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코끼리 한 마리와 늙은 사육사 한 사람이 이 지상에서 소멸되었다 해도 사회의 추세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코끼리 사육소에 코끼리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나는 신문을 통해 알았다. 나는 그날 여느 때처럼 6시 13분에 맞춰 놓은 자명종 시계 소리에 눈을 떠, 부엌에 가서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만들고, FM방송을 틀고, 토스트를 씹으면서 조간신문을 식탁 위에 펼쳤다.
나는 1면부터 순서대로 신문을 읽어 나가는 편이라서, 그 코끼리 소멸 기사를 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우선 제1면에는 무역 마찰 문제와 SDI에 관한 기사가 있고, 다음으로 국내 정치면이 있고, 국제 정치면이 있고, 경제면이 있고, 독자 참여란이 있고, 독서란이 있고, 부동산 광고 면이 있고, 스포츠 면이 있고, 끝으로 지방판 면이 나타났다.
'코끼리 소멸'은 지방판 톱기사로 실려 있었다. 우선 <.시에서 코끼리 행방불명>이라는 큼직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 불안 고조, 관리 책임 추궁의 소리도>라는 약간 작은 제목이 이어지고 있었다.
경찰관 몇 명이 코끼리가 없는 코끼리 우리를 검증하고 있는 사진도 실려 있었다. 코끼리 없는 사육소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필요 이상으로 휑뎅그렁하고 무표정하여, 그것은 마치 내장을 뽑힌 채 건조된 거대한 생물처럼 보였다.
나는 신문지 위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털고, 그 기사를 한 줄 한 줄 주의 깊게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코끼리의 부재를 알게 된 것은 5월 18일(즉, 어제) 오후 2시였다. 여느 때처럼 코끼리 사료를 트럭으로 운반해 온 급식 회사의 직원이 (코끼리는 시립 국민학교의 학생들이 먹다 남긴 급식을 주식으로 하고 있었다.)코끼리 사육소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코끼리 발에 연결되어 있던 쇠 족쇄는, 마치 코끼리가 발을 쑥 빼낸 것처럼 열쇠가 걸린 채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사라진 것은 코끼리만이 아니었다. 줄곧 코끼리를 돌보아 왔던 사육 담당 남자도 코끼리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사육사의 모습을 보았던 것은 그 전날(즉, 5월 17일) 저녁 5시를 지나서였다.
다섯 명의 국민학생들이 코끼리를 스케치하기 위해 코끼리 사육소에 찾아와서, 2시간동안 크레용으로 코끼리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 학생들이 코끼리의 마지막 목격자며, 그 후 코끼리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그렇게 신문 기사는 보도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6시 사이렌이 울리면, 사육사는 코끼리 광장의 문을 닫아걸고,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코끼리에게도, 사육사에게도 아무런 이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다섯 명의 학생들은 입을 모아 증언했다.
코끼리는 보통 때처럼 온순하게 광장 한복판에 서서, 가끔씩 코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주름투성이의 눈을 가늘게 떠보기도 할 뿐이었다. 코끼리는 몹시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몸도 간신히 움직였다. 처음으로 이 코끼리를 본 사람은, 코끼리가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넘어져 숨을 거두지나 않을까 불안해 할 지경이었다.
코끼리가 시(즉, 내가 살고 있는 시 말이다)에 인수된 것도, 그 노령 때문이었다. 시의 변두리에 있었던 조그만 동물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쇄되었을 때, 동물들은 동물 거래 중개업자의 손을 통해 전국의 동물원으로 인수되었는데, 그 코끼리만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인수하겠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동물원이나 이미 충분할 정도로 코끼리를 소유하고 있었고, 금세라도 심장 발작을 일으켜 죽어 버릴 듯 휘청거리는 코끼리를 인수해 갈 만큼 유별나고 여유 있는 동물원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 코끼리는 동료들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습을 감추어 버린 폐허 같은 동물원에, 별로 하는 일도 없이 -그렇다고 처음부터 특별하게 무슨 일을 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삼사 개월 동안을 홀로 남아 있었다. 동물원 측으로서도, 시로서도, 그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사태였다.
동물원 측에서는 이미 택지업자에게 동물원의 남은 땅을 매각 중이었고, 업자는 그곳에다 고층 맨션을 세울 계획이었으며, 시는 그 업자에게 개발 허가를 내주었다. 코끼리의 처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이자만 쌓여 갔다. 그렇다고 해서 차마 코끼리를 죽여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미원숭이나 박쥐라면 또 몰라도, 코끼리 한 마리를 죽인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쉽고, 만약 진상이 탄로 나게 되면 문제가 커질 것이다. 그래서 세 곳의 대표가 모여 협의한 끝에 늙은 코끼리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던 것이다.
1. 코끼리는 시 소유의 재산으로서 시가 무료로 인수한다.
2. 코끼리를 수용하는 시설은 택지업자가 무상으로 제공한다.
3. 사육담당자의 급여는 동물원 측이 부담한다.
