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얼마 전 일이다. 안자이 미즈마루씨의 개인전 오프닝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한 동네에 있는 조그만 갤러리로 향했다. 미즈마루씨와 공동으로 《밤의 거미원숭이》라는 책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그린 원화 수십장을 일괄하여 한군데에 죽 전시해 놓으니 제법 장관이었다. 그 자리에서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에 미즈마루씨의 부인을 뵈었고 따님도 소개받았는데 화백은 아주 아주 수줍어하였다.
마치 아오야마 동네 친목회 같은 분위기였다. 화백은 그 다음 역시 한 동네에 있는 '아르쿠르'로 자리를 옮겨 그야말로 와일드한 밤을 보내셨을 테지만, 나는 '아르쿠르'에만 갔다 하면 어찌 된 셈인지, 아마 조명이 어두운 탓이리라, 카운터에서 끄덕끄덕 조는 버릇이 있어, 초밥 집에서 맥주만 가볍게 마시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갔다.
대게 미즈마루씨가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슬슬 잠자리에 들까 하는 시간이라, 꽤 오래도록 화백과 사귀어 오면서도 지긋하게 앉아 늦게까지 술을 마셔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지금은 같은 동네에 사는데도, 마치 편의점에서 낮 근무를 하는 아르바이트생과 밤 근무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교대 시간처럼 기본적으로 구조가 다르다.
어디선가 술을 마시다가 밤 10시쯤 되어 내가 손목시계를 보면서 "미즈마루씨, 슬슬 잠이 와서 가봐야겠어요"라고 하면, "아, 그것 참 안타깝군. 자네 팬이 이 동네에 사는데, 몹시 만나고 싶어해서 말이야. 지금 전화를 해서 불러낼까 하는 참이었는데, 거 안됐군. 아주 미인인데, 참하기도 하고. 전화만 하면 금방 올 수 있을 텐데 말이야"라는 등 화백은 매우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하는데, 그러면 나는 어이 어이 그거 정말이야 하고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한데 미즈마루씨의 밤의 세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깊어서(나 개인적으로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숲'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미즈마루씨가 따르릉따르릉 전화를 걸면 예쁜 아가씨가 '어머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라면서 정말 나타날 것인지, 한번은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고 싶지만, 시계 바늘이 10시를 넘어서면 내 양쪽 눈꺼풀은 마치 《인디애너 존스》에 나오는 바위 문처럼 무겁게 내려와,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 이를 닦고 잠옷을 갈아입고 쿨쿨 잠들어 버리고 만다. 하얀 토끼와 검은 원숭이가 조니 티롯슨의 《큐티 파이》를 부르면서 봄의 들판을 뛰어다니는 평화로운 꿈의 세계(뭐가 평화롭다는 건지 모르겠지만)로 끌려 들어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아리따운 아가씨와는 인연을 맺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그러나 만약 미즈마루씨의 말이 참말이라 하더라도, 그의 꾐에 넘어가 무턱대고 여자를 만났다가는 성치 않을 것이란 기분도 든다. 그럭저럭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철없이 미즈마루씨를 따라 당시 아오야마에 있는 어떤 와일드한 클럽에 간 적이 있다. 예쁘고 건강한 아가씨들이 우글우글, 모두들 술을 마시면서 내일 아침이면 세계가 끝나기라도 하는 양 와글와글 재잘재잘 흥이 나 있었다. '대체 뭐 하는 데야, 여기는?'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조심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한 아가씨가 내게로 다가와 "우리 춤춰요"라고 하였다. "아니, 저 나는 춤을……"이라면서 회피하려는데, 미즈마루씨가 험악한 표정으로 "저 말이지 무라카미군, 그런 경우에는 같이 신나게 추어야 숙녀에 대한 예의지. 여자 분한테 창피를 주어서야 되겠어, 으흠"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 무렵 나는 아직 젊었고, 세상의 무서움이란 것도 몰랐고, '그런가, 그게 예의라는 건가' 싶어 잠시 함께 춤을 추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아오야마 부근에서 '무라카미 말이지, 겉으로는 얌전해 보이지만, 여자랑 찐한 치크 댄스 추는 게 취미인 모양이더라고. 모 클럽에서 아주 신나게 춤을 추고 있던걸'이란 과장된 풍문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무라카미씨,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 얘기 듣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요."
어느 여성 편집자한테서는 그런 말까지 들었다.
나는 일상적으로 타인들을 실망시키므로 그런 일쯤 별거 아니다 여기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좀 억울하다 싶어 소문의 경로를 확인해 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화백이 적극적으로 항간에 퍼뜨린 것이었다.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좀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정말 내가 치크 댄스라는 것을 추었던가…….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요코하마에 있는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화백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여학생들이 여러 명 전시장에 몰려왔다. 그녀들과 잠시 서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한명이 "무라카미씨, 남이 안 보는 데서는 제법 나쁜 짓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인가요?"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런 쓰잘데없는 소문의 출처는 대충 짐작이 간다. 요코하마까지 가서 대체 뭘 가르치고 있는 거냐고, 큰 소리로 한번 물어보고 싶다.
소문의 심장
올 여름 하와이의 한 극장에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았는데,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이 다들 와하고 웃었다. 대체 무슨 현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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