 관계를 창조한다. 계약은 감성적인 행동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계약을 통해 약속하고, 제공에 동의하고, 도덕적인 책무를 진다.

 

그녀는 관람객들을 유머러스한 방법으로, 때론 자극적인 방법으로 전시에 참여시키며 관람이라는 소외된 노동과 전시상황을 재결합 한다. 그녀의 많은 작업이 전시와 퍼포먼스의 중간 즈음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종종 캐리 영은 관객들을 초청해 모순적인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든다. 관람객들은 복잡하고 정밀하게 디자인된 계약서를 통해 계약에 동의함으로써 가학피학성(加虐被虐性)의 성적인 뜻이 있는 기관에 등록되거나, 서명하는 순간 법적으로 전시의 일부분이 되어 전시장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캐리 영의 날카롭고 재기 발랄한 작업들은 디자인과 아트의 영역뿐만 아니라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합법이 가진 불합리성을 연구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현대 디자이너들은 수많은 계약에 노출됨과 동시에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형성된 각종 법적 관계에 얽혀 살아간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든 회사에 소속돼 있든 간에 법률에 목마르지 않은 디자이너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수용하고 있는 이 법적 시스템은 과연 언제나 옳은 것인가? 법적인 동의를 통해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통해 법적인 동의가 진행될 수는 없는가? 디자인과 예술, 법률 사이에는 어떠한 함수관계가 성립되는가?

 

만약 우리가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예술은 시스템의 압점(壓點)들을 드러내는 비판적인 노동이다. 라는 이론에 조건 없이 동의한다고 해도, 현재의 패러다임(Paradigm)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 분량의 연구가 필요하다. 완벽한 자유 시장(Free Market)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마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요구를 충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신자유주의는 디자이너에게 필수적으로 문제시되고, 논해지고, 비판돼야 하는 영역이다.

 

생각해 보라, 많은 디자이너가 출금하기 위해 디자인을 하고 있다. 이는 마치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존재가 지속적으로 출금을 가능하게 하려고 디자이너를 사들인 것 같은 논리 구조를 갖춘다. 이 관계는 내가 가장 경계하는 부채다. 이 부채에 대한 부정의 길(Via Negative)을 걷는 행위는 내가 비평을 창조하는 가장 기본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내 리서치의 지향적인 작업들은 내가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경제 전문가로서 제록스(Xerox)BBC 같은 법인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독특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평범함과 거리가 먼 아티스트들과 다르게, 너무나도 평범한 직업을 갖게 됐던 내 아이러니한 상황은, 오히려 내가 빠르게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될 수 있는 불법주의자적인 정체성을 줬다.

 

 

 

 

디클레어드 보이드(Declared Void: Installation View), 뉴욕 파울라 쿠퍼 갤러리(New York Paula Cooper Gallery), 2005, Vinyl Drawing and Text, Dimensions Variable, 337.8 x 337.8cm

 

나는 디클레어드 보이드를 통해 미국의 쿠바 관타나모(Guantánamo) 기지를 갤러리에 투영하고자 했다. 이 회색공간은 미국의 헌법에 어긋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합법적인 공간이다. 내 작업의 법적 조언자인 로버트 랜즈(Robert Lands)와 제이미 스테이플턴(Jaime Stapleton)은 위와 같은 공간을 창조해 내는 것은 미국 의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작업은 관람객들과의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허구적인 공간이며, 마치 미국이 쿠바 관타나모 기지를 만들어낸 것과 똑같은 논리로 만들어졌다. 나는 갤러리의 구석에 공간을 만들고 바깥에 미국 헌법의 부조리한 거짓말을 썼다. 이 디자이너의 선포를 통해 관람객들은 공간으로 침입하는 순간 잠깐 아티스트에게 계약으로 얽매이게 된다. 이 작업의 법적인 족쇄는 잠깐이지만, 갤러리에 전시된 다른 작업들은 더 오랜 시간 동안 효력이 작용한다.