이것이 그들 삼자 간에 체결된 협정의 내용이다. 꼭 일 년 전 이야기다.
나는 그 '코끼리 문제'에 대해 원래 처음부터 개인적인 흥미를 느끼고 있어서, 코끼리에 관한 신문 기사는 모조리 스크랩하고 있었다. 코끼리 문제를 토의하는 시의회의 방청 회에도 갔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사태의 추이를 척척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질지 몰라도, 이 '코끼리 문제'의 처리 과정은 코끼리 소멸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예 여기서 기술해 둔다. 시장이 이 협정을 체결하고, 마침내 코끼리를 인수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의회의 야당을 중심으로(그때까지 나는 시의회에 야당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어째서 시가 코끼리를 떠맡아야 하는가?"하고 그들은 시장을 다그쳤다. 그들의 주장을 리스트로 만들어 보면(리스트가 많아서 미안하지만, 이쪽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서), 다음과 같다.
1. 코끼리 문제는 동물원과 택지업자라는 사기업 사이의 문제며, 시가 관여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2. 관리비, 식비 등에 너무 많은 돈이 든다.
3. 안전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4. 시가 자비로 코끼리를 사육해서 얻을 이득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코끼리를 사육하기에 앞서, 하수도 정비와 소방차 구입 등, 시를 위하여 할 일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라고 반박하며, 심하게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장과 업자 사이의 뒷거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시의 변명은 다음과 같다.
1. 고층 맨션 군이 생겨나면 시의 세금 수익은 비약적으로 증대하여, 코끼리 사육비 정도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그 같은 프로젝트에 시가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코끼리는 고령이고, 식욕도 대단치 않다. 사람에게 해를 가할 염려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만약 코끼리가 죽으면, 코끼리의 사육지로서 업자로부터 제공받은 토지는 시 소유 재산이 된다.
4. 코끼리는 시의 상징이 된다.
결국 오랜 토의 끝에 시는 코끼리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 시는 오래된 교외 주택지로, 시민들은 대부분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고, 시의 재정도 풍부했다. 게다가 오갈 데 없는 코끼리를 인수한다는 행위에 대해 사람들은 호감을 가졌다. 확실히 사람은 하수도나 소방차보다는 늙은 코끼리 쪽에 호의를 갖는 모양이다.
나도 시가 코끼리를 사육하는 일에는 찬성이었다. 고층 맨션 군이 생기는 것은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시가 코끼리 한 마리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산림을 개간하고 노후한 국민학교 체육관을 코끼리 우리로 개조시켰다. 동물원에서 줄곧 코끼리를 돌보아 온 사육사가 그리로 와서 살기로 했다. 국민학생들이 먹다 남긴 급식으로 코끼리 사료를 충당하였다. 그리고 코끼리는 폐쇄된 동물원으로부터 트레일러에 의해 새 우리로 운반되어,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코끼리 우리 낙성식에도 참석했다. 코끼리를 앞에 둔 채 시장의 연설(시의 발전과 문화 시설의 확충에 대한)이 있었고, 국민학생 대표가 작문(코끼리님,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운운하는)을 읽었으며, 코끼리 사생 대회(그 후 코끼리 스케치는 국민학생 미술 교육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레퍼토리가 되었다)가 열렸고, 팔랑팔랑하는 원피스를 입은 두 젊은 여성(별로 미인이랄 것도 없는)이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한 덩이씩 주었다.
코끼리는 거의 꼼짝도 하지 않고 상당히 무의미한 -적어도 코끼리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무의미했다- 그 의식을 꾹 참으며, 멍청한 눈빛으로 바나나를 꾸역꾸역 먹었다. 코끼리가 바나나를 먹어 치우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코끼리의 오른쪽 뒷다리에는 튼튼하고 묵직한 쇠고리가 채워져 있었다. 고리에서부터 연결된 10미터쯤 길이의 굵은 사슬 끝은 콘크리트 토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 쇠고리와 사슬은, 코끼리가 백 년 동안 힘을 쏟는다 해도 끊지 못할 정도로 튼튼해 보였다. 코끼리가 그 족쇄를 꺼림칙하게 여기는지 어떤지는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코끼리는 자기 다리에 감겨 있는 그 쇳덩어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코끼리는 항상 멍청한 눈으로 어딘지 알 수 없는 허공의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귀와 몸에 난 흰털이 가볍게 흔들렸다.
코끼리 사육사는 60대 초반일지도 모르고, 70대 후반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겉모습이 연령에 좌우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피부는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검붉게 햇볕에 그을렸고, 머리칼은 억세고 짧았으며, 눈은 작았다. 이렇다 할 특징이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형에 가까운 두 귀는 좌우로 불거져서, 얼굴 전체가 작은 만큼 몹시 눈에 띄었다.
