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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_歷史

태평양 전선에서의 연합국 승리

chocohuh 2013. 2. 12. 13:08

194272일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뉴브리튼 섬과 뉴아일랜드 섬, 솔로몬 제도 및 뉴기니 섬 동부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3단계의 제한공격을 명령했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툴라기 섬과 산타크루즈 제도를 인접 지역과 함께 점령하고, 2번째 단계에서는 솔로몬 제도 중부와 북부 및 뉴기니 섬의 북동해안을 점령하고, 3번째 단계에서는 비스마르크 제도의 라바울과 그밖의 지점들을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미국의 태평양 방면 전략은 해군과 해병대를 이용하여 고리처럼 늘어서 있는 섬들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일본을 향해 진격하는 한편, 그보다 적은 규모의 지상군은 아시아 본토에서 중국군 및 영국군과 합동작전을 편다는 것이었다(동부솔로몬제도 전투). 194315일 과달카날 섬(솔로몬 제도 남부의 섬)에서는 44,000명에 이르는 연합군 수비대가 일본군 22,500명과 대치해 있었다. 진지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일본군은 2월초에 대담한 구축함 돌파 작전으로 12,000명의 병력을 넘는 사상자를 냈다.

 

과달카날 전투의 지상 전투에서 일본군은 24,000명 이상의 인명손실을 냈다. 연합군은 약 1,600명의 사망자와 4,250명의 부상자를 냈다(이 숫자에는 질병에 희생된 더 많은 수의 사상자는 포함되지 않았음). 연합군이 과달카날 섬과 파푸아 섬을 탈환함으로써 일본군의 남진은 끝났고,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질랜드까지 이어진 병참선은 이제 안전해졌다. 파푸아 섬에서 일본군은 12,000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냈고, 350명이 포로로 잡혔다. 연합군 쪽에서는 3,500명이 전사하고 5,500명이 부상했다. 연합군 공군은 일본군 보급로를 차단하고 연합군의 보급품과 증원군을 수송함으로써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달카날 섬을 잃은 일본은 그때부터 수세에 몰리게 되고, 전망은 점점 어두워졌다. 라바울의 거점에서 뉴기니에 있는 라에살라마우아 진지로 증원군을 파견하려는 일본군의 마지막 노력은 바로 하나의 재앙이었다. 194332~4일에 벌어진 비스마르크 해전에서 일본군은 구축함 4척과 수송선 8척을 잃었으며, 7,000명의 병력 가운데 목적지에 도달한 것은 1,000명뿐이었다.

 

몇 주일 뒤 연합군은 뉴기니에 있는 진지를 보수했고, 일본군은 공중에서 공격하는 것 말고는 연합군의 활동을 방해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4월말이 되기 전에 일본 해군은 또다시 재난을 당했다. 3월말에 라바울에 기지를 둔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파견된 야마모토가 부건빌 섬으로 날아가다가 연합군 전투기의 습격을 받고 전사했던 것이다.

 

한편 북태평양에서 미국은 알류샨 열도의 일본군을 쫓아내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일본이 알래스카에 있는 미국군 기지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일본인들로 하여금 미국이 알류샨 열도를 통해 일본 본토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오판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19428월에 미국은 알류샨 열도의 에이댁 섬에 병력을 상륙시킨 뒤, 다음달에는 에이댁에서 발진한 항공기들이 키스카 섬과 애투 섬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는 한편, 해군은 일본군이 수비대를 증원하지 못하도록 섬을 봉쇄했다. 마지막으로 미국군은 키스카 섬을 우회하여 1943511일에 애투 섬을 침공했다. 3주일 동안 계속된 전투에서 애투 섬을 지키고 있었던 일본군 2,300명은 거의 전멸했다. 그후 일본군은 키스카 섬에서도 철수했다. 알류샨 열도에 기지를 얻은 연합군은 쿠릴 열도를 폭격하기가 더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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