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지각한 여고생이 담 넘어가는 광경을 보면 하루 종일 즐겁다

chocohuh 2013. 3. 19. 11:13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시간에는 철두철미한 편이어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약속 시간에 늦지를 않는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학생 때는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밥 먹듯이 사람을 기다리게 했다. 학교를 나와 직접 장사를 시작하고, 타인을 향해서 절대로 지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입장이 되고 나서부터 나 자신의 지각하는 버릇도 완전히 고쳐진 것이다. 지각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당사자가 지각을 하면, 아무도 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 때는 아무리 지각을 해도 별로 상관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교에 가는 시간이 다소 늦어졌다고 해서 시시한 수업의 첫 부분을 조금 듣지 못하고 해서 그렇게 손해 볼 것까지는 없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 갖가지 버릇과 습관을 고쳐 나가는 것은 사회에 나오고 나서 해도 충분하다.

 

내가 이따금 머무는 시내의 호텔 창문에서는 여자 고등학교의 정문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끝내고 담배를 한 대 피우면, 대개 이 학교의 등교 시간이 된다.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들이 한결같이 검은 가방을 들고 차례차례로 걸어와서 교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바삐 뛰어오는 여학생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나서 운명의 벨이 울리고, 정문이 끼익 하고 닫힌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심술 사나워 보이는 선생님이 교문 옆에 서서, 지각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의를 주면서 이름을 적어 나간다.

 

그러나 개중에는 반드시 '호락호락 지각생 명단에 오를 수야 없지' 하는 생각을 하는 짓궂은 여학생이 있다. 그런 학생은 정문 근처에 있는 전신주 뒤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가, 트레이닝복을 입은 선생님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한 순간을 포착하여, 재빨리 길을 가로질러서 옆집 담으로 다가가서 슬슬 그것을 타고 넘어 그대로 학교의 담 안으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스커트 자락을 툭툭 털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서 교실로 들어간다. 용기와 판단력과 체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재주다. 나는 호네르이 4층 창문에서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고는, 하루 종일 즐거운 기분으로 보낸다.

 

그런 일로 인해서, 나는 그 여자 고등학교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이 꽤 마음에 든다.

'무라카미하루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FUN FUN FUN  (0) 2013.03.20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  (0) 2013.03.19
헛간을 태우다  (0) 2013.03.18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0) 2013.03.18
안자이 미즈마루의 비밀의 숲  (0) 20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