그는 결코 무뚝뚝하지는 않았으며, 누가 말을 걸면 꼬박꼬박 그 말에 대답했고, 말하는 태도도 빈틈이 없었다. 그렇게 되려고 마음먹으면 -어느 정도 어색하게 느껴질 수는 있더라도- 상냥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말이 없고 고독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듯 아이들이 오면 애써 친절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아이들은 이 노인에게 별로 마음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 사육사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있는 것은 코끼리뿐이었다.
사육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코끼리를 보살펴 주었다. 코끼리와 사육사는 이제 십 년 이상 된 친구로서 둘 사이가 친밀하다는 것은 각각의 순간적인 동작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곳에 멍청히 서 있는 코끼리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 할 때면, 사육사는 코끼리 옆구리 쪽에 서서 코끼리 앞다리를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뭐라고 속삭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코끼리는 귀찮다는 듯이 꾸물꾸물 몸을 흔들면서, 정확하게 그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코끼리는 그곳에 위치를 정하고 나면 또 이전과 마찬가지로 허공의 한 지점을 지켜보았다.
나는 주말이면 코끼리 우리에 들러서 그 같은 작업을 주의 깊게 관찰했지만, 어떠한 원리에 따라서 둘 사이의 관계가 성립되는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코끼리가 사람의 간단한 언어를 이해하는지도 모르고(어쨌든 오래 살고 있으니까) 혹은 다리를 톡톡 치는 방법에 의해 말을 이해하는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코끼리한테는 텔레파시 비슷한 특수 능력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사육사의 생각을 알아내는 지도 모른다.
나는 한번 그 사육사 노인에게 '코끼리한테 어떻게 명령하느냐?'라고 물어 본 적이 있다. 노인은 웃으면서 '오래 사귀다 보니까'하고 대답했을 뿐, 그 이상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아무튼 그럭저럭 아무 탈 없이 일 년이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코끼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두 잔째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 기사를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그것은 상당히 미묘한 기사였다. 셜록홈즈가 파이프를 두들기면서 '와트슨 좀 보라고. 여기 제법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다고.'하는 말이 나올 법한 종류의 기사였다. 그 기사에 기묘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기사를 쓴 기자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을 당황과 혼란이었다. 당황과 혼란은, 명백하게 상황의 부조리성에 기인하고 있었다. 가령 기사에서 '코끼리가 탈주했다.'하는 표현을 취하고 있었는데, 기사 전체를 훑어보면 코끼리가 탈주한 게 아니라는 것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코끼리는 확실히 '소멸'했던 것이다. 기자는 그러한 자기모순을 '세부적으로는 아직도 몇몇 불명확한 점이 남아 있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건이 '세부'라든가 '불명확'이라든가 하는 판에 박힌 용어로 정리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우선 첫째로, 코끼리 다리에 채워져 있었던 족쇄에 대한 문제였다. 족쇄는 '자물쇠가 걸려 있는 채로' 그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가장 타당한 추론은, 사육사가 열쇠로 그 쇠고리를 벗겨 낸 다음에 다시 자물쇠만 채워 놓고, 코끼리와 함께 도망쳤다는 것이다(물론 신문도 그 가능성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육사가 열쇠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열쇠는 두개가 있었는데, 그 열쇠들은 안전 보호를 위해 하나는 경찰서 금고 속에, 또 하나는 소방서 금고 속에 간직되어 있었다.
사육사가 -혹은 그 밖의 누군가가- 그곳에서 열쇠를 훔쳐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의 하나 그것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사용한 다음에 열쇠를 일부러 원래의 금고에 갖다 놓을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조사한 결과, 두 개의 열쇠는 경찰서와 소방서 금고 속에 분명히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열쇠를 사용하지 않고, 그 튼튼한 족쇄로부터 다리를 빼냈다는 말이 되는데, 그것은 톱을 사용해서 다리를 잘라 내지 않는 한 절대로 불가능했다.
두 번째 문제는, 탈출 경로였다. 코끼리 우리와 '코끼리 광장'은 3미터쯤 되는 높이의 튼튼한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코끼리의 안전관리가 의회에서 논의되었던 일로 해서, 시는 한 말미의 늙은 코끼리에 대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경비 체제를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울타리는 콘크리트와 굵은 철봉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그 비용은 물론 토지 회사가 부담했다), 입구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 입구에는 안에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코끼리가 그처럼 요새와 같은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갔을 리는 없다.
세 번째 문제는, 발자국이었다. 코끼리 우리 뒤쪽은 가파른 언덕이라서 코끼리가 올라갈 리 없으므로, 만약 코끼리가 어떤 방법으로 족쇄에서 다리를 빼내어 비상한 방법으로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해도, 정면의 길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그 길 위에는 코끼리의 발자국인 듯싶은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그, 곤혹과 고통의 표현으로 가득 찬 신문 기사를 종합해 보면, 사건의 결론이랄까 본질은 한 가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즉, 코끼리는 도망친 것이 아니고 '소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신문도 경찰도 시장도, 코끼리가 소멸했다는 사실을,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경찰은 '계획적인 교묘한 방법에 의해 코끼리를 강탈당했거나 탈출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코끼리를 은폐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에 사건 해결은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낙관적인 예측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근교 사냥 동우회 및 자위대 저격 부대의 출동을 요청하여, 산을 뒤질 작정이었다.
