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는 친지의 결혼식에서 만나 친해졌다. 나와 그녀는 열 살도 넘게 나이 차이가 있었다. 그녀는 20세, 나는 31세였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무렵의 내게는 다른 고민거리가 꽤나 많았고, 솔직히 나이 따위를 일일이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녀는 애초부터 나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결혼한 상태였으나 그것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연령이나 가정, 수입 따위는 발 사이즈나 목소리의 고저, 손톱의 모양처럼 순수하게 선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고민해 봐야 어떻게 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그건 그렇다.
그녀는 아무개라고 하는 유명한 선생 밑에서 팬터마임을 배우며 생활을 위해 광고모델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게을러서 매니저를 통해 들어오는 일을 자주 거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수입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수입에서 모자라는 부분은 그녀의 몇 명인가의 보이 프렌드들의 호의에 의해 충당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녀가 은연중에 내뱉은 말에서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돈을 위해 남자와 잔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와 비슷한 일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본질은 아마도 훨씬 순수한 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개방적이고 이론적이지 않은 단순함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그 단순함을 마주하면 자신들이 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을 문득 거기에 끼워 넣고 싶어지는 것이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하자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말하자면 그런 단순함에 지탱되어 살고 있었다. 물론 그런 작용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우주의 조직 자체가 뒤집혀지고 만다. 그런 것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어떤 특정한 장소, 어떤 특정한 시기뿐이다. 그것은 <귤껍질 벗기기> 와 같은 것이다.<귤껍질 벗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팬터마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헤에, 하고 나는 말했다.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최근의 젊은 여자들은 다 들 뭔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뭔가에 진지하게 빠져들어 재능을 닦아가는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귤껍질 벗기기>를 했다.
<귤껍질 벗기기>란 말 그대로 귤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그녀의 왼쪽에는 귤이 가득 들어 있는 유리그릇이 있고, 오른쪽에는 껍질을 넣는 그릇이 있다-고 하는 설정이다-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그 상상 속의 귤을 하나씩 먹고는 그 찌꺼기를 모아 껍질로 뭉쳐서 오른쪽에 있는 그릇에 넣었다. 그 동작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다. 말로 설명하면 이것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눈앞에서 10분이고 20분이고 바라보고 있으면-나와 그녀는 바의 카운터에서 세상사를 이야기하고 있고, 그녀는 이야기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 <귤껍질 벗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점점 내 주위에서 현실감이 흡수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기분이다. 옛날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밀실에 넣고 조금씩 공기를 빼는 형이 적합하다는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죽음의 방식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떠올랐다.
"당신에겐 아무래도 재능이 있는 것 같군." 하고 내가 말했다.
"어머, 이런 것쯤 간단해요. 재능도 뭐도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귤이 이곳 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귤이 없다는 걸 잊으면 되는 거예요. 그뿐이라고요."
"마치 선(禪) 같군."
나는 그래서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나와 그녀는 그리 자주 만났던 것은 아니다. 대체로 한 달에 한 번이나, 많아 봐야 두 번이었다. 주로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디 놀러가지 않겠느냐고 불러냈다. 우리는 식사를 하거나 바에 가서 술을 마시곤 했다. 그리고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된 화제 따위는 전혀 없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말하자면, 친구 같은 사이였다. 물론 술값은 내가 다 지불했다.
그녀 쪽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은 대체로 돈이 없어서 배가 고플 때였다. 그럴 때 그녀는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먹었다.
나는 그녀와 둘이 있으면 느긋하게 쉴 수가 있었다. 하기도 싫은 일이나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품는 이해할 수 없는 사상 따위는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뭔가 그러한 능력이 있었다.