 

쿠바 관타나모(Guantánamo) 기지쿠바 동부 관타나모주()에 있는 도시로 1903년 이래 미국의 해군기지가 됐다. 관타나모 기지는 쿠바의 땅이면서 미국이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27의 접경선을 사이에 두고 쿠바와 대치하는 중이다. 미국은 9. 11 테러 이후 알 카에다와 아프가니스탄의 전 탈레반 정권에 연루된 외국인들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구체적 증거 없이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구금하고 있다. 물론 재판과 같은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수용 가능 인원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의 구금, 방치되고 있어 관타나모 수용소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인벤토리(Inventory), 뉴욕 파울라 쿠퍼 갤러리(New York Paula Cooper Gallery), 2007

 

인벤토리는 내과 의사의 관점으로 본 인간의 몸의 가치에 대해 기술한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저널 도큐먼트(Documents)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밝혀야 하겠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보기로 했다. 내 리서치는 1929년에 이 이론이 정립된 이후로 시도된 인간의 몸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인 발견의 무의미한 행위 중 하나다. 영국의 임페리얼 컬리지(Imperial College London)와 캠브리지 대학교(Cambridge University)의 과학자들과 협업으로 나는 내 몸의 화학적인 원소들의 가치를 추출했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갖고 현대 세계 화학 시장의 시가에 맞춰 내 몸의 가치를 도출했다.

 

이 원소들은 산소, 탄소, 질소, 텅스텐, 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업은 그래픽적 표현 방법에 의해 재생산돼 전시장의 벽에 걸리게 된다. 이 그래픽은 나의 현재 가치를 영국 파운드화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옆에는 어떤 계산법으로 그 금액이 도출됐는지 과정을 보여주는 수학적 과정이 걸려 있다. 매번 새로 전시를 할 때마다, 나는 현재의 내 몸무게에 따라 계산해 작업을 새롭게 만든다. 적혀있는 금액은 이 작업의 판매가격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작업이 내 몸의 가치와 시장의 협상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업은 내 몸과 원자재, 그리고 시장 경제에 연관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이는 또한 엄청나게 불합리한 방식으로, 사회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상품으로서 관념적으로 사용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것이다. 이 작업은 예술가의 가치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해답을 도출하기 위한 과장되고 풍자된 과정을 통해 도출된 수학적 결과는 밀수 시장에 장기를 파는 것보다 더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업 과정 중 가장 흥미로 왔던 것은 내 몸에 대한 미립자와 소립자의 막대한 네트워크를 보는 일이었다.

 

 

 

 

 

 

 

 

바디 테크닉스(Body Techniques), 2007

 

이 사진 연작 작업들은 팽창해 가는 세계 경제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이 사진들은 엄청난 규모의 빌딩 숲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들에서 나는 홀로 정장을 입고 리처드 롱(Richard Long),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마이얼 레더만(Mierle Laderman) 등 개념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드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움직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너무나도 유명한 기존 거장들의 작업들은 내 작업 속에서 시공간과 몸의 물성이라는 주제로 재주조(Recasting)되고 있다.

 

이 모호함은 내가 나를 풍경이라는 틀 속에 주조(Cast)함으로써 탄생한다. 또한 이 사진들은 몸과 공간의 저항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내 작업의 배경들은 텅 비어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라스베이거스의 재개발 지역들이다. 타불라 라사(Tabula Rasa)와도 같은 사막에 건설된 과장된 럭셔리하고 호화찬란한 장소는 수천 개 회사들의 유입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적인 마을이 될 미래의 경제특구는 다국적 회사들의 본부로 구성될 예정이다. 현재는 아무것도 아닌 이 공간은 실재성을 지닌 허구적(Hyper Real)이며 완성되지 않은, 경제적인 관점의 유토피아다. 이 절반 정도 완성된 대규모의 압도적인 경제 원리 속에서 나는 경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포장된 채 정장을 입고 미세한 입자로서의 개인이 되어 공간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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