시장은 기자 회견을 열어(이 기자 회견의 보도는 지방판이 아닌 전국판 사회면에 게재되었다), 시 경비 체제의 허술함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시장은 동시에 '코끼리의 관리체제는 시설 면에서 전국 어느 동물원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견고함에서도 기준보다 훨씬 만전을 기했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이것은 '악의에 찬 위험 또는 무의미한 반사회적 행위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일 년 전과 다름없이 '안이하게 기업과 결탁해서 코끼리 처리 문제에 시민을 끌어넣은 시장의 정치 책임을 추궁한다.'라고 했다.
어느 어머니(37세)는 '당분간 아이를 밖에 내보내고 안심하지 못하겠네요.'라며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신문에는 시가 코끼리를 떠맡게 된 자세한 경위와 코끼리 수용 시설의 약도가 실려 있었다. 코끼리의 약력도 씌어 있었고, 코끼리와 함께 사라져 버린 사육사(와타나베 노보루, 63세)에 대한 기술도 있었다.
와타나베 사육사는 지바 현 야카다야마 출신으로, 오랫동안 동물원에서 포유류 사육사로 근무했는데, '동물원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온후하고 성실한 인품으로 관계자들 사이에서 신뢰가 두터웠다'라고 했다.
코끼리는 22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보내져 왔는데, 정확한 나이도 알 수 없었고, 그 '성질'도 불확실했다.
기사의 맨 마지막에는, 경찰이 시민으로부터 코끼리에 대한 모든 형태의 정보를 구하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커피를 두 잔째 마시면서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경찰에는 전화를 걸지 않기로 했다. 별로 경찰과 관련 맺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내가 제공하는 정보를 경찰이 믿어 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소멸했을 가능성조차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이야기해도 헛수고가 아닐까.
나는 책상에서 꺼낸 스크랩북에다가 신문에서 오려 낸 코끼리 관계 기사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컵과 접시를 닦아 놓고 회사로 나갔다.
밤 7시 NHK뉴스에서, 나는 산몰이하는 양상을 보았다. 마취 탄이 장전된 대형 라이플총을 옆구리에 낀 사냥꾼들과 자위대원, 경찰, 소방대원들이 근교의 산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고, 하늘에는 몇 대의 헬리콥터가 날고 있었다.
산이라고 해야 도쿄 근교의 주택가 산이니까 대충 알 만하다. 그만큼의 사람들이라면 하루에 대충 수색을 끝낼 수 있고, 게다가 찾는 대상은 작은 덩치의 살인자가 아니라 거대한 아프리카 코끼리인 것이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는 자연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저녁때까지 코끼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경찰서장은 '수색은 계속한다.'라고 말했다.
텔레비전의 뉴스캐스터는 '누가 어떤 방법으로 코끼리를 탈출시켰으며, 어디에 숨겼는지, 그리고 그 동기가 무엇인지, 모든 것은 깊은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하고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인가 수색은 계속됐지만, 결국 코끼리를 찾아내지 못했고, 당국은 실마리다운 실마리조차 하나도 알아내지 못했다. 나는 매일같이 신문 보도를 꼼꼼히 읽고, 눈에 띄는 기사마다 하나하나 가위로 오려 내서 스크랩했다. 코끼리 사건을 취급한 만화까지도 스크랩했다. 덕분에 스크랩북은 이내 꽉 차버려서 문방구에 들러 새로운 스크랩북을 사야만 했다. 하지만 그처럼 방대한 양의 기사에도 불구하고, 그것에는 내가 알고자 하는 사실이 하나도 씌어 있지 않았다.
신문에 적혀 있는 것은 '여전히 행방불명'이라든가, '고뇌의 색이 짙은 수사진'이라든가, '배후에 비밀 조직'이라는 따위의 엉뚱한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코끼리 소멸 이후 일주일이 지난 때부터는 그나마 그 기사조차 눈에 띄게 줄어들어, 마침내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몇몇 주간지도 흥미 위주로 기사를 싣고, 개중에는 심령술사까지 끌어들인 것도 있었지만, 그것도 이윽고 꼬리를 감추는 식으로 끝나 버렸다.
사람들은 코끼리 사건을 '해결 불능의 수수께끼' 범주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듯이 보였다.
늙은 코끼리 한 마리와 늙은 사육사 한 사람이 이 지상에서 소멸되었다고 해도 사회의 추세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지구는 단조로운 회전을 계속하고, 정치가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성명만을 잇달아 발표하고, 사람들은 하품을 하면서 회사로 나가며,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나가는 끝없는 일상의 파도 속에서 행방불명 돼버린 코끼리 한 마리에 대한 흥미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몇 개월인가가, 창밖을 행진해 가는 피폐한 군대처럼 지나가 버렸다.