그녀의 말에는 특별히 의미다운 의미는 없었다.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 그 내용을 거의 듣고 있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멀리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처럼 몽롱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도 그녀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개인적인 일부터 일반론까지 매우 정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도 어쩌면 나처럼 흘려들으며 맞장구를 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가 원하고 있던 것은 어떤 종류의 마음가짐이었다. 적어도 이해나 동정이 아니었다. 2년 전 봄에 그녀의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죽고 약간의 목돈이 그녀에게 생겼다. 적어도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그녀는 그 돈으로 한동안 북아프리카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어째서 북아프리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침 나는 도쿄의 알제리 대사관에 근무하는 여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소개했다. 그래서 그녀는 알제리에 갔다. 그 당시의 상황상 나는 공항에 배웅을 나갔다. 그녀는 갈아입을 옷을 넣은 보잘 것 없는 보스턴백을 하나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겉보기에 북아프리카에 놀러간다기보다는 북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처럼 소지품 체크를 받고 있었다.
"일본에 꼭 다시 돌아올 거지?" 하고 나는 농담 삼아 그렇게 물어 보았다.
"물론 돌아올 거예요." 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3개월 후에 그녀는 일본에 돌아왔다. 출국할 때보다 3킬로그램 마르고 새 까맣게 타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애인을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은 알제 (알제리의 수도)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고 했다. 알제리에 있는 일본인은 숫자가 적어서 두 사람은 금방 친해졌고 애인이 되었다. 내가 아는 한 그녀에게는 그 남자가 최초의 제대로 형식을 갖춘 애인이었다.
그는 20대 후반이고 키가 컸으며 탄탄한 몸집에 정중한 말씨를 썼다. 표정은 다소 풍부하지 못했지 만 핸섬한 축에 속했고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손은 크고 손가락은 길었다.
어째서 그 남자를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느냐 하면 내가 공항까지 두 사람을 마중 나갔기 때문이다. 갑자기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에서 전보가 왔는데, 거기에는 날짜와 플라이트 넘버만이 적혀 있었다. 공항에 나와 주기 바란다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도착하자-비행기는 날씨가 나쁜 관계로 4시간이나 늦어져 그사이 나는 커피숍에서 주간지를 3권이나 읽었다-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게이트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인상이 좋은 젊은 부부처럼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녀는 꼭 텐동(튀김덮밥)을 먹고 싶다고 하며 텐동을 먹었고, 그와 나는 생맥주를 마셨다.
그는 무역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의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로 자신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이야기는 나를 지루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나도 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묻지는 않았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서 베이루트의 치안 상태나 튀니스의 상수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북아프리카부터 중동에 이르기까지 그 정세에 꽤 해박한 것 같았다.
텐동을 다 먹고 나자 그녀는 크게 하품을 하고 졸리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푹 잠이 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말하는 것을 잊었는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드는 것이 그녀의 버릇이다. 그가 택시로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전철이 더 빠르니 전철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일부러 공항까지 나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하고 그는 나를 향해 미안한 듯이 말했다.
"저도요." 하고 나도 대답했다.
나는 그리고 몇 번인가 그와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다. 내가 어딘가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나곤 하면 그 곁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나와 그녀가 데이트를 하면 약속 장소까지 그가 차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그는 얼룩 하나 없는 독일제 스포츠카를 타고 있었다. 나는 차에 대해서 거의 모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왠지 페데리코 페리니의 흑백영화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의 차였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몰수 있는 차는 아니었다.
"아마 굉장한 부잔가 보군?" 하고 나는 한 번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그래요." 라고 그녀는 별로 흥미가 없는 듯이 말했다.
"아마 그렇겠죠."
"무역 일이 그렇게 잘 벌리나?"
"무역 일?"
"그가 그렇게 말했어. 무역 일을 하고 있다고."
"그럼, 그런 거겠죠.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특별히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자주 사람을 만나고 전화를 걸곤 하지만요."
나는 마치 피츠제럴드의 <그레이트 개츠비>같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젊은이다.
10월의 일요일 오후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는 아침부터 친척집에 갔고 나 혼자 있었다. 날씨가 맑은 기분 좋은 날이라 나는 뜰의 상록수를 바라보며 사과를 먹고 있었다. 나는 그날만도 벌써 사과를 7개나 먹고 있었다. 때때로 그런 적이 있다. 병적으로 사과가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어떤 예고인지도 모른다.
"지금 비교적 댁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요. 둘이서 놀러가도 돼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둘?" 하고 내가 되물었다.
"나와 그 사람요." 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물론 좋지."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럼 30분 정도면 도착할 거예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소파 위에서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수염을 깎았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면서 귀 청소를 했다. 방 정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다. 전부 제대로 치우기에는 시간이 없었고, 전부 정돈 할 수 없을 바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방에는 책이나 잡지, 편지, 레코드, 연필, 스웨터 등이 한껏 널려 있었지만 특별히 불결해 보이지는 않았다. 일을 한 가지 해치우고 나자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상록수를 바라보며 또 하나의 사과를 먹었다.
그들은 2시가 좀 넘어서 도착했다. 집 앞에서 스포츠카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에 나가보니 눈에 익은 은색 스포츠카가 도로에 세워져 있었다. 그녀는 창에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차를 뒤뜰의 주차 스페이스로 안내했다. "왔어요." 하고 그녀는 싱글벙글하면서 말했다.
그녀는 유두의 형태가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얇은 셔츠를 입고 올리브 그린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네이비블루의 블레이저코트(색, 디자인을 통일한 스포츠형 상의)를 입고 있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약간 인상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그것은 적어도 이틀은 기른 것 같은 수염 때문이었다. 수염이라 해도 그의 경우에는 단정하지 못한 분위기는 전혀 없고, 약간 구레나룻이 검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 선글라스를 벗고 가슴 포켓에 집어넣었다.
"쉬시는데 찾아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아니, 뭐 괜찮습니다. 매일 휴일이나 다름없고, 게다가 혼자서 심심하던 참입니다." 라고 내가 대답했다.
"밥 가져왔어요." 라고 그녀가 말하며 뒷좌석에서 커다란 흰 종이 봉지를 꺼냈다.
"밥?"
"별건 아닙니다. 단지 일요일에 갑자기 찾아오는 거고, 뭔가 먹을 것을 가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하고 그가 말했다.
"그것 참 고맙군요. 아침부터 사과밖에 먹지 못한 참이었는데."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 테이블 위에 식료품을 늘어놓았다. 꽤 훌륭한 품목들 이었다. 로스트비프 샌드위치와 샐러드, 스모크 새먼,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으로 양도 꽤 많았다. 그녀가 요리를 접시에 옮기고 있는 동안 나는 냉장고에서 백포도주를 꺼내 뚜껑을 땄다. 자그마한 파티 같았다.
"자, 먹자고요. 무척 배가 고파요." 하고 여느 때처럼 배가 몹시 고픈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샐러드를 먹고, 스모크 새먼을 집어먹었다. 와인을 다 마시고 나자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 마셨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캔 맥주만 언제나 가득 차 있었다. 친구가 작은 회사를 하고 있어 남은 증정용 맥주 권을 싸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마셔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나도 맥주라면 꽤 마신다. 그녀도 따라서 몇 갠가 마셨다.
결국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빈 맥주 캔이 책상 위에 쭉 늘어섰다. 그것도 굉장한 것이었다. 그녀는 레코드 선반에서 몇 장인가 골라서 오토체인지 플레이어에 세트했다.
마일즈 디빈스의 <에어진>이 들려왔다.
"오토체인지의 걸러드라니 요즘에는 드문 것이 있군요."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자신이 오토체인지의 팬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질 좋은 걸러드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그는 맞장구를 치면서 내 이야기를 예의바르게 듣고 있었다. 한동안 오디오 이야기를 한 후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나서 "글라스가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피우지 않으시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나는 약간 망설였다. 그 이유는 내가 한 달 전에 금연을 시작해 매우 미묘한 시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마리화나가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피우기로 했다. 그는 종이 봉지 바닥에서 알루미늄 호일에 싼 검은 잎을 꺼내 종이 위에 올려놓고 둘둘 말아 풀칠할 부분을 혀고 핥았다. 그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몇 번인가 빨아들여 불이 제대로 붙었는지 확인한 후 내게로 돌렸다. 매우 질이 좋은 마리화나였다.