나는 이따금 틈을 내어 코끼리 우리로 찾아가 코끼리가 살던 곳을 바라보았다. 철책 입구에는 굵은 쇠사슬 자물쇠가 둘둘 감겨 있었다.
코끼리를 찾아 내지 못한 경찰은 잃어버린 땅의 회복을 위해, 코끼리가 없어진 뒤의 코끼리 우리에 필요 이상의 경비를 강화하고 있는 듯했다.
주위는 휑뎅그렁해서 인기척이라고는 없었고, 코끼리 우리의 지붕 위에서 비둘기 한 떼가 날개를 쉬고 있을 뿐이었다. 손질하는 이 없는 코끼리 광장에는, 마치 떼를 만난 듯 푸른 잡초만이 무성했다. 코끼리 우리 문에 감겨 있는 쇠사슬은, 폐허가 돼버린 밀림 속 왕궁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커다란 뱀을 연상시켰다. 불과 수개월 동안의 코끼리 부재는, 일종의 숙명과도 같은 황폐함을 그 자리에 가져왔고, 비구름과도 같은 침울한 공기를 그곳에 감돌게 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9월도 막바지에 이르러서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계절에 곧잘 내리는 가늘고 부드러운 빗줄기의 단조로운 비였다. 그 같은 비가, 땅 위에 새겨져 있는 여름의 기억들을 조금씩 씻어 가는 것이다. 모든 기억은 도랑을 타고 하수도며 강으로 흘러들어, 어둡고 깊은 바다로 운반되어 간다.
우리는,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펼친 캠페인을 위한 파티에서 만났다.
나는 어떤 대규모의 전기 기구 회사 광고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가을 결혼시즌과 겨울 보너스시기에 맞춰 발매할 예정인, 일련의 주방 전기 제품 프레스 퍼블리시티를 담당하고 있었다.
몇몇 여성 잡지에 타이업 기사를 싣기 위해 교섭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었다. 그다지 머리를 쓰는 일은 아니었지만, 독자에게 광고라는 냄새를 풍기지 않게끔 요령 있게 기사를 정리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우리들은 잡지에 광고를 게재하게 된다. 세상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이었다.
그녀는 젊은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의 편집자로서, 그 퍼블리시티에 관련된 취재를 위해 파티에 와 있었다. 마침 나는 손이 비어 있어서 그녀를 상대로,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컬러풀한 냉장고며 커피 메이커, 전자레인지랑 주서기에 대해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통일성입니다. 제아무리 멋지게 디자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주위와 균형이 맞지 않으면 죽어 버립니다. 색채의 통일, 디자인의 통일, 기능의 통일, 이것이 현재의 부엌에 가장 필요한 것이지요. 조사에 의하면, 주부는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부엌에서 보냅니다. 부엌은 주부의 작업장이자 서재이자 거실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부엌을 조금이라도 편리한 장소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넓이는 관계없어요. 설령 그것이 넓든 좁든 훌륭한 부엌의 원칙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단순성, 기능성, 통일성이지요. 이번의 이 시리즈는 그 같은 컨셉에 따라 설계되고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쿠킹 플레이트를 보십시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노트에다 메모했다. 그녀도 뭐 특별히 그런 취재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 역시 쿠킹 플레이트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들은 나름대로의 사업을 요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설명을 끝내자 '부엌일에 아주 정통하시네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사업이니까요. 하지만 그것하고는 별도로 요리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간단한 요리지만 매일 만들고 있는걸요."하고 나는 영업용의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부엌에는 정말 통일성이 필요할까요?"
"부엌이 아니고 키친입니다."하고 나는 정정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무래도 좋겠지만, 회사가 그렇게 정해놓고 있어서요."
"미안합니다만, 그 키친에는 정말 통일성이 필요할까요? 당신의 개인적인 의견은요?" 나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넥타이를 풀어놓지 않는 한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특별히 말하겠는데, 부엌에는 통일성에 앞서 필요한 것이 몇 가지 존재하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요소는 우선 상품이 되지 않을 테고, 이 편의적인 세계에 있어서 상품이 되지 않는 팩터는 거의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죠."
"세계는 정말 편의적으로 성립하고 있을까요?"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냥 그렇게 말해 봤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편이 많은 일들을 알기도 쉽고, 사업도 수월하고. 게임과 같죠. 본질적인 편의성이라든가 편의적인 본질이라든가, 갖가지 말로 표현할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풍파도 일지 않고, 복잡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아주 재미있는 의견이네요."
"별로 재미날 건 없지요. 누구나 다 생각하고 있는 일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꽤 그럴듯한 샴페인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고마워요. 주시겠어요?"
나와 그녀는 그때부터 차가운 샴페인을 마시며 세상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가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몇 명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업계는 범위가 그다지 넓지 않아서, 돌을 몇 개 던지다 보면 한두 개는 '공통으로 아는 사람'에게 맞게 된다. 그것에 한 술 더 떠서 내 누이동생이 마침 그녀와 같은 대학 출신이었다. 우리는 그 같은 몇몇 이름을 발판으로 해서, 비교적 부드럽게 화제를 펼쳐 나갈 수 있었다.