우리는 한동 안 말없이 그것을 한 모금씩 빨고는 순번대로 돌렸다. 마일지 디빈스가 끝나고 요한슈트라우스의 왈츠 모음이 흘렀다. 기묘한 선곡이었으나, 뭐 나쁘지는 않았다. 한 개비 피우고 나자, 그녀는 졸리다고 말했다. 잠이 부족한데다가 캔 맥주를 3개나 마시고 대마초를 피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 금세 잠들려고 했다. 나는 그녀를 2층으로 데리고 가서 침대에 눕혔다. 그녀는 티셔츠를 빌려 달라고 했다. 내가 티셔츠를 건네주자, 그녀는 훌훌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로 위로부터 티셔츠를 푹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리고 내가 춥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는 이미 숨소리를 높이며 자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 밑으로 내려갔다.
응접실에서는 그녀의 연인이 두 개비 째 대마초를 말고 있었다. 건강한 남자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그녀 옆에 파고들어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우리는 두 개비 째 마리화나를 피웠다. 아직 요한슈트라우스의 왈츠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어째선지 국민학교 학예회에서 한 연극이 생각났다.
나는 그 연극에서 장갑 가게 아저씨 역을 했다. 새끼 여우가 장갑을 사러오는 장갑 가게 아저씨 역이었다. 하지만 새끼 여우가 가지고 온 돈으로는 장갑을 살 수가 없었다. "그것으론 장갑을 살 수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약간 악역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무척 추워하세요. 손이 트셨어요. 부탁이에요." 하고 새끼 여우는 말했다. "아니, 안 돼. 돈을 모아서 다시 오렴." 그러면.
"때때로 헛간을 태웁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뭐라고요?" 하고 내가 말했다. 잠시 멍하니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때로 헛간을 태웁니다." 라고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라이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마초 연기를 양껏 폐 속으로 들이마셔 10초 정도 멈추고는 천천히 뱉어냈다. 마치 엑토플라즘(심령체)같이 연기가 그의 입에서 공중으로 감돌았다. 그는 나에게 마리화나를 돌렸다.
"꽤 질이 좋죠?"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특히 질이 좋은 것만 골랐죠. 이걸 피우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여러 가지가 생각납니다. 그것도 빛이라거나 냄새 같은 것들이죠. 기억의 질이..."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사이를 두고 적당한 말을 찾듯이 몇 번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전혀 달라지죠.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는 말했다. 나도 마침 학예회 무대의 소란함이라든가 배경으로 마분지에 칠한 물감의 냄새 등이 떠올랐던 참이다.
"헛간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다운 표정이 없었다.
"이야기해도 됩니까?" 하고 그가 말했다.
"물론이죠." 라고 내가 대답했다.
"간단한 이야기죠. 가솔린을 뿌리고 불이 붙은 성냥을 뿌리는 겁니다. 번쩍, 하고는 끝이죠, 다 타는데 1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는 나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도 그 다음 말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어째서 헛간을 태우죠?"
"이상합니까?"
"알 수 없군요. 당신은 헛간을 태우고, 나는 헛간을 태우지 않소. 그 사이에는 엄격한 차이가 있고 나로서는 어느 쪽이 이상하냐보다는 우선 그 차이가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하고 싶군요. 게다가 헛간 이야기는 당신이 먼저 말하지 않았소."
"그렇죠." 하고 그가 말했다. "확실히 그래요. 그런데 라비 샹컬의 레코드를 가지고 계십니까?" 없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의 의식은 고무찰흙처럼 물컹물컹한 것 같았다. 어쩌면 물컹물컹했던 건 나의 의식인지도 모른다.
"2개월에 하나 정도는 헛간을 태웁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또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그 정도의 페이스가 좋은 것 같아요. 물론 나의 경우지만요."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스?