그녀도 나도 독신이었다. 그녀는 스물여섯 살이었고,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그녀는 콘택트렌즈를 꼈고, 나는 안경을 꼈다. 그녀는 나의 넥타이 색깔을 칭찬했고, 나는 그녀의 웃옷을 칭찬했다. 우리는 각기 살고 있는 아파트 집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월급 액수와 일의 내용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요컨대 우리는 상당히 친밀해졌다. 그녀는 꽤 매력적인 여성이었고, 억지스러운 구석도 없었다. 나는 한 20분쯤 그녀와 선 채로 이야기했는데, 그녀에게 호의를 가져서 안 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파티가 끝날 무렵, 나는 그녀와 호텔 안의 칵테일 라운지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 앉아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라운지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초가을의 비를 볼 수 있었다. 비는 여전히 소리 없이 내리고, 그 깊숙한 곳에서는 거리의 불빛이 각양각색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라운지에는 손님의 모습은 거의 없었고, 눅눅한 침묵만이 주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프로즌 다이커리를 주문했고, 나는 스카치 온 더 록을 주문했다. 우리는 각자 주문한 술을 마시면서 어느 정도 친밀해진 초대면의 남녀가, 흔히 주점에서 주고받는 식의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시절 이야기, 좋아하는 음악과 스포츠, 일상적 습관 등에 관한.
그러고 나서 나는 코끼리 이야기를 했다.
어째서 갑자기 코끼리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 나는 그 연관성은 기억할 수 없다. 아마 뭔가 동물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그것이 코끼리로 연결되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누구에게 -말솜씨가 뛰어난 누구에게- 코끼리 소멸에 대한 내 나름의 견해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단순히 술김에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그와 같은 상황에 가장 부적당한 화제를 끄집어냈다는 것을 알았다.
코끼리 이야기 같은 것은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이미 때 지난 화제였다. 그래서 나는 즉시 화제를 집어치우려고 했지만, 그녀는 뜻밖에 그 코끼리 소멸 사건에 관심을 나타냈다.
내가 그 코끼리를 여러 번 보았다고 하자, 쉴 틈도 주지 않고 잇달아 질문을 퍼부었다.
"어떻게 생긴 코끼리였나요? 어떤 식으로 도망쳤다고 보세요? 항상 무엇을 먹고 있었나요? 위험하진 않을까요?"등등 그런 식이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신문에 실려 있는 대로 지극히 일반적이고 판에 박힌 듯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어투에서 부자연스럽게 비뚤어진 냉담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옛날부터 거짓말하는 것을 무척이나 고역스러워하는 편이었다.
"코끼리가 없어졌을 때는 굉장히 놀랐겠네요? 코끼리 한 마리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는 다이커리를 두 잔째 마시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하고 말하며, 나는 유리 접시에 담긴 프레첼을 손에 들고, 두 개로 나눠 절반을 먹었다. 웨이터가 와서 재떨이를 비워준 이후 다시금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그럴지도 모른 다뇨? 그 말은, 코끼리가 사라질 것을 조금은 예측했었다는 말 같군요?"하고 그녀는 질문했다.
"예측이라니, 어떻게? 어느 날 갑자기 코끼리가 사라지다니, 그런 전례도 없거니와 필연성도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얘기는 아주 이상해요. 그렇잖아요? 내가, '코끼리가 사라지다니…….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더니, 당신은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하고 대답했잖아요. 보통 사람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을 텐데. '정말이야'라든가 '짐작도 못한다.'라든가. 그렇지 않았을까요?"
나는 그녀를 향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러 스카치를 더 가져오라고 했다. 새 온 더 록이 오기까지 잠정적인 침묵이 계속되었다.
"있잖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조금 전만 해도 아주 또박또박 말했다고요. 코끼리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데 코끼리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말하는 태도가 이상해졌어요. 뭘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도대체 어찌된 셈이죠? 코끼리 때문에 뭐 잘못된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면 내 귀가 어떻게 돼버린 걸까요?"
"당신의 귀는 정상입니다."
"그럼 그쪽에 문제가 있군요."
나는 손가락을 글라스 속에 집어넣고 얼음을 빙글빙글 돌렸다. 나는 온 더 록의 얼음이 글라스에 부딪히는 소리가 좋았다.
"문제라고 할 만큼 대단한 건 아니요. 아주 사소한 일이죠. 특별히 남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말할 수 있을지 어떨지 자신이 없어서 말하지 않은 것뿐이죠. 색다르다면, 글쎄 좀 그렇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요?"
나는 체념하고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가 없어진 코끼리의 마지막 목격자란 점이죠. 내가 코끼리를 본 것은 5월 17일 오후 7시가 지나서였죠. 그 동안에 코끼리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저녁6시면 코끼리 우리의 문을 닫아 버리니까."