"그런데 당신은 자신의 헛간을 태우는 거요?" 하고 내가 물어 보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 눈초리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내가 내 헛간을 태웁니까? 어째서 내가 수많은 헛간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하고 내가 말했다. "남의 헛간을 태우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물론 그렇습니다. 남의 헛간이죠. 그러니까 이건 범죄행위입니다. 당신과 내가 지금 이렇게 대마초를 피우고 있는 것처럼 확실한 범죄행위입니다."
나는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고인 채 가만히 있었다.
"즉, 타인이 소유하는 헛간에 내 맘대로 불을 붙이는 거죠. 물론 큰 화재가 되지 않을 만한 것을 택합니다. 나는 화재를 일으키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나는 단지 헛간을 태우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짧아진 대마초를 비벼 껐다. "하지만 잡히면 문제가 될 거요. 어쨌든 방화니까 잘못하면 실형을 받을지도 모르죠."
"잡히지 않아요." 하고 그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가솔린을 뿌리고 성냥을 긋고는 금방 도망치죠. 그리고 먼 곳에서 쌍안경으로 느긋하게 지켜보죠. 잡히지 않아요. 조그마한 헛간 하나 태웠다고 경찰이 그리 움직이지도 않으니까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게다가 외제차를 탄 옷차림이 좋은 젊은 남자가 설마 헛간을 태우고 돌아다니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걸 알고 있나요?" 하고 나는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무도 모릅니다. 실은 이 일은 당신 외의 사람에게는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에게나 말할 수 있는 성질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어째서 내게?"
그는 왼손가락을 똑바로 펴서 자신의 뺨을 문질렀다. 자라난 수염이 파삭파삭 메마른 소리를 냈다. 팽팽하게 고정시킨 얇은 종이 위를 벌레가 기어가는 듯 한 소리였다. "당신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인간의 행동 패턴에 관심이 있을 것 같아서요. 게다가 나는, 그러니까 소설가란 어떤 물건이나 일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 물건이나 일을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즐긴다는 것이 좀 뭣하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로서는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스스로 그걸 어떤 식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을지 솔직히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말은 이상할지 모릅니다만," 하고 그는 얼굴 앞에서 양 손을 펼쳐 천천히 맞붙였다. "세상에는 많은 헛간이 있고, 그것들이 모두 나에게 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한 생각이 듭니다. 해변에 외로이 서있는 헛간이나, 밭 한가운데 있는 헛간들... 아무튼, 여러 헛간 말입니다. 15분이면 깨끗하게 타죠.
마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라질 뿐이죠. 갑자기 말이죠."
"하지만 그것이 불필요한 것인지 어떤지는 당신이 판단하는 것 아닌가요?"
"나는 판단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뿐이죠. 비와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내린다. 강이 넘친다. 뭔가가 쓸려 내려간다. 비가 무엇을 판단하겠습니까? 알겠습니까? 내가 뭐 비도덕적인 걸 지향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나는 나 나름대로 모럴리티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힘이죠. 모럴리티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모럴리티란 동시 존재의 균형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시 존재?"
"그러니까, 나는 이곳에 있고, 나는 그곳에 있다. 나는 도쿄에 있고, 나는 동시에 튀니스에 있다. 추궁하는 것이 나고, 또한 용서하는 것이 나다. 예컨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균형이 있는 겁니다. 그런 균형이 없이 우리들은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걸림쇠 같은 거죠.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풀어져서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리죠. 그것이 있어서만이 우리들의 동시 존재가 가능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당신이 헛간을 태우는 것은 모럴리티에 의한 행동이란 말인가요?" "정확히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럴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죠. 하지만 모럴리티에 대해서는 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여기서는 본질적인 게 아니니까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는 그런 헛간이 많다는 거죠. 내게는 나의 헛간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헛간이 있죠. 몇 번이나 죽을 뻔 했습니다.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아, 이제 그만 말하죠. 나는 평소엔 말이 없는데 글라스만 피우면 너무 말을 많이 하죠." 우리는 마치 어떤 흥분을 식히기라도 하듯 그 자세 그대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차창으로 나타났다가는 사라져가는 기묘한 풍경을 좌석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이 이완되어 세부의 움직임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몸의 존재 그 자체를 관념으로서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동시 존재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생각하고 있는 내가 있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시간은 매우 정밀하고 폴리리듬(대조적 리듬의 동시 사용)을 새기고 있었다. "맥주 마시겠어요?" 하고 잠시 후 내가 물었다.