"이야기 줄거리는 잘 모르겠지만, 코끼리 우리의 문이 닫혔다면서 당신은 어떻게 코끼리를 볼 수 있었나요?"하고 그녀는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코끼리 우리 뒤쪽에는 거의 벼랑에 가까운 산이 있거든요. 누군가 임자 있는 산인데, 길다운 길도 나 있지 않아요. 거기에 코끼리 우리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지점이 꼭 한군데 있었어요. 그런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만."
내가 그 지점을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뒷산을 산책하다가 길을 알지 못해 적당히 짐작으로 걸어가던 중에 공교롭게도 그 지점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것에는 사람이 혼자 누워 뒹굴 수 있을 만큼 평평한 땅이 펼쳐져 있었다.
관목 틈새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바로 아래쪽에 코끼리 우리 지붕이 보였다. 지붕의 조금 아래쪽에는 꽤 큼직한 통풍구가 있었고, 그곳을 통해 코끼리 우리 내부가 똑똑히 보였다. 그 후로는 심심할 때마다 그곳을 찾아가서, 우리 속에 있는 코끼리를 바라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어째서 그렇게 번거로운 짓을 했느냐고 물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는 다만 나만의 시간 속에서 코끼리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더 이상 깊은 이유는 없다.
코끼리 우리 안이 어두울 때는 물론 코끼리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초저녁 동안에는 사육사가 코끼리 우리 전등을 켜놓고 코끼리를 돌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 모습을 자세히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우선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코끼리 우리 안에서 둘이만 있을 때의 코끼리와 사육사는, 사람들 앞에 그 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보다 훨씬 친밀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 사이의 사소한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곧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치 둘만이 남게 되는 밤을 위해, 낮 동안에는 둘 사이의 친밀함을 사람들이 눈치 채지 않게끔 주위 깊게 절약해 두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코끼리 우리 안에서 무언가 특이한 짓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코끼리는 코끼리 우리 속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멍청이 있었다.
사육사도 덱 브러시로 코끼리의 몸을 씻어 주거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거대한 똥덩어리를 긁어모으거나, 식사 뒤처리를 한다거나 하는, 사육사로서의 당연한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 둘 사이에 맺어진 신뢰감이 풍겨 내는 독특한 온정은 그대로 전해졌다.
사육사가 바닥 청소를 하고 있을 때면, 코끼리는 코를 휘둘러 사육사의 등을 가볍게 톡톡 치거나 했다. 나는 그런 코끼리의 모습을 좋아했다.
"코끼리를 옛날부터 좋아했나요? 꼭 그 코끼리가 아니더라도……."하고 그녀가 물었다.
"글쎄, 그랬던 것 같아요. 코끼리란 동물한테는 뭔가 내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이 있어요. 옛날부터 줄곧 그랬었거든요.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래서 그날도 해가 지고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 혼자서 코끼리를 보고 있었나 보죠? 그러니까, 5월……."
"17일, 5월 17일 오후 7시쯤. 그때는 상당히 해가 길어져서 하늘에는 아직도 저녁노을이 조금 남아 있었죠. 하지만 코끼리 우리 속에는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고요."
"그때는 코끼리한테도 사육사한테도 별 이상은 없었나 보죠?"
"이상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고, 이상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어요. 나로서는 정확한 말을 할 수 없거든요. 어쨌든 바로 눈앞에서 본 건 아니니까, 목격자로서의 신뢰성은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겠지요."
"도대체 뭐가 있었죠?"
나는 얼음이 녹아서 약간 엷어진 온 더 록을 한 모금 마셨다. 창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마치 영원히 정지되어 버린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도 아니죠. 코끼리와 사육사는 늘 같은 일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지요. 청소도 하고 식사 준비도 하고, 아주 사이좋게 툭툭 장난을 치거나 하는 정도였어요. 단지 내가 약간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 밸런스란 말입니다."
"밸런스?"
"즉, 크기에 대한 밸런스지요. 코끼리와 그 사육사 몸 크기 사이의 균형인데, 그 균형이 평소와 좀 다르게 느껴졌어요. 코끼리와 사육사의 몸 크기 차이가 평소보다 줄어든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녀는 잠시 동안 자기가 들고 있는 다이커리 글라스에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속의 얼음이 녹아서, 그 물이 작은 해류처럼 칵테일 틈새로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그 말은 코끼리의 몸이 줄었다는 얘긴가요?"
"아니면 사육사가 커졌거나 혹은 그 양쪽이 동시에 일어났거나 했겠죠."
"그 사실을 경찰한테 알리지 않았나 보죠?"
"물론, 그런 걸 알려 봤자 경찰은 우선 신용하지 않을 테고, 그런 시간에 뒷동산에서 코끼리를 구경하고 있었다는 말을 하면, 내가 의심받을 것이 뻔할, 텐데 뭐."
"그런데 그 밸런스가 평소하고 달라져 있었다는 건 확실한 거죠?"