"감사합니다. 마시죠."
나는 주방에서 캔 맥주 4개와 카망베르 치즈(부드럽고 향기가 진한 프랑스 치즈)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맥주를 2개씩 마시고 치즈를 먹었다.
"최근에 헛간을 태운 것은 언제지요?" 하고 내가 물어 봤다.
"글쎄요." 그는 빈 맥주 캔을 가볍게 쥔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름, 8월말입니다."
"이 다음에는 언제 태울 거죠?"
"모르죠. 스케줄을 세워 놓고 캘린더에 표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음이 내키면 태우러 가죠."
"하지만 태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경우에 맞는 적당한 헛간이 있으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죠." 라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미리 태우기에 적당한 것을 골라 두죠."
"저축해 두는 거로군요."
"그렇죠."
"한 가지 더 질문해도 될까요?"
"예."
"다음에 태울 건 이미 정했습니까?"
그는 눈과 눈 사이를 찌푸렸다. 그리고 후욱 하고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예, 정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은 맥주를 찔끔 찔끔 마셨다.
"매우 좋은 헛간이죠. 오래간만에 태울 보람이 있는 헛간입니다. 실은 오늘도 그 사전 조사를 온 겁니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 있겠군요."
"바로 근처입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것으로 헛간 이야기는 끝이 났다.
5시가 되자 그는 연인을 깨우고 불쑥 집으로 찾아온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꽤 많은 양의 맥주를 마셨는데도 완벽하게 멀쩡한 얼굴이었다. 그는 뒤뜰에서 스포츠카를 꺼냈다."헛간에 대해서는 주의하겠소." 헤어질 때 내가 말했다.
"그러세요." 하고 그는 말했다. "어쨌든 바로 근처입니다."
"헛간이 뭐죠?" 라고 그녀가 말했다.
"남자끼리의 이야기지." 하고 그가 대답했다.
"어휴." 하고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라졌다.
나는 응접실로 돌아와 소파에 드러누웠다. 테이블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더플코트(튼튼한 올로 만든 무릎까지 오는 모자 달린 외투)를 집어 머리로부터 뒤집어쓰고는 푹 잤다.
눈을 떴을 때, 방은 캄캄했다. 7시였다.
푸르스름한 어둠과 대마초의 코를 찌르는 냄새가 방을 뒤덮고 있었다.
묘하게 불균일한 어둠이었다. 나는 소파에 누운 채 학예회의 연극을 계속해서 생각해내려 했으나 이미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새끼 여우는 장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가?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을 열고 방의 공기를 바꾸고는 주방에서 커피를 끓여 마셨다.
나는 다음 날, 서점에 가서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지도를 사왔다. 좁은 골목길까지 나와 있는 2만분의 1의 백지도였다. 나는 그 지도를 가지고 우리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헛간이 있는 지점에 연필로 x표를 했다. 사흘에 걸쳐 사방 4킬로를 빠짐없이 걸었다. 내 집은 시외에 있어 주위에는 농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헛간의 수도 꽤 많았다. 전부 16개의 헛간이 있었다.
그가 태우려고 하는 헛간은 아마 그 중의 어느 것일 터였다. <바로 근처>라고 했을 때의 그의 입모양으로 보아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16개 헛간의 상태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체크했다. 우선 인가에 너무 가깝거나 비닐하우스 곁에 있거나 헛간은 제외했다. 그리고 농구나 농약이 들어 있어 꽤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도 제외했다. 그는 결코 농구나 농약 따위를 태우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5개의 헛간이 남았다. 5개의 태울 만한 헛간이다. 또는 5개의 태워도 상관없는 헛간이다. 15분 정도면 다 타 버리고, 타 버린 것에 대해 아무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헛간들이다. 그가 그 중 어느 것을 태울지는 나로서는 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취향의 문제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가 그 5개의 헛간 중 어느 것을 선택했는지 매우 알고 싶었다.