"그럴 겁니다. 그럴 거라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어요. 아무런 증거도 없지. 게다가 몇 번이나 거듭 말했지만, 통풍구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을 뿐이거든요. 하지만 나는 수십 번이나 마찬가지 조건에서 코끼리와 사육사를 봐왔으니까, 그 크기의 밸런스를 착각했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래, 나는 그때 그것이 눈의 착각일지 모른다 싶어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머리를 흔들었다 해보고, 다시 보고 또 보고 했는데도, 코끼리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확실히 코끼리는 줄어든 것으로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시에서 작은 코끼리를 새로 입수했나,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고 내가 코끼리에 대한 뉴스를 놓칠 리도 없었고 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늙은 코끼리가 무슨 까닭으로 해서 갑자기 줄어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고 있으려니까, 그 작은 코끼리가 하는 짓이 늙은 코끼리가 늘 하던 그대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끼리는 몸을 닦아 줄 때면 좋아라고 오른 발로 땅바닥을 찼고, 어느 정도 가늘어진 코로 사육사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광경이었다. 통풍구를 통해 꼼짝 않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코끼리 우리 속에만 썰렁한 감촉의 시간성이 흘러가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코끼리와 사육사는 자신들을 휘몰아 넣으려는 혹은 이미 일부를 휘몰아 넣고 있는 그 새로운 체계에 기꺼이 몸을 맡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코끼리 우리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시간은 다 해서 30분도 채 안된 것 같았다. 코끼리는 우리에서는 여느 때보다 훨씬 빠른 7시 30분에 등불이 꺼졌으며, 그것을 고비로 전체가 어둠에 싸여 버렸다. 그래도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한 번 더 코끼리 우리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으나, 전등은 두 번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코끼리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럼 당신은, 코끼리가 그대로 자꾸자꾸 줄어들어 울타리 사이로 도망을 쳤거나 아니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나요?"하고 그녀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나는 자신이 이 눈으로 본 것을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기억해 내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 이상 앞일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요. 눈으로 본 것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솔직히 말하면 거기서 뭔가 짐작한다는 건,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죠."
그것이 코끼리 소멸에 대한 내 이야기의 전부였다. 내가 애초에 예상한 대로 그 이야기는, 처음 만난 젊은 남녀가 주거지 받거니 할 화제로서는 너무나 특수했고, 그 자체가 지나치게 완결돼 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자 잠시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사라져 버린 코끼리에 대한, 거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다음으로 도대체 어떤 종류의 화제를 끄집어내야 할 지 나로서도 그녀로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칵테일글라스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고, 나는 코스러에 인쇄된 문자를 25회 정도 되풀이해서 읽었다.
역시 코끼리 이야기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입 밖에 내어 누구에게 털어놓거나 할 성질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옛날에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일은 있었지만, 고양이가 사라지는 것과 코끼리가 사라지는 것은 전적으로 다르잖아요."하고 얼마 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야 다를 테죠. 크기부터 비교가 안 되니까."
그리고 30분 후에 우리는 호텔 입구에서 헤어졌다. 그녀가 칵테일 라운지에 우산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났기에 나는 그 길로 되돌아가 찾아 가지고 돌아왔다. 손잡이가 큼직한 벽돌색 우산이었다.
"정말 고마워요."
"안녕."
그 후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꼭 한 번 광고 기사의 세부 사항에 대해 우리는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는 어지간하면 그녀를 식사에라도 초대해 볼까 생각했지만, 결국 그만두라고 했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동안 어쩐지 그런 것이 탐탁지 않게 여겨졌다.
코끼리의 소멸을 경험하고 난 이후로, 나는 자주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해보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행위가 가져올 결과와 그 행위를 회피함으로써 가져오게 될 결과 사이의 차이를 찾아낼 수 없게 되고 만다.
때때로 나는 주위의 사물이 그 본래의 정당한 밸런스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코끼리 사건 이후 나의 내부에서 무슨 밸런스가 무너져 버려, 여러 가지 외부의 사물이 내 눈에 기묘하게 비치는 지도 모른다. 그 책임은 아마도 내 쪽에 있겠지.
나는 여전히 편의적인 세계 속에서 편의적인 기억의 잔상을 바탕으로 냉장고랑 오븐 토스터랑 커피 메이커를 팔러 다니고 있다. 내가 편의적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 우리들의 캠페인은 우리들이 낙관적으로 예상했던 선을 뛰어넘어 성공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간다. 아마도 사람들은 세계라는 키친 속에서 일종의 통일성을 구하고 있는가보다. 디자인의 통일, 색채의 통일, 기능의 통일.
이제 신문에는 거의 코끼리 기사는 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도시가 한때 코끼리 한 마리를 소유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코끼리 광장에 무성했던 풀은 마르고, 주위에서는 마침내 겨울의 기척이 느껴진다.
코끼리와 사육사는 소멸해 버렸고, 그들은 이제 다시는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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