나는 지도를 펴고 5개의 헛간만 남기고 나머지 x표를 지웠다. 그리고 직각자와 곡선자, 디바이더를 준비하고 집을 나와 그 5개의 헛간을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최단코스를 설정했다. 길이 강이나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했기 때문에 그 작업은 꽤 시간이 걸렸다. 결국 코스의 거리는 7.2킬로, 몇 번이나 측정해 보았으나 오차는 거의 없을 터였다. 다음 날 아침 6시, 나는 트레이닝 웨어에 조깅 슈즈를 신고 그 코스를 달려 보았다.
나는 매일 아침 항상 6킬로는 조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킬로를 늘리는 것은 그리 고통이 아니었다. 풍경도 나쁘지 않고 도중에 건널목이 두 개 있긴 했지만, 거기에 걸리는 일은 드물었다. 우선 우리 집을 나와 가까운 대학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고 강을 따라 인기척이 드문 비포장도로를 3킬로 달린다. 도중에 첫 번째 헛간이 있다. 그리고 숲을 지난다. 가벼운 언덕이다. 또 헛간이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경마용 말의 마구간이 있기 때문에 말들이 불을 보고 약간 소란을 피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실질적인 해는 없다.
세 번째 헛간과 네 번째 헛간은 나이든 보기 흉한 쌍둥이처럼 많이 닮았다. 거리도 2백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양쪽 다 낡고 더럽다. 만약 태운다면 양쪽 다 한꺼번에 태워도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 헛간은 건널목 옆에 서 있었다. 약 6킬로 지점이다. 아주 완전하게 버려진 헛간이다. 선로를 향해 펩시콜라 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그런 것도 건물이라고 불러도 될지 나로서는 자신이 없지만-아무튼 그 건물은 거의 쓰러져 가고 있었다. 거의 확실히 그가 말하듯이 누군가에 태워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지막 헛간 앞에 잠시 서서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하고 건널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1분30초였다. 그리고 나는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 레코드를 한 장 듣고는 일을 시작했다. 1개월간 이렇게 나는 매일 같은 코스를 달렸다.
그러나 헛간은 타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그가 나에게 허상을 태우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헛간을 태운다는 이미지를 나의 머릿속에 집어넣은 후 자전거 타이어 공기를 넣듯이 그것을 점점 부풀려가는 것이다. 정말로 나는 때때로 그가 태우기를 가만히 기다릴 정도라면, 차라리 스스로 성냥을 켜서 태워 버리는 것이 빠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단지 그것은 낡은 헛간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지나친 생각일 것이다.
실제로는 나는 헛간을 태우거나 하지 않는다. 아무리 내 머릿속에서 헛간을 태운다는 이미지를 그려보아도, 나는 헛간을 태우거나 할 타입이 아니다. 헛간을 태우는 것은 내가 아니고 그다. 아마 그는 태워야 할 헛간을 변경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로부터의 연락도 전혀 없었다. 12월이 오고 가을이 끝나 아침 공기가 피부를 찌르듯 차가워졌다. 헛간은 그대로였다. 하얀 서리가 헛간의 지붕에 내렸다. 겨울새들이 얼어붙은 숲속에서 퍼드득 커다란 날개 소리를 냈다. 세계는 변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작년 12월 중반이었다. 크리스마스 얼마 전이었다. 어디를 가나 크리스마스 송이 들렸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다이모쿠(乃木) 언덕 근방을 걷고 있을 때 나는 그의 차를 발견했다. 틀림없이 그의 은색 스포츠카였다. 시나가와(品川) 넘버로, 왼쪽 헤드라이트 옆에 작은 상처가 있었다. 차는 찻집의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 차는 이전에 봤을 때처럼 반짝반짝 선명하게 빛나고 있지는 않았다. 그 은색은 그래서 그런지 칙칙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나는 자신의 기억을 좋을 대로 바꿔 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어둡고 진한 커피 냄새가 났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그다지 들리지 않고 , 바로크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창가에 혼자 않아 카페오레를 마시고 있었다. 가게 안은 안경이 하얗게 될 정도로 더웠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검은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채로 있었다. 머플러도 풀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약간 망설였지만 역시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다만, 밖으로 그의 차를 발견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우연히 이 가게에 들어와 우연히 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앉아도 될까요?" 하고 내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앉으세요." 하고 그가 대답했다.
그런 뒤에 우리는 가벼운 세상사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별로 활기를 띠지 못했다. 원래 그다지 공통 화제가 없는데다가, 그는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와 합석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튀니지의 항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얻어지는 새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얻어지는 새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모래 속에서 스며들 듯이 도중에 갑자기 끊기고 그 다음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들어 웨이터를 부르고 두 잔째 카페오레를 주문했다.
"그런데 헛간은 어떻게 됐죠?" 하고 나는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그는 입술 끝으로 가볍게 웃었다. "아아, 그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군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물론 태웠습니다. 깨끗하게 태웠죠. 약속대로."
"우리 집 바로 근처에서?"
"예. 바로 근처죠."
"언제죠?"
"저번에 댁에 갔다 오고 열흘 정도 후에요."
나는 지도에 헛간의 위치를 그려 넣고 하루에 한 번 그 앞을 러닝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못 봤을 리가 없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꽤 치밀하시군요." 하고 그는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치밀하고 이론적입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못 보고 빠뜨린 겁니다. 그런 경우가 있죠. 너무 가까워서 못 보고 말죠."
"잘 모르겠군요."
그는 넥타이를 바로 하고 손목시계를 봤다.
"너무 가까웠던 겁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 가봐야 합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이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죠. 죄송하지만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그 이상 그를 잡을 이유는 없었다. 그는 일어서서 담배와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그 후 그녀를 만나보셨습니까?" 하고 그가 물었다.
"아뇨,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신은요?"
"저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연락이 되지를 않아요. 아파트에도 없고 전화도 되지 않고, 팬터마임 클래스에도 쭉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여행을 떠난 게 아닐까요. 이제까지도 몇 번인가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는 주머니에 양 손을 찌르고 일어서서 테이블 위에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 푼도 없이 한 달 반이나요? 세상사에 관해서라면 그녀에게는 그리 재능이 없습니다." 그는 코트 주머니 속에서 몇 번인가 손가락을 튕겼다.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녀는 전혀 한 푼도 없습니다. 친구다운 친구도 없죠. 주소록은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은 단지 이름뿐입니다. 그녀에게는 의지할 만한 친구가 없죠. 하긴 뭐, 그렇긴 해도 당신은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약간 질투를 했을 정도죠. 정말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질투라는 것을 거의 모르던 인간입니다만."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시계에 시선을 주었다. "나는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납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말이 잘 나오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다. 이 남자를 마주하면 말이 잘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후에도 몇 번이나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전화는 요금 미납으로 회선이 끊겨 있었다. 나는 어쩐지 걱정이 되어 그녀의 아파트까지 가 보았다. 그녀의 방은 잠긴 채였다. 우편함에는 다이렉트 메일이 다발이 되어 꽂혀 있었다. 관리인은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그녀가 그곳에 아직 살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수첩의 페이지를 찢어 <연락 바람>이라는 메모를 적고 이름을 써서 우편함 속에 집어넣어 두었다. 그래도 연락은 없었다.
그 다음에 내가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에는 문에 다른 사람의 명패가 걸려 있었다. 노크해 보았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관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거의 1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사라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다섯 개의 헛간 앞을 뛰고 있다. 우리 집 주위의 헛간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어딘가에서 헛간이 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다시 12월이 오고, 겨울새가 머리 위에 가로질러간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
밤의 어둠 속에서 나는 때때로 불에 타서 무너져가는 헛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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